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조수정실록 2

(얼레빗 제5033호) 벼슬을 사양한 퇴계의 가르침

“이황이 고향에 돌아가 누차 상소하여 나이가 들었으므로 벼슬에서 물러날 것을 빌었으나 허락하지 않았다. 이때 병이 들었는데 아들 준(寯)에게 경계하기를, ‘내가 죽으면 예조가 틀림없이 관례에 따라 예식에 따라 장례를 치르도록 할 것인데, 너는 모름지기 내가 죽으며 남긴 뜻이라 말하고 상소를 올려 끝까지 사양하라. 그리고 묘도(墓道)에도 비갈(碑碣, 사적을 후세에 전하기 위하여 글자를 새겨 세우는 것)을 세우지 말라.‘ 하였다.(가운데 줄임) 그로부터 며칠 뒤 죽었는데 준이 두 번이나 상소하여 예장을 사양하였으나, 허락하지 않았다.” 위는 《선조수정실록》 4권, 선조 3년(1570년) 12월 1일 기록으로 퇴계(退溪) 이황(李滉)의 죽음에 관한 얘기입니다. 조선조 중기 명종과 선조 때 살았던 퇴계 이황(1..

(얼레빗 제4784호) 책 3,500권 모았던 으뜸 장서가 유희춘

조선 전기 문신 유희춘(柳希春, 1513~1577)이 쓴 《미암일기(眉巖日記)》 1575년 10월 29일 기록을 보면 다락방의 책을 중당(中堂, 집 가운데의 마루)으로 옮기는데 모두 3,500권이었다고 합니다. 하지만 《미암일기》에 여러 차례 걸쳐 책을 옮기는 얘기가 있는 것을 보면 이 3,500권은 일부에 불과할 것이라는 생각입니다. 물론 책 구하기가 쉬운 요즘에도 개인이 책 3,500권을 가지고 있는 경우가 흔치 않아 3,500권만 해도 엄청난 양이지요. ▲ 유희춘 《미암일기(眉巖日記)》와 미암집 목판(문화재청 제공) 조선시대 책의 인쇄본은 중앙의 교서관(校書館)과 지방의 감영, 군ㆍ현 등에서 찍는 소량일 뿐입니다. 또 그것마저 교서관에서 찍은 것은 일부 진상하고, 일부는 중앙부처가 간직하게 하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