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국어 17

한국어 교육, 그리고 우리 - 한국어 책에서 보는 한국의 삶

세상의 모든 것은 시간에 따라 변한다. 한국어 교실에서 가르치는 말도 세상과 삶의 변화에 따른다. 외국어를 배우는 목적이 의사소통에 있는 것인 만큼, 외국어 책에는 일상생활에서 쓰이는 말들이 우선적으로 선정된다. 그러다 보면 ‘책’이 그 말을 쓰는 이들의 세상살이를 그대로 비추게 된다. 한 예로, 오래전 한국어 책에 나오던 ‘다방’이 ‘커피숍’으로 바뀌더니, 요즘에는 다시 ‘카페’로 바뀌어 있다. 젊은이들이 다방이라고 말하지 않게 된 어느 순간과 마찬가지로, 지금 한국의 젊은이들은 커피숍이라고 하지 않는다는 것을 방증한다. ‘빨리빨리 문화’로 대변되는 한국 사회는 변화가 크고 역동적인 사회라고 자타가 공인한다. 그러한 변화가 한국어 책에는 어떻게 그려져 있을까? 사강: 이 구내 서점에서 공책도 살 수 있..

웰빙과 힐링을 빼니 치유가 보인다

우리말도 그렇지만, 영어의 말뿌리(어원)를 알면 그 낱말의 뜻을 좀 더 깊게 이해할 수 있다. 영어 ‘culture’를 받아들이면서 한자권에서는 ‘문화(文化)’라고 번역했다. 자연 상태에서 벗어나 일정한 목적을 실현하고자 사회 구성원들이 함께하는 행동 양식 등을 문화라고 쓴 것이다. ‘농업’이라고 번역하는 ‘agriculture’의 말뿌리는 땅에서(agri) 사회 구성원들이 함께하는 일(culture)에서 왔다. 예전에는 모여 사는 집단 사이에 교류가 없었기 때문에, 이 동네에서 농사짓는 방식과 저 동네에서 농사짓는 방식이 서로 달랐다. 그렇게 서로 다른 농사짓는 방식이 바로 영어로 ‘agriculture’이다. ‘culture’를 받아들이면서 ‘문화’라는 멋없는 낱말 말고 ‘삶의 방식’으로 받아들이고,..

(얼레빗 4702호) “리셋의 시간?”, 우리말 짓밟는 언론

한겨레신문 2월 15일 치 신문 1면에는 대문짝만하게 대통령 후보들의 사진을 올려놓고 제목을 “펜데믹 이후 한국사회 ‘리셋의 시간’”이라고 달아 놓았습니다. 그런데 이 제목을 좀 길더라도 ”지구촌 돌림병 대유행 이후 한국사회 ‘재시동의 시간”이라고 하면 안 될까요? 책이건 신문이건 글을 쓰는 바탕은 쉽게 쓰기입니다. 그렇기 위해서는 어려운 한자말이나 외래어 또는 외국어를 써서는 안 되겠지요. 이 기사를 쓴 기자는 굳이 ’펜데믹‘, ’리셋‘이라는 말을 써야 유식한 것이라고 착각하는 모양이지만 그건 잘난 체와 다름없습니다. ▲ “펜데믹 이후 한국사회 ‘리셋의 시간’”이라고 제목을 단 기사 심지어 에 들어오는 보도자료들을 보면 기자나 편집자들이 이해하지 못할 어려운 말을 쓰는 곳들이 제법 많습니다. 그래서 나..

대통령 후보들이여, “토박이말 살리기”를 다짐하라

제20대 대통령선거가 21일 앞으로 다가왔다. 따라서 요즘 우리나라는 주요 후보자 4명의 정책과 소식이 넘쳐나 다소 혼란스럽기 조차 하다. 그런데 주요 후보자들의 다짐이나 선거운동을 보면 온통 정치와 경제 얘기뿐이다. 물론 그럴 수밖에 없기도 하겠지만, 세상은 정치나 경제만 가지고 살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광복 뒤 백범 김구 선생은 우리에게 이런 말을 남기셨다. “나는 우리나라가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나라가 되기를 원한다. 가장 부강한 나라가 되기를 원하는 것은 아니다. 우리의 부는 우리 생활을 풍족히 할 만하고, 우리의 힘은 남의 침략을 막을 만하면 족하다. 오직 한없이 가지고 싶은 것은 높은 문화의 힘이다. 문화의 힘은 우리 자신을 행복하게 하고, 나아가서 남에게도 행복을 주기 때문이다.” 그렇다..

한국어 교육, 그리고 우리 - 앞으로 쭉 가세요

“똑바로 가세요. 그리고 사거리에서 오른쪽으로 가세요.” 외국어로 길 찾기를 배울 때면 한 번쯤 입으로 해 본 말이다. 영어를 비롯한 외국어 책에는 길에서 위치를 묻거나 안내하는 표현들이 꼭 있다. 길 찾기를 연습하는 단원은 한국어를 가르치는 책에도 대부분 있다. 그런데 여러 번 생각해 봐도 나는 길에서 책에 나오는 대로 말해 본 적이 거의 없다. 다시 말해, 한국의 길 위에서 안내하는 것이 책에서처럼 딱 떨어지지 않는다. 왜 그럴까? 한국의 일상생활에서는 방향을 주로 ‘앞’과 ‘뒤’, ‘옆’으로 말한다. ‘앞’이란 사람이 향하고 있는 곳이고, 그 반대쪽이 ‘뒤’이다. 그리고 말하는 사람에게 가까운 곁은 모두 ‘옆’이다. 앞은 사람이 바라보고 있는 방향인 만큼 가장 많이 쓰일 말이다. 집 앞에 있는 뜰은..

백신 패스 -> 방역확인증

'백신 패스'라는 외국어를 대신할 우리말로 '방역확인증'이 뽑혔다. 공공기관이나 언론이 사용하는 어려운 말을 쉬운 말로 다듬기 위해 꾸려진 한글문화연대 말모이 모임이 10월 13일부터 11월 1일까지 '백신 패스'의 쉬운 우리말을 논의한 결과였다. 백신 패스란 정부가 준비하고 있는 단계적 일상회복(위드 코로나) 방안 중 하나로, 코로나19 백신 접종완료자가 공공시설이나 다중이용시설을 이용할 때 방역 조치로 인한 제한을 받지 않도록 시행을 계획 중인 제도이다. 많은 의견들이 오가는 와중에 10월 20일 국립국어원 새말모임에 참석했던 이건범 대표는 백신 패스에 대해 다음과 같이 설명하였다. "오늘 국립국어원 새말모임에 가서 회의하고 왔는데, '백신 패스'를 다루었습니다. 보건복지부 쪽에서도 바꾸려고 하는데,..

위드 코로나 → 생활 속 방역

'위드 코로나'라는 외국어를 대신할 우리말로 '생활 속 방역'이 뽑혔다. 공공기관이나 언론이 사용하는 어려운 말을 쉬운 말로 다듬기 위해 꾸려진 한글문화연대 말모이 모임이 9월 1일부터 9월 10일까지 '위드 코로나'의 쉬운 우리말을 논의한 결과였다. 위드 코로나(with Corona)란 코로나19와 함께하는 시대, 즉 완전한 종식을 기대하는 것보다 치명률을 낮추는 새로운 방역체계 등을 도입해 코로나19와의 공존을 준비해야 한다는 것이다. 많은 의견들이 오가는 와중에 9월 6일 정부에서 '위드 코로나'가 방역 긴장감이 낮아지는 문제가 있어 '단계적 일상 회복 방안'이라는 용어로 바꿔 쓰자고 발표하여 반가운 소식을 접했다. 이건범님은 "정부 발표를 다시 살펴보면서, 우리가 위드 코로나의 대체어를 만드는 일..

사전 두 배로 즐기기 - ‘한국수어사전’, 수어로 연결하기

지방에 가려고 기차역에 갔을 때였다. 대합실에 있는 대형 텔레비전에서 정부 정책이 방송되고 있었다. 그리고 그 옆에서 수어통역사가 한국어를 한국수어로 통역하고 있었다. 어느새 수어가 우리 사회에 낯설지만은 않은 언어가 되어 있었다. 정부 정책 발표뿐만 아니라 다양한 방송 화면 우측 하단에서도 수어 통역을 볼 수 있고, 각종 행사, 토론회 등에도 수어통역사가 배치되는 경우가 늘고 있다. 가끔 지하철에서 수어로 대화하는 농인들을 보기도 한다. 수어가 대중 매체에 많이 노출되면서 사람들에게 질문을 받는 일이 늘어났다. 그중에서 제일 많이 받는 질문은 “수어는 만국공통어인가요?”이다. 우리가 사용하는 제스처와 비슷하게 손, 머리 그리고 몸을 이용해 말을 하는 언어이다 보니 모든 나라의 수어가 같을 것이라고 생각..

'위드 코로나', 함께 갈 수 없는 말

정부와 언론 등 여기저기서 ‘위드 코로나’라는 말을 사용하니 혹시라도 방역에 문제를 일으킬까 하여 방역 당국에서 이 말 사용을 피해달라고 요청했다. 공공언어에서 외국어나 모호한 용어를 사용할 때 일어날 수 있는 혼란을 잘 보여준 사건이다. 중앙사고수습본부 관계자는 “이 용어 자체가 정확한 정의가 없는데 너무 포괄적이고 다양한 의미로 활용된다”며 “확진자 발생을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고 사회적 거리두기를 없앤다는 의미로도 표현이 되고 있어 방역적 긴장감이 낮아지는 문제점이 있다”라고 말했다. 정부 차원에서는 ‘단계적 일상 회복 방안’이라는 말을 검토 중이란다. 찬성이다. 그런데 정은경 질병관리청장도 이미 몇 차례 이 말을 사용했다. 지난 8월 23일에 정 청장은 “9월 말이나 10월 초부터는 위드 코로나 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