짚신 5

(얼레빗 제4938호) 들어온 지 겨우 백 년 된 고무신, 전통신 아니다

일제강점기 잡지 《조선》 1923년 1월호에 수록된 “호모화(護謨靴)에 관한 조사”라는 글에는 다음과 같은 내용이 나옵니다. “호모화의 유입은 1919년경부터 개시되어 당시는 양화형(洋靴型)의 것으로 극히 소량에 불과했으나, 1921년 봄 무렵 선화형(鮮靴型)의 것이 나타나자마자 별안간에 조선인들의 환영을 받아 도시에서 시골로 보급되고 지금은 한촌벽지에 이르기까지 잡화상의 점두(店頭)에도 고무신을 볼 수 있는 상황이 되었다.” ▲ 들어온지 100년 된 고무신(출처, 크라우드픽) 잡지 《조선》은 고무신이 우리나라에 처음 등장한 것을 이렇게 소개하고 있습니다. 여기에 나오는 ‘호모화’라고 말은 곧 ‘고무신’을 이르는 것인데, ‘호모’는 ‘고무’의 일본말을 빌려온 것입니다. 처음에는 서양식 구두..

수입된 지 100년도 안 된 고무신

수입된 지 100년도 안 된 고무신 일제강점기 잡지 『조선』 1923년 1월호에 수록된 「호모화護謨靴에 관한 조사」라는 글에는 다음과 같은 내용이 나옵니다. 호모화의 유입은 1919년경부터 개시되어 당시는 양화형洋靴型의 것으로 극히 소량에 불과했으나, 1921년 봄 무렵 선화형鮮靴型의 것이 나타나자마자 별안간에 조선인들의 환영을 받아 도시에서 시골로 보급되고 지금은 한촌벽지에 이르기까지 잡화상의 점두店頭에도 볼 수 있는 상황이 되었다. 여기에 나오는 ‘호모화’는 고무신을 이르는 말인데, ‘호모’는 ‘고무’의 일본어식 음차音借 표기입니다. 고무신이 우리나라에 처음 등장한 것을 잡지 『조선』은 이렇게 소개하고 있지요. 처음에는 서양식 구두를 본떠 단화 형태로 나왔지만 나중에 조선식으로 개량해 나온 뒤 도시는..

(얼레빗 4547호) 양반과 평민이 함께 싣던 짚신

짚신은 볏짚으로 삼은 신발로 초혜(草鞋)라고도 하며, 재료에 따라 왕골신[菅履]ㆍ청올치신[葛履]ㆍ부들신[香蒲履]도 있는데 특히 짚신과 같은 모양이지만 삼[麻]이나 노끈으로 만든 것을 ‘미투리’ 또는 삼신[麻履]이라 하며 이는 짚신보다 훨씬 정교하지요. 짚신의 역사는 약 2천여 년 전 마한시대까지 거슬러 올라갑니다. 중국 송나라 마단림(馬端臨)은 《문헌통고(文獻通考)》에서 “마한은 초리(草履)를 신는다.”라고 했는데 이 초리가 바로 짚신입니다. ▲ 짚신, 국립민속박물관 조선 후기 실학자 성호 이익은 그의 책 《성호사설》에서 “왕골신과 짚신은 가난한 사람이 늘 신는 것인데 옛사람은 그것을 부끄럽게 생각하지 않았다. 지금 선비들은 삼으로 삼은 미투리조차 부끄럽게 여기고 있으니, 하물며 짚신이야 말해 무엇 하겠..

(얼레빗 3872호) 짚신, 양반과 평민이 함께 싣던 평등의 신

한국문화편지 3872호 (2018년 07월 31일 발행) 짚신, 양반과 평민이 함께 싣던 평등의 신 [얼레빗으로 빗는 하루 3872][신한국문화신문=김영조 기자] 짚신은 볏짚으로 삼은 신발이며, 초혜(草鞋)라고도 합니다. 또 짚신과 같은 모양이지만 삼[麻]이나 노끈으로 만든 것을 ‘미투리’라 하며 이는 ..

한국문화편지 "얼레빗으로 빗는 하루" 3509호

한국문화편지 3509호 (2017년 03월 07일 발행) “갓 마흔에 첫 버선” 속담의 뜻은? [얼레빗으로 빗는 하루 3509] [신한국문화신문=김영조 기자] 버선은 우리 겨레가 옷감으로 발 모양과 비슷하게 만들어 발에 신는 물건입니다. 그 버선은 형태에 따라 곧은버선(고들목버선)과 누인버선, 만드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