을미사변 9

(얼레빗 제4881호) 1895년 11월 15일 선포된 단발령, 백성들 저항

1895년(고종 32) 11월 15일 김홍집내각은 어른이 된 남자의 상투를 자르도록 단발령(斷髮令)을 내렸습니다. 그러나 8월 20일 을미사변으로 명성황후가 처참하게 시해되어 반일의식이 한층 높아진 상태에서 단발령은 백성 사이에 기름을 부은 꼴이 되었습니다. '신체발부(身體髮膚)는 수지부모(受之父母)라 불감훼상(不敢毁傷) 효지시야(孝之始也)라'라는 말은 공자(孔子)가 한 말로 “너의 몸과 터럭(털), 그리고 살갗은 모두 부모에게 물려받은 것이니 감히 손상하지 않게 하는 것이 효도의 시작이니라.”라는 윤리의식이 뿌리 깊었던 유생들에게는 목숨을 내놓으라 한 것이나 다름없었던 것입니다. 고종과 태자가 압력에 못 이겨 상투를 잘랐지만, 학부대신 이도재(李道宰)는 명령을 따를 수 없다고 상소하고는 대신 직을 사임..

도끼를 가지고 상소를 올린 면암 최익현

도끼를 가지고 상소를 올린 면암 최익현 어떤 이가 공을 세우려고 순검을 데리고 가서 순검들에게 면암 최익현 선생의 머리를 자르라고 하였다. 이에 순검들은 깜짝 놀라 ‘우리들이 차라리 죽을지언정 어찌 차마 대감의 머리에 칼을 대겠는가?’라며 꾸짖었다. 순검들이 크게 욕하고 가버리니 그의 흉계가 수포로 돌아갔다. 선생이 이 말을 듣고 탄식하기를 ‘이름이 선비면서 처신이 이와 같으니 참으로 금수만도 못하다’라고 했다. 1895년 일어났던 일입니다. 당시 단발령이 내려진 상태였지만 면암(勉菴) 최익현(崔益鉉)의 머리는 그 누구도 자를 수 없었습니다. 1906년 홍주(洪州) 의병 80명이 갇혀 있었는데 일본 헌병이 칼을 가지고 와서 머리를 자르려고 하다가 최익현이 왔다는 소리를 듣고 깜짝 놀라며 달아났다는 이야기..

명성황후 시해한 '호리구치 구마이치' 편지 발견

126년 전인 1895년 10월 8일, 조선의 국모인 ‘명성황후 시해사건’과 관련된 편지가 일본에서 발견되었다고 11월 16일치 아사히신문이 크게 보도했다. 이날 공개된 편지는 단순한 시해사건 내용이 아니라, ‘자신들이 궁궐에 들어가 명성황후를 시해했다’는 자백의 편지라 더욱 큰 충격을 주고 있다. ‘자신들이 왕비를 죽였다’고 자백한 사람은 당시 조선의 영사관보였던 호리구치 구마이치(1865~1945)다. 이번에 발견된 편지는 호리구치가 자신의 고향인 니가타현 나카도리무라(현 나가오카시)에 사는 친한 친구이자 한학자인 타케이시 사다마츠에게 1894년 11월 17일자로부터 사건 직후인 1895년 10월 18일자까지 보낸 8통의 편지다. ▲ 호리구치 구마이치가 명성황후를 시해했다는 내용의 편지를 고향 친구에..

(얼레빗 4409호) 오늘은 125년 전 명성황후가 시해당한 날

2001년 우리는 KBS 드라마 “명성황후”에서 조수미의 노래 을 들으면서 주먹을 불끈 쥐고 통곡을 해야 했습니다. 그로부터 13년이 지난 2014년 MBC “K-POP” 프로그램에서 젊은 가수 정은지의 목소리로 이 노래를 다시 들으면서 가슴 속으로 폭풍 같은 눈물을 쏟았습니다. 1895년 오늘(8월 20일)은 ‘을미사변’ 곧 대한제국 국모 명성황후가 일제의 “여우사냥”이란 음모에 의해 처참하게 시해당한 날입니다. 청ㆍ일 전쟁의 승리로 기세가 올랐던 일본은 명성황후를 조선 침략에 가장 큰 걸림돌이라고 생각하고 거침없이 제거한 것입니다. 그런데 명성황후 살해에 가담했던 토오 가츠아키가 쓴 칼 히젠도(肥前刀)가 일본 후쿠오카 쿠시다 신사에 보관돼있습니다. 토오 가츠아키는 1908년 일본으로 돌아가 이 히젠도..

(얼레빗 4210호) 어제 ‘순국선열의날’, 위대한 공훈 기억해야

어제는 제80돌 ‘순국선열의날’이었습니다. ‘순국선열의날’은 국권회복을 위해 헌신, 희생하신 순국선열의 독립정신과 희생정신을 후세에 길이 전하고 위대한 공훈을 기리기 위해 제정된 법정기념일입니다. 1905년 을사늑약으로 대한제국의 외교권을 찬탈당한 날인 11월 17일을 기억..

(얼레빗 4209호) 1895년 오늘 단발령 선포, 백성 저항에 부딪혀

1895년(고종 32) 오늘(11월 15일) 김홍집내각은 성년남자의 상투를 자르도록 단발령(斷髮令)을 내렸습니다. 그러나 8월 20일 을미사변으로 명성황후가 처참하게 시해되어 반일의식이 한층 높아진 상태에서의 단발령은 백성 사이에 기름을 부은 꼴이 되었습니다. “신체발부(身體髮膚)는 수지..

(얼레빗 4200호) 일본군이 두려워한 평민의병장 신돌석

141년 전(1878년) 11월 3일은 의병대장 신돌석 선생이 태어난 날이지요. 신돌석 선생은 대한제국 말기의 평민출신 항일 의병장으로, 을미사변과 을사늑약 이후 경상도와 강원도 일대에서 일본군에게 큰 타격을 준 활약을 하였습니다. 선생은 19살의 나이로 동지들을 규합하여 고향에서 의병..

(얼레빗 4097호) 나라밖 18만 점 문화재 귀환시켜야

한국문화편지 4097호 (2019년 06월 11일 발행) 나라밖 18만 점 문화재 귀환시켜야 [얼레빗으로 빗는 하루 4097][우리문화신문=김영조 기자] “구한말 가장 앞장서 일본에 맞서 싸운 을미의병장 척암 김도화(金道和, 1825~1912)의 문집 책판이 대한민국임시정부 수립 100돌을 맞아 고국으로 돌아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