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상화 9

(얼레빗 제4869호) 2품 이상 관리는 상아호패, 양민은 나무호패

호패(戶牌ㆍ號牌)는 조선시대 16살 이상의 남성들이 차고 다니던 신분증입니다. 신분제 사회인 조선시대에는 신분에 따라 호패 재질도 달랐습니다. 2품 이상의 관리는 상아로 만든 아패(牙牌)를, 3품관 이하 관리는 뿔로 만든 각패(角牌)를, 그 이하의 양민은 나무패를 착용했습니다. 재질뿐만 아니라 그 안에 담긴 정보도 달랐습니다. 차는 사람의 이름, 출생 연도, 만든 때, 관(官)이 찍은 낙인(烙印)은 공통 요소지만, 상아ㆍ각패에는 나무 호패에 있는 신분과 거주지 정보가 없고 대신 과거 합격 시기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여기 이정보(李鼎輔, 1693-1766)의 호패를 보면 그를 분명히 알 수 있습니다. 이정보는 관직으로는 종1품 판중추부사(判中樞府事)까지 오르고 품계로는 정1품 보국숭록대부(輔國崇祿大夫)를 ..

공재 윤두서, 형형한 눈빛 뒤에 어린 따뜻한 마음

‘화가 났나?’ ‘노려보는 것 같기도 해.’ ‘아냐, 슬픈 표정인데?’ 종이에 꽉 차게 그려진 어떤 사람이 우리를 뚫어지게 보고 있어요. 살짝 올라간 눈매에 한 올 한 올 생생하게 묘사된 풍성한 수염, 다소 불그레한 살집 있는 얼굴이 씩씩한 장수처럼 보이기도 하고... 강렬한 눈매를 가진 그림 속의 인물이 우리를 꼼짝 못 하게 만듭니다. 놀라지 마세요. 이 사람은 따뜻한 마음을 가진 조선 후기의 유명한 선비화가 윤두서입니다. (p.8) 정면을 응시하는 부릅뜬 눈. 한 번 보면 쉬이 잊기 어려운 그 얼굴. 바로 자신의 모습을 그린 윤두서의 ‘자화상’이다. 미술 교과서에 실려 누구나 한 번쯤 본 적이 있을 법한 이 그림은, 해남윤씨 종가를 대표하는 종손이자 선비 화가였던 공재 윤두서가 18세기 초 그린 것이..

조선 왕실 어진 기념우표

‘어진’은 왕의 모습을 그린 초상화를 의미하며, 그중 조선 시대 어진은 초상화 이상의 의미를 지니고 있습니다. 이는 임금이 정치적 위기에 처했을 때 정통성을 상징하는 태조 이성계의 어진을 새로 제작하고 봉안했다는 기록을 통해 알 수 있습니다. 우정사업본부는 이처럼 임금과 왕실의 권위를 상징하는 어진을 소재로 하여 ‘조선 왕실 어진’ 기념우표를 발행합니다. 조선 왕실은 임금의 모습을 함부로 형상화하는 것을 불경스럽게 여겨 금기하였고, 어진의 제작과 관리를 엄격히 통제했습니다. 왕명에 따라 엄중한 절차와 형식을 갖추어 어진을 제작했고, 제작 후에는 ‘진전’이라 불리는 건물에 어진을 봉안하고 예를 갖추어 의식을 행하였습니다. 조선은 개국 초부터 꾸준히 어진을 제작하였으며, 그 전통을 조선 말기까지 유지해왔습니..

대한제국 말기 집집마다 초상사진을 걸어둔 까닭은?

대한제국 말기 집집마다 초상사진을 걸어둔 까닭은? “짐(朕)이 머리를 깎아 신하와 백성들에게 우선하니 너희들 대중은 짐의 뜻을 잘 새겨서 만국(萬國)과 대등하게 서는 대업을 이룩하게 하라.” - 『고종실록』 32년 11월 15일 고종 32년(1895년) 11월 15일에 고종이 단발령을 내리자 온 나라가 들끓습니다. 조정에서는 단발령을 내리는 까닭으로 단발을 함으로써 만국과 동등해질 수 있고 위생적이며 활동적임을 내세웁니다. 하지만 백성들은 ‘신체발부수지부모(身體髮膚受之父母)’ 곧 ‘몸과 터럭과 살갗은 부모에게서 받은 것이다’를 금과옥조로 삼아서 머리카락 자르는 것을 불효로 보았기에 받아들일 수 없었지요. 그래서 백성들은 단발령을 완강히 거부했고, 이에 순검들이 길거리에서 상투를 마구 자르거나 민가에 들어..

우국지사의 정신까지 잘 묘사한 채용신의 <황현 초상>

우국지사의 정신까지 잘 묘사한 채용신의 새도 짐승도 슬피 울고 강산도 찡그리니 鳥獸哀鳴海岳嚬(조수애명해악빈) 무궁화 이 세상은 망하고 말았구나 槿花世界已沈淪(근화세계이침륜) 등잔 아래 책을 덮고 옛일 곰곰 생각하니 秋燈掩卷懷千古(추등엄권회천고) 글을 아는 사람 구실 정녕 어렵구나 難作人間識字人(난작인간식자인) 매천 황현黃玹이 나라가 망해가는 꼴을 두고 볼 수 없어서 순국하기 직전에 남긴 「절명시絶命詩」입니다. 황현은 동생 황원黃瑗에게 “세상 꼴이 이와 같으니 선비라면 진실로 죽어 마땅하다. 그리고 만일 오늘 안 죽는다면 장차 반드시 날로 새록새록 들리는 소리마다 비위에 거슬려 못 견뎌서 말라빠지게 될 것이니 말라빠져서 죽느니보다는 죽음을 앞당겨 편안함이 어찌 낫지 않겠는가?”라고 하며, 자신이 순국을 결..

조선에서 가장 아름다운 초상화를 보셨나요?

조선 후기 초상화 가운데 가장 아름다운 걸작, 보물 제1483호 을 보셨나요? 비단 바탕에 채색한 그림으로 세로 99.2cm, 가로 58cm이며, 국립중앙박물관에 소장되어 있습니다. 이 초상화는 이채가 지체 높은 선비들이 입던 무색 심의深衣를 입고 중층 정자관程子冠을 쓴 뒤 두 손을 마주 잡은 채 정면을 바라보고 있는 반신상입니다. 그런데 을 비롯한 조선의 초상화는 극사실화極寫實畵와 전신사조傳神寫照로 그렸지요. 먼저 이 초상에서 이채의 눈매를 보면 홍채까지 정밀하게 묘사되어 눈망울이 초롱초롱한 것은 물론, 왼쪽 눈썹 아래에는 검버섯이 선명하게 보이며, 눈꼬리 아래에는 노인성 지방종까지 보입니다. 그뿐만 아니라 살을 파고 나온 수염을 하나하나 세밀히 그렸으며, 오방색 술띠를 한 올 한 올 거의 ‘죽기 살기..

(얼레빗 4282호) 정조임금이 명하여 그린 강세황 초상

강세황이 태어난 지 300해가 되던 때인 지난 2013년 국립중앙박물관에서는 “조선시대 위대한 화원 강세황전”이 열린 적이 있었습니다. 강세황은 보통 물러나 쉴 나이인 61살에 노인과거에 장원급제한 뒤 왕릉을 지키는 벼슬인 능참봉으로 시작하여 6년 만에 정2품 한성부판윤에 오르는 ..

9월25일 - 감히 쳐다볼 수 없는 임금의 초상, 누가 그렸을까요

“공정대왕(恭靖大王)과 정안왕후(定安王后)의 영정(影幀)이 외방(外方)에서 들어왔으니, 마땅히 선원전(璿源殿)에 봉안(奉安)할 것인데, 직접 받들어 맞아들이지 않으면 마음에 미안하다. 또 예전에도 친히 맞아들이는 때가 있었으니, 마땅히 대궐 밖에 서서 조종조의 영정과 새로 들어..

(얼레빗 3804호) 눈썹 위에 작은 혹이 그려진 태조어진

한국문화편지 3804호 (2018년 04월 26일 발행) 눈썹 위에 작은 혹이 그려진 태조어진 [얼레빗으로 빗는 하루 3804] [신한국문화신문=김영조 기자] 임금의 초상화 곧 어진(御眞)은 진용(眞容)ㆍ진(眞)ㆍ진영(眞影)ㆍ수용(?容)ㆍ성용(聖容)ㆍ영자(影子)ㆍ영정(影幀)ㆍ어용(御容)ㆍ왕상(王像)ㆍ어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