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현세자 6

임금이 되지 못한 왕자들

‘임금이 승하한 뒤, 첫째 아들인 왕세자가 즉위한다.’ 얼핏 보아 당연한 듯 보이는 이 명제는 실현되지 못한 적이 훨씬 많았다. 조선 역사에서 임금이 승하한 뒤, 적장자로 왕위를 계승한 왕세자는 겨우 일곱 명에 불과했다. 조선왕조 스물일곱 명의 임금 가운데 문종, 단종, 연산군, 인종, 현종, 숙종, 순종만 적자이자 장자로 왕위를 계승했으며 그나마 요절하지 않고 꽤 오랜 기간 정사를 제대로 펼친 임금은 현종과 숙종뿐이었다. 웬만한 기업에서도 ‘가업 승계’와 ‘후계자 양성’은 상당히 어려운 일인데, 한 나라를 물려줘야 하는 봉건시대에 ‘왕세자 책봉’은 가장 중요하면서도 어려운 일이었다. 더구나 조선 후기로 갈수록 서자 출신 왕자들만 많거나, 서자 출신 왕자조차 거의 없거나, 적자 왕자는 있으나 군주가 지녀..

남한산성의 치욕, 못난 역사를 기록하다

못난 역사도 역사다. 우리 역사에는 영광에 가득 찬, 빛나는 업적을 세운, 후세에 자랑스럽게 전할 만한 역사만 있는 건 아니다. 못난 모습도 많았다. 임금이 백성을 버리고 도망가는 모습, 적이 코앞에 닥쳤는데도 서로 분열하며 탁상공론만 거듭하던 모습, 그리고 마침내 적에게 굴욕스러운 항복을 하는 모습까지. 이 모든 장면을 합친 역사가 병자호란이다. 1636년 병자년, 12월 겨울부터 약 두 달 동안 이어진 전쟁의 참상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60만 백성이 포로로 끌려가고 수많은 병사가 목숨을 잃었다. 본래 강화도로 피신하려던 인조는 적이 생각보다 너무 빨리 다가오자 급히 남한산성으로 들어가게 되었다. 이 책, 《남한산성의 눈물》은 이때 인조를 따라 남한산성으로 들어간 공조참의 나만갑(羅萬甲)이 남한산성..

조선궁중잔혹사 - 김이리

청나라에 볼모로 잡혀가 9년간 지내면서 강한 조선을 만들기 위해 노심초사하며 노력했던 소현세자와 세자비 강빈, 그들의 노력이 옹졸한 아버지(인조)와 소용 조씨 때문에 물거품이 되어버린 슬픈 역사에 대한 이야기다. 역사에 가정이란 없다고 하지만, 가정을 해보고 싶다는 생각이다. 인조가, 선조가 아니면 다른 한 명의 왕이라도 한 번만 더 생각해보고 다른 방향으로 나아갔다면 지금의 우리나라는 어떤 위치에 있을까? 애통할 따름이다.

(얼레빗 4591호) 북벌은 실패했지만, 대동법을 시행했던 효종

청강(淸江)에 비 듣는 소리 그 무엇이 우습건대 만산홍록(滿山紅綠)이 휘드르며 웃는구나. 두어라 춘풍(春風)이 몇 날이리 웃을 대로 웃어라. 위 한시는 조선의 제17대 임금 효종(孝宗, 1619-1659)의 칠언절구입니다. 초장에서 맑은 강물 위에 떨어지는 봄비 소리를 들으며 누군가 웃고 있다고 합니다. 중장에서 웃는 것은 온 산에 붉고 푸르게 피어나는 꽃과 잎들이라고 했습니다. 흐드러지게 피는 꽃과 잎들이 마치 사람처럼 봄비를 반기며 웃고 있다는 것이지요. 종장에서 따뜻한 봄바람이 얼마나 가겠느냐며, 꽃과 잎들이 봄날을 마음껏 즐기도록 놓아두라고 합니다. 효종의 여유 있는 모습이 잘 드러납니다. ▲ 경기도 여주에 있는 17대 효종과 부인 인선왕후의 무덤 영릉(寧陵) 효종은 병자호란이 나자 강화에 피난했..

(얼레빗 4165호) 문예군주를 꿈꾼 효명세자 특별전

“홀로 만향헌에 앉아서 서글피 인왕산을 마주했도다 하늘은 넓고 구름 빛도 맑은데 돌아간 기러기는 어느 때에 돌아올까“ ▲ 효명세자가 명온공주에게 보낸 편지 속의 한시 이는 효명세자(孝明世子, 1809~1830)가 명온공주(明溫公主)에게 보낸 편지로 한시에 음을 나란히 적고 한글 번역..

(얼레빗) 3251. 소현세자 죽음, 독살일까, 병 탓일까?

얼레빗으로 빗는 하루 다른 얼레빗 모두 보기 단기 4349(2016). 3. 24. 조선 16대 임금 인조의 첫째 아들 소현세자(1612∼1645)는 왕세자로 책봉되었지만 병자호란(1636)으로 인해 청나라에 인질로 끌려갔다 돌아온 뒤 두 달 만에 죽었습니다. 이때 소현세자의 죽음은 조선왕조실록에 학질 때문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