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문 8

(얼레빗 제5011호) 임금이 내린 교지와 편지도 한글로 썼다

지난 10월 9일은 578돌 한글날이었습니다. 그런데 많은 이가 세종임금이 만든 훈민정음이 조선시대 내내 ‘언문’이라 하여 푸대접받았다고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실제로는 임금이나 왕비 등이 한글 편지를 썼음은 물론 교지도 한글로 써서 사실상 한글은 많은 이가 쓰는 글자였습니다. 특히 임진왜란 때인 선조 25년(1592년) 4월 13일 선조임금은 공식 문서인 교지에 언문을 썼지요. 교지를 쓴 때는 왜군이 7백여 척의 배를 앞세워 부산포로 쳐들어와 미처 전쟁 준비를 하지 못했던 조선은 왜군의 침략 앞에 속수무책으로 당했습니다. 속속들이 관군이 무너졌다는 소식을 들으며 선조는 탄식하게 됩니다. 그래서 《선조실록》 25년 8월 19일 기록을 보면 “언서로 방을 많이 써서 송언신에게 보내어 민간을 알아듣게 타이르..

(얼레빗 제4972호) 언문을 ‘한글’이라고 부르게 한 주시경 선생

“말은 사람과 사람의 뜻을 통하는 것이라. 한 말을 쓰는 사람끼리는 그 뜻을 통하여 살기를 서로 도와주므로 그 사람들이 절로 한 덩이가 지고, 그 덩이가 점점 늘어 큰 덩이를 이루나니, 사람의 제일 큰 덩이는 나라라. 그러하므로 말은 나라를 이루는 것인데, 말이 오르면 나라도 오르고 말이 내리면 나라도 내리나니라. 이러하므로 나라마다 그 말을 힘쓰지 아니할 수 없는 바니라.” 이 말은 말이 겨레의 정체성이요, 독립 번영의 연장이라는 뜻으로 110년 전인 1914년 오늘(7월 27일) 세상을 뜨신 한힌샘 주시경 선생(1876~1914)이 하신 말씀입니다. 평생 배달말(우리말)을 올곧게 사랑하고 실천하고 가르치신 주시경 선생은 우리 말글을 갈고 닦아 가르치는 일이야말로 암울한 시대에 국권을 회복하고 겨레의 ..

공학박사의 한글 이야기 8, 훈민정음 창제 그 이후의 훈민정음 역사

1446년 9월 10일 훈민정음을 반포하자마자 세종대왕은 이를 공식적으로 사용합니다. 10월 10일에는 신하들의 죄목을 직접 언문으로 써서 의금부와 승정원에 보냈으며 다른 궁내 공문을 언문으로 작성하여 훈민정음의 사용을 널리 알렸습니다. 같은 해 12월에는 과거시험에 언문을 포함하도록 하여 훈민정음을 모르면 출세하지 못하도록 못을 박았던 것입니다. 여기서 언문에 대해 한 말씀 드리겠습니다. 언문은 훈민정음을 비하하여 쓰던 말이라고 하는 사람들이 있지만 그렇지 않습니다. 그냥 편하게 쓰던 이름이었던 것입니다. 이미 앞에서 언급한 것처럼 세종은 첫째 아들 문종과 둘째 수양대군, 그리고 정의공주를 훈민정음 창제 과제에 깊이 참여시켜 훈민정음이 자연스럽게 후대로 넘어가도록 포석을 깔아 두었습니다. 창제 후인 1..

(얼레빗 4758호) 임금과 왕비가 보낸 한글 편지

우리는 최만리를 비롯한 대다수 집현전 학자들이 훈민정음 창제를 반대했음을 잘 알고 있습니다. 그뿐만 아니라 훈민정음을 창제했어도 왕실이나 사대부들이 훈민정음이 언문이라며 외면한 줄 알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전해지는 문헌을 보면 임금부터 왕실 어른들은 한글로 편지를 썼음을 알 수 있지요. 또 이렇게 왕실이 한글편지를 썼다면 사대부 벼슬아치들도 적극적으로 쓰지 않았다고 할지라도 이를 외면할 수는 없었을 것입니다. ▲ 정조임금이 원손 시절 외숙모에게 쓴 한글편지(개인소장) 특히 정조임금은 어렸을 때부터 한글을 썼던 임금 가운데 하나였습니다. 정조가 만 3~4살부터 46살 때인 정조 22년(1798년)까지 큰외숙모인 여흥민씨(驪興閔氏)에게 보낸 한글편지 16점을 모아 묵은 편지첩 《정조국문어필첩(正祖國文御筆帖)..

국어로 바라보기 - '국어'의 초석을 놓은 고종과 주시경

한글, 드디어 ‘국문’이 되다 1894년(고종 31) 11월 21일, 한글은 우리나라의 공식 문자가 된다. 창제된 지 약 450년 만이다. 고종은 칙령을 내려 법률과 칙령은 모두 국문(國文)을 기본으로 하고, 한문(漢文)으로 번역하거나 혹은 국한문으로 섞어서 쓸 것을 규정했다. 공문서를 기본적으로 한글로 작성하고 필요에 따라 한문 번역을 덧붙이거나 한글과 한자를 섞어 쓴다는 원칙을 천명한 것이다. 그리고 얼마 후 우리나라 최초의 근대적 헌법이라고 할 수 있는 홍범 14조를 한글, 한문, 국한 혼용문의 세 가지로 작성하여 발표함으로써 한글 본위로 공문서를 작성한다는 원칙을 실행했다. 그동안 한글은 일반 백성 사이에서는 널리 쓰였으나 공식적으로 인정받지 못했다. 언문(諺文, 상말을 적는 문자라는 뜻으로, 한..

역사를 빛낸 한글, 한글이 빛낼 역사 - 역사를 빛낸 한글 28대 사건

‘한글’. 우리가 우리말을 ‘한글’로 부른 것은 생각보다 얼마 되지 않았다. 그전에는 ‘언문’, 또는 ‘훈민정음’이라 불려오다가, 주시경 선생이 ‘위대하고 큰 하나의 글’이라는 뜻을 담아 ‘한글’이라는 이름을 붙이면서부터 한글은 민족의 마음속에 크고도 높게 자리 잡았다. 이 책 《역사를 빛낸 한글 28대 사건》은 1443년 세종대왕이 한글을 창제한 때부터 1940년 《훈민정음》 해례본이 발견되기까지, 한글이 우리 역사에 스며드는 과정을 28대 사건으로 풀어냈다. 그 가운데는 허균이 최초의 한글 소설 《홍길동전》을 펴낸 것처럼 익숙한 이야기도 있지만, 대부분은 한 번도 접해보지 못했던 생소한 이야기가 많아 한글을 둘러싼 역사를 새로운 눈으로 바라보게 한다. ▲ 《역사를 빛낸 한글 28대 사건》, , 김슬옹..

10월 12일 - 위대한 글자 한글 넷, 훈민정음에서 한글로

한글은 세종이 28자를 반포할 1446년 당시는 훈민정음이라 불렸습니다. 훈민정음은 백성을 가르치는 바른 글이란 뜻이겠지요. 그런데 이 '훈민정음'이 왜 '한글'로 불리게 되었을까요? 훈민정음은 반포 이후 언문(諺文), 언서(諺書), 반절, 암클, 아랫글이라고도 불렸으며, 한편에서는 가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