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묘 6

(얼레빗 제4817호) 왜적, 종묘에서 많이 죽어 나가

《선조실록》 선조 25년(1592년) 5월 3일 치 기록에 보면 “경성이 함락되자 도검찰사 이양원 등이 도망한다.”라는 내용이 있습니다. 뒷부분에 보면 “이때 궁궐은 모두 불탔으므로 왜적 대장 평수가(平秀家)는 무리를 이끌고 종묘(宗廟)로 들어갔는데 밤마다 신병(神兵)이 나타나 공격하는 바람에 적들은 놀라서 서로 칼로 치다가 시력을 잃은 자가 많았고 죽은 자도 많았었다. 그래서 평수가는 할 수 없이 남별궁(南別宮, 소공동에 있던 태종의 딸 경정공주가 살던 궁)으로 옮겼다.”란 기록이 보입니다. ▲ 국보 '종묘' 전전 전경(문화재청 제공) 는 조선시대 역대 임금과 왕비, 그리고 추존왕과 왕비의 신주를 봉안한 사당으로 국보로 지정되었습니다. 《주례(周禮)》와 《예기(禮記)》에 보면 ‘우사직 좌종묘(右社稷左宗..

조선의 천문과학 - 시간과 절기를 한눈에 ‘앙부일구’

2. 시간과 절기를 한눈에 ‘앙부일구’ 앙부일구(仰釜日晷)는 솥뚜껑을 뒤집어 놓은 듯한 모습을 한 해시계라는 뜻으로,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해시계이다. 앙부일구는 조선 세종 16년(1434년) 과학자인 장영실과 이천, 김조 등에 명하여 처음 만들었으며, 그 해 10월에 종묘 앞과 혜정교(惠政橋)에 각기 1대씩 설치했다. 그 후 조선 시대 말까지 다양한 형태로 제작되어 궁궐과 관공서, 사대부 가옥에 이르기까지 널리 보급되었다. 앙부일구는 오목한 구형 안쪽에 설치된 막대에 해 그림자가 생겼을 때 그 그림자의 위치로 시각을 측정하는데, 해 그림자를 만드는 끝이 뾰족한 막대를 영침(影針)이라고 한다. 영침(시침)의 끝은 구의 중심이 되며, 막대의 축을 북극에 일치시켰다. 영침 둘레에는 시각을 가리키는 시각선이 세..

조선 국왕의 상징물 - 국왕의 상징물을 보관했던 종묘

종묘는 조선의 국왕과 왕비의 신주를 모신 사당이다. 국왕의 신주는 삼년상을 지나면 바로 종묘로 모시지만, 왕비의 신주는 별도의 사당에 모셨다가 국왕이 사망한 후 함께 종묘에 모셨다. 종묘의 정전에 모셨던 국왕과 왕비의 신주는 4대가 지나면 종묘의 영녕전으로 옮겨서 모시게 된다. 현재 종묘의 정전에는 국왕을 지낸 27명 가운데 18명과 추존된 국왕 1명을 합 하여 19명의 국왕과 왕비들의 신주가 모셔져 있다. 나머지 국왕과 왕비의 신주는 영녕전에 모셔져 있다. 국왕에서 쫓겨난 연산군과 광해군의 신주는 종묘에서 찾아 볼 수 없다. 종묘에 모셔진 국왕과 왕비의 신주는 왕실의 정통성을 반영한 것이다. 종묘에는 국왕과 왕비의 신주를 모신 신실이 있다. 각 신실의 북쪽에는 감실을 설치하고, 그 중앙에 신주장을 두며..

궁궐과 왕릉, 600년 조선문화를 걷다 - 오정윤 외

『궁궐과 왕릉, 600년 조선문화를 걷다』는 조선시대 역사와 문화를 대표하는 궁궐, 왕릉, 제례공간, 상징과 조형물 중에서 공간성, 상징성과 역사적 의미, 문화적 가치, 유교의 의례와 성리학적 이념, 문물제도를 가장 잘 반영하는 주제를 선별하고, 이것을 특성에 맞추어 ①궁궐과 사람들, ②궁궐과 상징들, ③궁궐과 제도들, ④궁궐과 의례들 등 4가지로 분류하였다. 우선 ①궁궐과 사람들에서는 왕, 왕비, 왕자와 공주, 궁녀와 내시들의 삶과 역할을 조명하고, ②궁궐과 상징들에서는 용과 잡상, 전통문화원리인 주역과 궁궐을 선정하였다. 또한 ③궁궐과 제도들에서는 국가의 의례인 오례, 관리의 이력서인 품계훈작, 궁궐 정전과 한성부 등을 서술하였고, ④궁궐과 의례들에서는 왕의 업적과 칭호, 왕의 무덤인 왕릉, 종묘와 ..

(얼레빗 3994호) 절제미와 근엄함이 느껴지는 조선의 근본 종묘

한국문화편지 3994호 (2018년 08월 30일 발행) 절제미와 근엄함이 느껴지는 조선의 근본 종묘 [얼레빗으로 빗는 하루 3894][신한국문화신문=김영조 기자] 서울 종로구에는 조선시대 역대 임금과 왕비, 그리고 추존왕과 왕비의 신주(神主)를 봉안한 사당인 사적 제125호 종묘(宗廟)가 있습니다. 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