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박이말 119

우리 토박이말의 속살 1 – 가시버시

'가시버시'는 요즘 널리 쓰이지 않는 낱말이다. 그런데 누리집에 가 보면 이것을 두고 말들이 없지 않다. 우리 토박이말을 알고 싶은 사람들이 늘어나면서, 자주 쓰지 않는 토박이말이 이야깃거리가 되어서 그런가 보다. 이것은 참으로 반가운 노릇이다. 그런데 누리집에서 오가는 말들이 국어사전의 풀이 때문에 큰 잘못으로 빠지는 듯하다. 낱말의 뜻을 국어사전이 잘못 풀이하면, 그것은 법률의 뜻을 대법원이 잘못 풀이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바로잡을 길이 없다. 그런데 '가시버시가 바로 그런 꼴이 되어 있다. 말이니 하는 것부터 잘못 짚은 것이다. 알다시피 우리는 상스러운 말과 점잖은 말을 가려 써야 한다는 가르침을 줄곧 받았고, 두 국어사전에서 말하는 '속되다', '낮잡다'는 것은 곧 상스럽다는 뜻임이 틀림없다. 그러..

김수업의 우리말은 서럽다 53, 우리 토박이말의 속뜻 - ‘차례’와 ‘뜨레’

누리 안에 있는 모든 것은 끊임없이 움직이며 멈추지 않고 모습을 바꾼다. 그리고 그 안에서 사람은 그렇게 움직이며 바뀌는 모든 것들과 더불어 살아가느라 슬기와 설미(일의 갈래가 구별되는 어름)를 다하고 있다. 그러면서 그렇게 움직이며 바뀌는 모습을 알아보려고 만들어 낸 가늠이 ‘때’와 ‘적’이니, 한자말로 이른바 ‘시각’이다. 또한 그런 가늠으로 누리가 움직이며 바뀌는 사이의 길이를 나누어, ‘참’이며 ‘나절’이며 ‘날’이며 ‘달’이며 ‘해’며 하는 이름을 붙였다. 이것이 한자말로 이른바 ‘시간’이다. 그리고 우리는 이런 ‘때’와 ‘적’을 냇물이 흘러가듯 쉬지 않고 흐른다고 느낀다. 그러면서 온갖 일이 그런 흐름 안에서 일어나는 것으로 생각하며 살아가는 것이다. ‘차례’는 이런 ‘때’와 ‘적’의 흐름에 ..

낱말부터 풀이까지 배달말로 쓴 《푸른배달말집》

오늘은 뜻깊은 578돌 한글날이다. 한글이 생기기 전에도 우리말은 있었지만 ‘그 말을 담을 수 있는 글자’가 없었던 탓에 오롯이 우리말을 담는 글자를 만들어 온 누리에 퍼지게 한 것이 1446년, 세종임금의 반포다. 그로부터 578돌을 맞이하는 때, 아주 뜻깊은 우리말 말집(사전) 《푸른배달말집》(한실과 푸른누리)이 세상에 나왔다. 이 말집을 이야기 하기 전에 말해 둘 것이 있다. 글쓴이가 이 책을 지은 한실 님을 만난 것은 2014년 4월이니 만 10년이 지났다. 그때 한실 님은 빗방울이라는 덧이름(호)를 쓰며 우리말 살리기와 고장 삶꽃(지역 문화) 살림이로 삶을 바친 김수업 교수님을 만나게 되는 데 빗방울 님은 ‘우리말을 살리고 가꾸어 서로 뜻을 쉽고 바르게 주고받고 겨레말 속살을 누구나 쉽게 알아..

김수업의 우리말은 서럽다 44, 우리 토박이말의 속뜻 - ‘옮기다’와 ‘뒤치다’

남의 글을 우리글로 바꾸어 놓는 일을 요즘 흔히 ‘옮김’이라 한다. 조선 시대에는 ‘언해’ 또는 ‘번역’이라 했다. 요즘에도 ‘번역’ 또는 ‘역’이라 적는 사람이 있는데, 이것은 지난날 선조들이 쓰던 바를 본뜬 것이라기보다 일본 사람들이 그렇게 쓰니까 생각 없이 본뜨는 것이다. 언해든 번역이든 이것들은 모두 우리 토박이말이 아닌 들온말에 지나지 않고, ‘역’이란 일본이나 중국에서는 쓰겠지만 우리에게는 낱말도 아닌 한갓 한자에 지나지 않는 것이다. 그래서 누군가가 우리 토박이말을 쓰느라고 ‘옮김’이라 했을 터인데, 남의 말을 빌려다 쓰기보다 우리 토박이말을 살려 쓰려는 마음이 아름답고 거룩하다. 그러나 남의 글을 우리글로 바꾸어 놓는 일을 ‘옮김’이라고 한 것은 우리의 말본으로 보아 올바르지 않다. ‘옮기..

김수업의 우리말은 서럽다 41, ‘우리 토박이말의 속뜻 - '슬기’와 ‘설미’

우리 토박이말에는 이치를 밝히고 올바름을 가리는 일에 쓸 낱말이 모자라 그 자리를 거의 한자말로 메워 쓴다. 이런 형편은 우리말이 본디 그럴 수밖에 없어서 그런 것이 아니다. 머리를 써서 이치를 밝히고 올바름을 가리는 일을 맡았던 사람들이 우리말을 팽개치고 한문으로만 그런 일을 했기 때문이다. 마음이 있으면 말은 거기 맞추어 생겨나는 법인데, 그들은 우리말에 도무지 마음을 주지 않았다. 조선 왕조가 무너질 때까지 이천 년 동안 그런 분들은 줄곧 한문으로만 이치를 밝히고 올바름을 가리려 했기에 우리말은 그런 쪽에 움도 틔울 수가 없었다. 안타까운 노릇은 이처럼 애달픈 일을 아직도 우리가 바로잡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오늘날에도 이치를 밝히고 올바름을 가리려는 학자들이 여전히 우리말로 그런 일을 하려 들지..

김수업의 우리말은 서럽다 29, 우리 토박이말의 속뜻 - ‘밑’과 ‘아래’

‘위’의 반대말은 ‘아래’이기도 하고 ‘밑’이기도 하다. 그것은 ‘위’라는 낱말이 반대말 둘을 거느릴 만큼 속살이 넓고 두터운 한편, ‘밑’과 ‘아래’의 속뜻이 그만큼 가깝다는 말이다. 이처럼 두 낱말의 속뜻이 서로 가까운 탓에 요즘에는 ‘밑’과 ‘아래’의 뜻을 헷갈려 쓰지 않는 사람이 거의 없을 지경에 이르렀고, 심지어 국어사전에서도 헷갈린 풀이를 해 놓았다. · 밑 : 나이, 정도, 지위, 직위 따위가 적거나 낮음.¶과장은 부장보다 밑이다. 동생은 나보다 두 살 밑이다.아래 : 신분, 연령, 지위, 정도 따위에서 어떠한 것보다 낮은 쪽.¶그는 나보다 두 살 아래이다. 위로는 회장에서, 아래로는 평사원까지…….                                                    ..

김수업의 우리말은 서럽다 26, 우리 토박이말의 속뜻 - ‘뫼’와 ‘갓’

말은 사람이 세상을 바라보는 눈이며, 세상을 받아들이는 손이다. 사람은 말이라는 눈으로 세상을 바라보고, 말이라는 손으로 세상을 받아들인다. 그래서 말이 흐릿하면 세상도 흐릿하게 보인다. 천수관음보살처럼 손이 즈믄(천)이면 세상도 즈믄을 받아들이지만, 사람처럼 손이 둘뿐이면 세상도 둘만 받아들일 수밖에 없다. 이런 이치에서 중국말이나 일본말이나 서양말을 얼마든지 끌어다 써야 한다는 사람이 많은 것이다. 그들은 우리 토박이말로는 눈과 손이 모자라서 지난날 중국 한자말로 눈과 손을 늘렸다고 여긴다. 그 덕분에 이름씨 낱말이 얼마나 넉넉하게 되었는지는 국어사전을 펼쳐 보면 알 수 있다고 입버릇처럼 말한다. 그러나 그런 소리는 참말이 아니고 옳은말도 아니다. ‘산’은 마치 토박이말처럼 쓰이지만, 중국에서 들어온..

(얼레빗 제4932호) 최현배 선생, 《중등조선말본》 처음 펴내

1934년 오늘(4월 5일)은 최현배 선생이 동광당서점을 통해서 《중등조선말본》 초판을 펴냈습니다. 《중등조선말본》은 본래 선생이 조선어학회의 ‘한글 마춤법 통일안’(1933)을 이론적으로 뒷받침하기 위하여 낸 책입니다. 당시 한반도 안에서는 물론이고 만주와 나라 밖에서도 널리 사용된 문법 교과서지요. 최현배 선생 개인으로는 이후 1937년에 펴낸 기념비적 책인 《우리말본》을 준비하는 가운데 나온 교과서라고 합니다. 《중등조선말본》은 ‘첫재 매[第一篇] 소리갈[音聲學], 둘재 매 씨갈[品詞論], 셋재 매 월갈[文章論]’로 크게 세 부분으로 나뉘어 있습니다. 또 문법(文法)이란 한자말 대신 말본, 명사 대신 이름씨, 대명사 대신 대이름씨, 동사 대신 움즉씨, 형용사 대신 어떻씨, 부사(副詞) 대신 어찌씨,..

김수업의 우리말은 서럽다 25,

16년 전에 경남에서 열린 ‘제10차 람사르협약 당사국총회’ 가운데서, 온 세상 사람들에게 보여 준 생태 관광지로 첫손 꼽힌 데가 바로 창녕의 ‘우포늪’이었다. 그리고 멀지 않은 곳에 는 창원의 ‘주남저수지’도 거기에 못지않은 곳이었다. 그런데 이들 두 관광지의 이름이 하나는 우리 토박이말 ‘우포늪’으로 람사르 정신에 잘 어우러지지만, 다른 하나는 ‘주남저수지’라는 한자말이어서 아쉽고 고개가 갸우뚱해진다. ‘주남저수지’는 아무래도 일제강점기 때에 바꾸어 쓴 이름일 터이고 본디는 틀림없이 ‘주남못’이었을 것이다. ‘못’은 쓸모 있을 적에 쓰려고 사람이 땅을 파고 둑을 쌓아서 물을 가두어 두는 곳이다. 못에 가두어 두는 물은 거의 벼농사에 쓰자는 것이라 논보다 높은 산골짜기를 막아서 만들어 놓은 곳이 많다...

김수업의 우리말은 서럽다 24, 우리 토박이말의 속뜻 - ‘말꽃’과 ‘삶꽃’

‘말꽃’은 ‘문학’을 뜻하는 토박이말이다. 토박이말이지만 예로부터 써 오던 것이 아니라 요즘 새로 나타난 말이다. ‘문학(文學)’은 본디 ‘글의 학문’이라는 뜻으로 공자님이 처음 썼다고 하는 중국말인데, 우리는 지금 그러한 뜻으로 ‘문학’이란 낱말을 쓰는 것이 아니다. 우리가 지금 쓰는 ‘문학’은 놀이(희곡), 노래(시), 이야기(소설) 같은 것을 싸잡아 서양 사람들이 ‘리터러처(literature)’라고 하는 그것이다. 이것을 일본 사람들이 ‘문학’이라 뒤쳐 쓰니까 우리가 그대로 가져와서 쓰는 것이다. 그러나 놀이, 노래, 이야기는 이른바 ‘말의 예술’이므로, 중국말이었든 일본말이었든 글의 학문을 뜻하는 ‘문학’이라는 말로는 그것들을 마땅하게 담아내지 못한다. 게다가 말의 예술인 놀이, 노래, 이야기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