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로경찰서 4

(얼레빗 제5052호) 사백여 명의 일경과 싸운 김상옥 의사

102년 전(1923년) 오늘은 김상옥 의사가 천여 명의 일제 경찰을 상대로 싸우다 순국한 날입니다. 의사는 당시 일제 경찰력의 중심부이자 독립운동가 검거와 탄압의 상징이었던 종로경찰서에 폭탄을 던진 뒤 신출귀몰한 모습으로 경찰을 따돌립니다. 그 뒤 삼판동(오늘의 후암동)에서 일전을 치른 다음 또다시 포위망을 뚫고 효제동 동지의 집에 숨었습니다. 이후 의사의 은신처를 찾은 일경은 경기도 경찰부장의 지휘 아래 시내 4개 경찰서에서 차출한 사백여 명의 무장경찰을 동원하여 1월 22일 새벽 5시 반 무렵 김 의사가 숨은 집을 겹겹이 포위하였지요. 이에 김상옥 의사는 양손에 권총을 들고 인근 집들의 지붕을 타고 넘나들며 무장경찰과 치열한 격전을 벌였습니다. 조국독립의 염원을 담은 의사의 총구는 쉴 새 없이 불을..

(얼레빗 제4988호) 민족 언론의 자존심, 1936년 일장기 말살사건

1936년 8월 9일 열린 베를린 올림픽 본선 마라톤 경기에서 손기정 선수와 남승룡 선수는 금메달과 동메달을 땄습니다. 일제는 당시 베를린 올림픽 마라톤에 이 두 선수의 출전을 막으려고 온갖 술수를 썼지만, 기록에서 현저히 뒤지는 일본 선수를 뽑을 수 없어 마지못해 조선인 선수를 뽑은 것이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이때 일제와 일본어 발행 신문들은 일본인으로서 ’손 기테이‘를 일제히 칭송하고 나섰습니다. 하지만, 동아일보와 조선중앙일보는 “가슴에 나라 잃은 한을 품고 혼을 불살라 이룬 조선인 손기정의 우승마저 일본에 빼앗겨서는 안 된다.”라며 민족지 언론의 자존심을 지키고자 했습니다. 그래서 여운형 사장의 조선중앙일보는 1936년 8월 13일 자 신문에 일장기를 지운 사진을 실은 뒤 자진 휴간을 선언했고, ..

10월의 독립운동가, 이종암ㆍ이강훈ㆍ엄순봉

국가보훈부는 광복회, 독립기념관과 함께 조국의 독립을 위해 친일파 처단 등 의열활동을 펼친 독립유공자, 이종암(1962년 독립장), 이강훈(1977년 독립장), 엄순봉(1963년 독립장) 선생을 〈2023년 10월의 독립운동가〉로 뽑았다. 대구광역시 출생의 이종암(1896년) 선생은 1918년 2월 만주로 망명했다. 서간도 신흥무관학교에 입학하여 속성과정을 거쳐 1919년 10월 수료했고, 동창생들과 의기투합하여 의열단*을 11월에 창립했다. * 1919년 11월 만주 지린성에서 조직된 항일무력독립운동단체로써 1920년대 일본 고관 암살과 관공서 폭파 등을 펼침 선생은 국내로 밀입국해 최수봉(崔壽鳳, 호적명 최경학, 1963년 독립장)을 만나 폭탄 거사를 제의, 최수봉이 12월 27일 밀양경찰서로 진입해..

홀로 400여 명의 일경과 맞선 김상옥을 아십니까?

서울 종로구의 종로5가와 6가 사이 위쪽에는 효제동이란 곳이 있다. 북쪽으로는 이화동(梨花洞), 동쪽으로는 충신동(忠信洞)ㆍ종로6가, 남쪽으로는 종로5가, 서쪽으로는 연지동(蓮池洞)과 접해 있는 지역인데 지금부터 99년 전인 1923년 1월 22일 이곳에서는 세상을 놀라게 한 총격전이 벌어졌다. ▲ 마로니에 공원의 김상옥 의사상 이 동네의 이혜수란 사람의 집에는 열흘 전에 종로경찰서에 폭탄을 던진 34살의 한 청년이 숨어들어 있었는데, 추적하던 일본 경찰이 새벽에 이 청년의 은신처를 알고는 무장경찰 4백여 명을 동원해 이 씨의 집을 겹겹이 포위하고 포위망을 좁혀오던 상황이었다. 이에 이 청년은 지붕 위로 올라가 몇 시간 동안 일본 경찰과 지붕을 타고 다니며 권총으로 총격전을 벌여 많은 일본경찰이 죽거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