승정원일기 11

<조선왕조 어보ㆍ어책ㆍ교명> 보물 지정

문화재청(청장 최응천)은 종묘 신실에 봉안되어 전승된 「조선왕조 어보ㆍ어책ㆍ교명(御寶ㆍ御冊ㆍ敎命)」을 비롯해 「근묵(槿墨)」, 「아미타여래구존도(阿彌陀如來九尊圖)」, 「순천 동화사 목조석가여래삼불좌상(順天 桐華寺 木造釋迦如來三佛坐像)」 등 서첩 및 조선시대 불화, 불상 등 모두 4건에 대해 국가지정문화재 보물로 지정하였다. 보물 「조선왕조 어보ㆍ어책ㆍ교명」은 조선이 건국한 1392년부터 대한제국을 선포한 1897년 이후 일제에 강제로 병합된 1910년까지 조선왕조의 의례에 사용된 인장과 문서다. 어보ㆍ어책ㆍ교명은 해당 인물 생전에는 궁궐에 보관하였고, 죽은 뒤에는 신주와 함께 종묘에 모셔져 관리되었다. 어보란 임금ㆍ왕세자ㆍ왕세제ㆍ왕세손과 그 배우자를 해당 지위에 임명하는 책봉 때나 임금ㆍ왕비ㆍ상왕(上王)..

(얼레빗 제4838호) 〈동학농민혁명기록물〉, 세계기록유산 올라

5월 18일 프랑스 파리에서 열린 제216차 유네스코 집행이사회는 〈동학농민혁명기록물〉을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UNESCO Memory of the World)으로 올렸습니다. 〈동학농민혁명기록물〉은 1894년~1895년 조선에서 일어난 동학농민혁명과 관련된 기록물로 썩은 지도층과 외세의 침략에 저항하며 평등하고 공정한 사회를 건설하기 위해 민중이 봉기한 사건입니다. 한국이 번영된 민주주의로 나아가는 발판을 놓았으며, 유사한 외국의 반제국주의, 민족주의, 근대주의 운동에 영향을 주었습니다. 또한 그 과정에서 동학농민군은 전라도 각 고을 관아에 치안과 행정을 담당하는 민ㆍ관 협력(거버넌스) 기구인 ‘집강소’를 설치하는 성과를 거두었지요. 이는 19세기 당시 전 세계에서 비슷한 사례를 찾기 힘들었던 신선한 ..

「조선왕조 어보ㆍ어책ㆍ교명」 보물 지정 예고

문화재청(청장 최응천)은 종묘 신실에 봉안되어 전승된 「조선왕조 어보ㆍ어책ㆍ교명(御寶ㆍ御冊ㆍ敎命)」을 비롯해 「근묵(槿墨)」, 「아미타여래구존도(阿彌陀如來九尊圖)」, 「순천 동화사 목조석가여래삼불좌상(順天 桐華寺 木造釋迦如來三佛坐像)」 등 서첩과 조선시대 불화, 불상 모두 4건에 대해 국가지정문화재 보물로 지정 예고하였다. 보물로 지정 예고된 「조선왕조 어보ㆍ어책ㆍ교명」은 조선이 건국한 1392년부터 대한제국을 선포한 1897년 이후 일제에 강제로 병합된 1910년까지 조선왕조의 의례에 사용된 인장과 문서다. 어보ㆍ어책ㆍ교명은 해당 인물 생전에는 궁궐에 보관하였고, 죽은 뒤에는 신주와 함께 종묘에 모셔져 관리되었다. ▲ 「조선왕조 어보ㆍ어책ㆍ교명」 어보란 임금ㆍ왕세자ㆍ왕세제ㆍ왕세손과 그 배우자를 해당 지..

휴대용 해시계 ‘일영원구(日影圓球)’ 공개

문화재청(청장 최응천)은 지난 3월 미국 경매를 통해 매입한 를 8월 18일 아침 10시 국립고궁박물관(관장 김인규)에서 언론에 공개하고, 기존에 열리고 있던 환수문화재 특별전 ‘나라 밖 문화재의 여정(7.7~9.25)’을 통해 19일부터 일반에 공개한다. ※ 일영원구– 재질: 동, 철 / 크기: 높이 23.8cm, 구체 지름 11.2cm ▲ ‘일영원구’는 지금까지 학계에 알려진 적 없는 희귀 유물로, 나라 밖 반출 경위는 알려지지 않았지만 애초 소장자이던 일본 주둔 미군장교가 죽은 뒤 유족으로부터 유물을 입수한 개인 소장가가 경매에 내놓은 것으로 알려졌다. 문화재청과 국외소재문화재재단(사무총장 김계식)은 지난해 말 해당 유물의 경매 출품 정보를 입수한 이후 면밀한 조사와 문헌 검토 등을 거쳐 지난 3월..

일제가 갈라놓은 창경궁-종묘 90년 만에 연결…22일 개방

서울시는 창경궁과 종묘를 90년 만에 다시 연결했다. 일제가 갈라놓은 창경궁과 종묘가 90년 만에 다시 연결됐습니다. 종묘는 조선의 역대 왕과 왕비의 신주(위패)를 모신 왕가의 사당으로, 국내 최초로 등재된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인데요, 1932년 일제가 지금의 ‘율곡로’를 개설하면서 창경궁과 종묘 사이가 끊어졌습니다. 서울시는 율곡로를 지하화하고 녹지를 조성해 끊어졌던 녹지축을 연결하는 ‘창경궁-종묘 연결 역사복원사업’을 마무리했습니다. 조선왕실의 발자취를 느끼며 산책할 수 있는 궁궐담장길도 새로 생겼습니다. 22일부터 개방되니 가족·지인과 나들이 다녀오세요. ‘창경궁-종묘 연결 역사복원사업’ 첫 삽 뜬지 12년 만에 완료 서울시는 창경궁과 종묘를 90년 만에 다시 연결했다. ‘창경궁-종묘 연결 역사복원..

‘한복생활’ 국가무형문화재 새 종목 지정

문화재청(청장 최응천)은 ‘한복생활’을 새 국가무형문화재로 지정하였다. ‘한복생활’은 오랜 역사와 전통 속에서 다양한 형태로 지속하여 왔으며, 우리 민족의 정체성과 값어치를 대표해 온 전통생활관습이자 전통지식이다. ▲ 바지▲저고리 또는 치마ㆍ저고리로 이루어진 2부식 구조와 ▲ 옷고름을 갖추고 있는 한복(韓服)을 지어, ▲ 치마-저고리, 바지-저고리 착용 순서에 따라 입고 ▲ 예절ㆍ격식ㆍ형식이 필요한 의례ㆍ관습ㆍ놀이 등에 맞춰 즐기는 문화를 뜻한다. ▲ 새로 국가무형문화재가 된 ‘한복생활’(뉴그툰 그림) 애초 지난 3월 ‘한복 입기’라는 이름으로 지정 예고된 바 있었으나, ▲ 한복 그 자체의 무형유산 특성 및 관련 문화를 포괄할 필요가 있는 점, ▲ ‘한복 입기’가 단순 한복 착용에 대한 인식으로 오인할 ..

세자의 교육 (1) - 국왕을 규제하는 방법

세자의 교육 김 문 식(단국대) 1. 국왕을 규제하는 방법 국왕이라면 국가의 운명과 직결되는 존재라고 할 수 있다. 오늘날 우리는 권력이 대통령에게 집중되는 대통령 중심제 국가에 살고 있지만, 조선의 국왕은 대통령보다 훨씬 막강한 권력을 행사할 수가 있었다. 오늘날의 정부 기구는 입법, 사법, 행정 등 삼부(三府)로 나눠져 있고, 대통령은 그중에서도 행정부의 수반으로 일하고 있다. 그렇지만 국왕은 삼부를 총괄하는 최상의 권력을 가지고 있었다. 또한 대통령의 임기는 5년 단임제에 불과하지만 국왕의 임기는 일단 왕위에 오르면 특별한 결함이 없는 한 평생토록 지속하는 종신직이었다. 국왕은 이처럼 막강한 존재였기에 제대로 된 국왕이 나오지 않는다면 그 국가의 운명은 극도로 위험해 질 수 있었다. 실록에서 장차 ..

영조대 왕실의 식생활 - 장수한 영조가 즐겼던 음식들

영조의 어머니는 무수리 출신으로 알려진 숙빈(淑嬪) 최씨(崔氏, 1670~1718)이다. 아버지 숙종은 첫 왕비와 계비로부터 아들을 얻지 못하고 훗날의 희빈(禧嬪, 1659~1701)이 된 나인 장씨와의 사이에서 경종(景宗, 1688~1724)을 낳았다. 그 후 숙종은 희빈에게 불만을 느꼈고, 그즈음 무수리였던 숙빈 최씨가 숙종의 총애를 얻기 시작했다. 이런 정국 속에서 영조는 1694년(숙종 20) 음력 9월 13일 새벽에 창덕궁 보경당(寶慶堂)에서 태어났다. 6세 때 연잉군 (延礽君)에 봉해진 영조는 커가면서 왕실에서 본인이 처한 위태로운 위치를 알기 시작했다. 더욱이 연잉군은 몇 차례 잘못된 행동 때문에 숙종으로부터 질책을 받아 눈 밖에 났던 적도 있었다. 그러나 숙종 사후에 소론의 지원을 받은 경..

(얼레빗 4651호) 돈 받고 대신 매를 맞는 일, 매품팔이

지난 2월 뉴스엔 “대한체육회가 이른바 '맷값 폭행'으로 사회적 물의를 일으켰던 최철원 대한아이스하키협회장 당선인(마이트앤메인 대표)의 인준을 최종 거부했다.”라는 보도가 있었습니다. 그런데 흥보전에는 “이때 본읍 김좌수가 흥부를 불러 하는 말이, ‘돈 삼십 냥을 줄 것이니 내대신 감영에 가서 매를 맞고 오라.’ 흥부 생각하되, ‘삼십 냥을 받아 열냥 어치 양식 사고 닷냥 어치 반찬 사고 닷냥 어치 나무 사고 열 냥이 남거든 매 맞고 와서 몸조섭하리라.’“라는 대목이 있습니다. 바로 매품팔이 대목이죠. 실제 조선시대에 이런 매품팔이가 있었을까요? 《승정원일기》에 “돈을 받고 대신 곤장을 맞는다.”라는 기록이 있는 것을 보면 매품팔이가 있었던 게 분명하지요. 특히 단국대학교 동양학연구원 장유승 책임연구원이..

(얼레빗 4463호) 조선시대 침구술 시술을 연습했던 청동인체상

조선시대 병을 치료하는 중요한 방법 가운데 하나는 침과 뜸 곧 침구술이었습니다. 그런데 침구술로 병을 치료하기 위해서는 인체에 있는 수백 개의 경혈을 침구술을 시술하는 사람이 정확히 파악하고 있어야 했지요. 경험이 부족한 의료진이 시술하면 환자가 위험할 수 있어서 조선 왕실에서는 청동으로 경혈을 표기한 인체상을 만들어 정확한 침구술을 익히는 연습을 했습니다. ▲ 청동인체상 전체모습(왼쪽), 머리 위 액체 주입구 모습 침구술을 연습하기 위해 만든 청동인체상 머리 위에는 구멍이 있는데 여기에 물이나 수은을 넣은 뒤, 시술자가 올바른 혈 자리에 침을 놓으면 액체가 흘러나오도록 하였지요. 《승정원일기》 기록에 따르면 1747년(영조 23년) 숙종의 왕비인 인원왕후를 치료하기 전 2명의 의관을 뽑을 때 청동인체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