활인서는 조선시대 도성 밖 동ㆍ서쪽에 설치하여 돌림병의 치료와 백성에 대한 구휼활동을 담당하였으며, 도성 안으로 유입되는 돌림병의 전파를 차단하는 역할을 하였습니다. 동활인서는 혜화문에서 광희문으로 한 차례 장소를 이전하였으며, 서활인서는 19세기 후반까지 서소문에 있었지요. 지난 2022년 서울역사박물관은 도시 한양을 여성의 시각으로 처음 조명한 서울기획연구 9 《한양의 여성 공간》 보고서를 펴냈는데 여기에는 활인서 얘기도 들어있습니다. 나라에서는 한양도성에 거주하는 무당들을 도성에서 나가게 하거나 관리하기 위해서 무적(巫籍, 무당의 명부)에 등록한 뒤 활인서에 적절하게 배정하여 구료 업무를 맡게 하였으며, 또한 동과 서 양서(兩署) 인근에 계획된 주거공간인 무녀촌(巫女村)을 만들어 이들을 살게 하였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