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게시판/하루하루가 잔치로세(김영조)

9월25일 - 감히 쳐다볼 수 없는 임금의 초상, 누가 그렸을까요

튼씩이 2018. 9. 25. 11:37

“공정대왕(恭靖大王)과 정안왕후(定安王后)의 영정(影幀)이 외방(外方)에서 들어왔으니, 마땅히 선원전(璿源殿)에 봉안(奉安)할 것인데, 직접 받들어 맞아들이지 않으면 마음에 미안하다. 또 예전에도 친히 맞아들이는 때가 있었으니, 마땅히 대궐 밖에 서서 조종조의 영정과 새로 들어오는 영정을 일일이 친히 받들어 살핀 뒤에 옮겨 모시는 것이 어떠한가?”


 

<중종실록> 91권, 34년(1539) 8월 14일(양력 9월 25일) 기록을 보면 중종이 정종과 정안왕후의 영정을 맞아들이도록 하는 대목이 나옵니다.

 

조선시대 초상화의 특징은 전신사조(傳神寫照), 곧 형상을 통해 정신을 전하는 것으로 검은 얼굴, 딸기코도 그대로 그리고 수염 한 올, 한 올까지도 세밀하게 그렸습니다. 심지어 영의정이었던 체제공 영정에는 곰보자국도 그대로 표현되었습니다. 그런데 감히 얼굴을 쳐다볼 수도 없었던 임금의 초상(어진)은 누가 그렸을까요?

 

어진(御眞)은 임금의 얼굴부분을 그리는 주관화사(主管畵師) 한 명을 중심으로 주관화사를 도와 옷을 그리고 색칠을 하는 동참화사(同參畵師) 한두 명, 그림을 그리는 여러 가지 일을 도우면서 영정제작을 배우는 수종화원(隨從畵員) 서너 명의 합동작품입니다. 어진을 다 그리면 화원들은 벼슬이 오르거나 상을 받지요. 또 주관화사는 ‘어용화사’라는 이름을 듣는 당대 최고의 화가로 대접받았습니다. 이런 내용은 어진을 제작하는 과정을 기록한 어진도사도감의궤(御眞圖寫都監儀軌)에 나옵니다.

 

근세 들어 어용화사가 된 사람으로 이당 김은호를 꼽을 수 있는데 그는 순종의 사진을 받아 1916년 반신상을 완성했습니다. 하지만 옛날처럼 직접 얼굴을 보고 그린 것이 아닌 사진을 보고 그린 것이어서 격은 다소 다르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리고 그 어용화사란 영예를 얻은 김은호는 이후 금차봉납도 따위를 그려 친일파 화가로 남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