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염병 10

노인들의 사회적 고립

노인들의 사회적 고립노인들의 사회적 고립은전염병과도 같다. 건강에도 나쁘다.앤지 리로이와 동료 연구자들은 200명 이상의건강한 사람들을 대상으로 얼마나 외로움을 느끼는지설문 조사를 했다. 그런 다음, 그들에게 일반적인 감기바이러스를 투여한 뒤 격리된 호텔 방에서 지내게 하면서아픈 동안의 감정을 기록한 결과를 '건강심리학'지에발표했다. "아플 때 외로운 사람들은 덜 외로운사람들보다 더 기분이 나빠졌다."- 코니 츠바이크의 《오십부터 시작하는 나이듦의 기술》 중에서 -* 키에르케고르는죽음에 이르는 병은 '절망'이라 했습니다.그러나 절망보다 더 괴로운 병이 '외로움'입니다.세계 인구가 80억 명인데 내 곁에는 아무도 없는적막감에 사람들은 힘없이 무너집니다. 특히노인들의 사회적 고립은 심각합니다.피땀 흘려 오늘..

사람 사이 간격

사람 사이 간격 사람 간의 거리는 공간의 밀도를 결정한다. 공간의 밀도는 그 공간 내 사회적 관계를 결정한다. 코로나19라는 전염병은 사람과 사람 사이의 간격을 바꾸었다. 가까웠던 사람들도 멀리 떨어지게 만들었다. 사람 간의 간격이 바뀌자 사람 간의 관계가 바뀌었고, 사람 간의 관계가 바뀌자 사회도 바뀌고 있다. - 유현준의《공간의 미래》중에서 - * 사람 사이 간격에는 '몸의 거리'와 '마음의 거리'가 있습니다. 이 둘은 서로 깊은 상관관계가 있습니다. 몸이 멀어지면 마음도 멀어지고, 마음이 멀어지면 몸은 더 멀어집니다. 코로나가 몰고 온 예기치 못한 현상입니다. 그러나 인간이 코로나에 끌려다닐 수는 없습니다. 사람 사이 몸의 거리가 멀어질수록 그리움, 간절함은 더 커져 코로나 이전보다 더 사랑할 수 ..

자신을 구하고 가난을 구제한 김만덕

자신을 구하고 가난을 구제한 김만덕 나이 10세 때 아버지는 바다에서 풍랑으로 죽고, 어머니는 전염병으로 죽어 천애 고아가 된 김만덕(1739∼1812년)은 친척집에서 살다가 기생이 되었지요. 그러다 양가 출신인 자신이 기생이 된 것이 원통하여 제주목사에게 눈물로 호소한 끝에 기녀명단에서 자신의 이름을 지울 수 있었습니다. 그리곤 객주를 차리고 장사를 하기 시작합니다. 그녀는 제주의 양반층 부녀자들에게 뭍의 옷감이나 장신구, 화장품을 팔고 제주 특산품인 녹용이나 귤은 뭍에 팔아 돈을 벌었습니다. 그 뒤 관가에까지 물건을 대주고 많은 장삿배도 가지게 되었지요. 그런데 정조 17년(1793년)부터 제주도에는 흉년이 계속되어 세 고을에서만 굶어 죽은 사람이 600여 명이나 되었습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나..

임금이 초가로 거처를 옮기고 식음을 끊은 까닭은?

임금이 초가로 거처를 옮기고 식음을 끊은 까닭은? 원상 최항·김질이 아뢰기를, “근래 날씨가 가뭄으로 인하여 감선(減膳)하신 지가 이미 오래 되었는데, 지금 또 낮에 수반(水飯)을 올리도록 하시니, 선왕조의 감선한 것도 이러한 데 이르지는 아니하였습니다.” 하니 전지(傳旨)하기를, “세종조에는 비록 풍년이 들었더라도 수반을 올렸는데, 지금 수반을 쓴들 무엇이 해롭겠는가?” 하였다. 김질이 말하기를, “대저 비위(脾胃)는 찬 것을 싫어하므로, 수반이 비위를 상할까 염려하는데, 보통 사람에게 있어서도 또한 그러하거늘, 하물며 지존(至尊)이겠습니까?” 하니 전지하기를, “경(卿)의 말과 같다면 매양 건식(乾食)을 올려야 하겠는가?” 하였다. 『성종실록』 1년(1470년) 6월 1일 기록입니다. 또 『인조실록』..

(얼레빗 4614호) 옛 사람들 돌림병 돌자 귀신에 제사 지내

“서울에 돌림병이 크게 유행하여 사람이 많이 죽는지라, 임금이 한성부에 명하여 집계하여 보니 죽은 자가 4백 57인이 되고, 또 병조에 명하여 호군(護軍) 다섯 사람으로 하여금 성문을 지키면서 사람의 주검이 문을 나가는 것을 헤아려서 아뢰라고 하였다. 좌찬성 황보인(皇甫仁)이 고려 숙종(肅宗) 때의 옛일에 따라 돌림병 귀신에게 제사지내어 예방하기를 청하니, 그대로 따랐다.” 위는 《세종실록》 세종 29년(1447) 5월 1일 치 기록으로 서울에 돌림병이 돌아 심각했음을 얘기하면서 돌림병 때문에 귀신에게 제사지내기까지 했다는 기록입니다. 우리말로 돌림병(한자말로는 전염병)이라 부르는 병들은 《조선왕조실록》에만도 259건이 검색될 정도로 고통을 받았지요. 특히 지금은 별것 아닌 홍역 같은 돌림병에도 쩔쩔 매..

(얼레빗 4394호) 조선시대, 돌림병 환자들 병막에 격리

조선시대에 유행했던 돌림병 곧 전염병은 염병이라고 했던 장티푸스와 천연두, 홍역, 호열자(콜레라를 음차하여 부르던 이름) 등이 주된 것이었다고 합니다. 천연두, 곧 두창은 ‘마마’라고 하는 극존칭을 썼을 정도로 무서워하던 병이었고, 감히 두신(痘神)을 모욕할 수 없다고 해서 약..

(얼레빗 4283호) 조선시대 피해가 컸던 돌림병 대처법

"얼음이 얼어붙는 추운 날에 거동하면 몸을 상하게 할 염려가 이미 적지 않고, 더군다나 지금은 전염병이 갈수록 심해지니, 모시고 따라가는 문무백관들이 모두 재소(齋所, 제사 지내는 곳)에서 밤을 지낼 수가 없고, 빽빽하게 따르는 군졸들 또한 어찌 모두가 아무렇지 않을 수 있겠으며,..

(얼레빗 4020호) 의원 이헌길에 벌떼같이 뒤따른 사람들

한국문화편지 4020호 (2019년 02월 22일 발행) 의원 이헌길에 벌떼같이 뒤따른 사람들 [얼레빗으로 빗는 하루 4020][우리문화신문=김영조 기자] 2015년 우리나라는 중동호흡기증후군(메르스)으로 38명이 목숨을 잃었고, 온나라가 엄청난 시련을 겪었습니다. 그런데 지금처럼 의학이 발달하지 못..

(얼레빗) 3259. 전염병에 대한 처방을 모은 책 《간이벽온방(언해)》

날마다 쓰는 한국문화 편지 <얼레빗으로 빗는 하루> 다른 얼레빗 모두 보기 단기 4349(2016). 4. 5. 지난해 우리는 메르스 공포로 온 국민이 두려워했습니다. 지금처럼 의학이 발달했어도 전염병이 돌면 전전긍긍하지만 예전에는 더욱 그러했지요. 중종 때인 1524년 가을부터 이듬해 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