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어 교육 9

우리의 말과 글, 그 이상을 전하다-이화여자대학교 한글아씨

이화여자대학교에서는 관광객, 교환학생 등 다양한 이유로 한국에 온 많은 외국인을 볼 수 있습니다. 그중 특히 교환학생과는 수업도 같이 듣고 조별 활동을 함께하게 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들이 구사하는 한국말을 들으면 정말 한국인 같을 때도 있으며 어떻게 낯선 타국에서 잘 적응해서 사는지 대단하게 느껴지기도 합니다. 이화여자대학교에는 이처럼 한국이라는 타국에서 생활하는 외국인 교환학생들에게 우리 말과 글을 알리고 교육하는 동아리인 ‘이화한글아씨’가 있습니다. 출처: 이화 한글아씨 인스타그램 갈무리 ​ ‘이화한글아씨’는 이화여자대학교의 교환학생 한국어 멘토링 동아리로 지난 9월에 19기 신입부원을 선발했습니다. 이화여대 학생이 멘토, 외국인 유학생 및 교환학생이 멘티로 짝을 이뤄 한국어 교육, 한국 문화 체..

한국어 교육, 그리고 우리 - 바탕이 되는 말, 그 이름 모어

자기 나라의 말을 ‘모어(母語)’라고 한다. 이 말은 주로 외국에 나가 있을 때 자기 말을 이르는 것이다. 모어와 모국어는 같은 말일까? 한국말을 모어로 쓰는 대부분의 사람에게 이 둘은 비슷한 말이다. 그러나 한 국가가 여러 민족으로 이루어져 있을 때, 모어란 곧 자기 민족의 말이다. 이러할 때 모어와 모국어는 다를 수도 있다. 중요한 것은, 모어란 그저 외국어에 대비되는 말이 아니란 점이다. 모어의 가장 기본적 의미는 자라면서 배운, ‘바탕이 되는 말’이다. 그러면 어머니의 품에 안겨 자라나면서 배운 말이란 어떠한 것인가? 잠시 모어의 뜻을 생각해 볼 수 있는 글이 하나 있다. 1932년, 일본인이 한국말을 배우던 책 의 한 면을 펼쳐 보자. 제34일 차, 배울 내용은 ‘교육’에 관한 것이다. 두 사람..

한국어 교육, 그리고 우리 - 천 냥 빚을 갚을 말

‘말이 고우면 비지 사러 갔다가 두부 사 온다’는 옛말이 있다. 말의 가치를 한껏 치켜세우는 표현이다. 그런 말 한마디를 두고 천 냥 빚도 갚을 정도라고 매긴다. 사극에서 흔히 듣던 ‘냥’이라 익숙히 아는 말 같지만, 사실 한 냥의 가치는 상당히 높다. 한 푼의 열 배가 한 돈이고, 한 돈의 열 배가 한 냥이다. 만약 국밥 한 그릇이 한 푼이라면, 한 냥으로는 국밥 백 그릇을 살 수 있다. 그렇다면 천 냥이란 십만 푼으로, 오늘날 물가로 따지면 수천만 원에서 1억 가까이 된다. 그런 빚을 갚을 수 있는 말이라면 어떻게든 한번 해 볼만하지 않겠는가? 여기서 짚어 볼 중요한 사실이 있다. 남을 움직일 만큼 힘 있는 말이란 듣기 좋은 말이다. 비지 사러 온 사람에게 두부를 사게 하고, 큰 빚을 면제해 줄 정도..

한국어 교육, 그리고 우리 - 누구에게나 당연한 문화는 없다

외국어 수업 시간에는 취미 활동을 묻고 답하는 시간이 있다. 주로 초급반에서 여가 시간에 무엇을 하는지 이야기하면서 배운 말을 연습한다. 주말이나 시간이 있을 때 보통 무엇을 하는지 물으면 가까운 곳에서 산책을 한다거나 영화를 보러 간다는 이야기, 또는 다양한 스포츠에 대한 이야기를 한다. 이때 한국어 교재에는 꼭 ‘등산’이 빠지지 않는다. 등산복을 입은 사람들이 산에 가는 그림을 보는 한국어 학습자들의 반응은 다양하다. 고산지대에서 온 학생들은 ‘안 그래도 높은 데 사는데, 굳이 등산을?’이라는 얼굴을 하고, 험한 산이 많은 나라의 학생들은 ‘집 주위에 산이 얼마나 높으면?’이라며 갸우뚱한다. 치안이 좋지 않은 곳에서 온 학생들은 ‘산에 가면 위험한 사람들을 만날 텐데 왜 산에 가느냐’고도 한다. 땅이..

한국어 교육, 그리고 우리 - 친절한 '한국어 선생님'

영국에는 런던을 상징하는 2층 버스가 있다. 지금 저 멀리서 버스가 온다. 버스정류장에서 기다리던 나는 버스를 탄다. 자, 이제 어디에 앉을 것인가? 잠시 마음을 정하고 자리에 앉자. 오늘은 ‘버스 자리와 성격’의 상관성을 확인한 한 조사 결과를 소개한다. 우선, 버스의 가장 앞에 앉았는가? 그렇다면 비교적 외향적인 편이다. 특히 버스 2층의 맨 앞자리를 선호한다면 리더의 기질이 있는 사람이라고 한다. 만약 뒷자리에 앉았다면 고독을 즐기는 경향이 있는 사람이라고 한다. 혹시 1층과 2층의 계단에 앉았다면 그는 스스로를 특이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일 수도 있다. 그리고 버스의 여러 자리 중에서도 중간쯤을 선호하는 사람은 소통력이 큰 사람이라고 했다. 실제로 강의 중 대학생들에게 손을 들어보게 했는데, 대학생들..

한국어 교육, 그리고 우리 - 주어를 말하지 않는 사람들

벌써 몇십 년 된 일이다. 외국으로 가는 자유여행이 흔하지 않던 시절, 단체 여행을 간 한국인들이 미국 식당에서 주문을 하면서 전설 같은 일화를 남겼다. 자리를 잡고 앉은 한국인들에게 직원들이 주문을 받으러 갔는데, 일행 중 누군가가 메뉴를 통일하고 정리하여 직원에게 알려 준 것이 하나요, 어떤 이들은 ‘I am a steak.(나는 스테이크이다.)’라고 말하며 주문했다는 점이 또 하나이다. 이 특별한 언행에, 그 식당에서는 한동안 ‘한국인들은 주문할 음식과 자신을 동일시한다’는 오해를 받았다는 후문이다. 가: “우리 뭐 먹을까?” 나: “나는 비빔밥. 이 집은 비빔밥이 맛있어.” 가: “그래? 그럼 나도 비빔밥.” ‘나는 비빔밥’, ‘나는 짜장면’과 같은 말은 한국의 식당에서는 특별히 주의를 기울이지 ..

한국어 교육, 그리고 우리 - 말하지 않으면 몰라요

‘말하지 않아도 알아요. 그저 바라보면, 음…’. 이 가사를 읽는다면 동그란 초코과자와 함께 이미 노랫가락도 떠올리게 된다. 수십 년간 큰 인기를 지킨 비결이 그 초코과자의 특별함 때문인지, 국민적 공감을 이끌어 낸 ‘정’이라는 소재 덕분인지 한 가지로 단언할 수 없다. 분명한 것은 이 노래가 말하는 것이 무엇인지 다 아는 것처럼, 말하지 않아도 아는 그 무언가가 있다는 것이다. 그런데 그저 바라보거나 마주보고 있으면 다 안다는 그 말은 진정 맞는 것일까? 단언컨대, 말하지 않는 상대방의 마음과 생각을 정확히 알 방법은 없다. 말하지 않아도 된다고 생각한 근거는 과연 어디에 있을까? 의사소통에서 맥락에 주로 기대는 한국 사회에서는 사람 사이의 ‘정’을 기반으로 교감한다. 때때로 ‘눈치에 따라 적절히 행동..

한국어 교육, 그리고 우리 - 우리 언제 밥 한번 같이 먹어요

국외로 진출한 한국인 운동선수들이 여러 분야에서 맹활약 중이다. 한국 출신 선수가 팀의 승리를 이끈 순간, 모두가 환호하며 오늘의 주인공을 축하하는 자리에서 “무슨 말씀을요, 실력이 부족한데 노력이라도 해야죠.”라고 겸손히 인사한다. 개인의 성취를 축하해 주는 서양 문화권에서 이 인사말은 과연 적절했을까? 다들 기뻐하며 들뜬 자리에서 스스로를 낮추는 이런 응답은 종종 승리에 도취된 팀의 분위기에 찬물을 끼얹는다고 한다. 이런 경험담은 스포츠계뿐만 아니라 유학생으로 간 한국인에게서도 많이 듣는다. 아무리 좋은 뜻으로 한 말이라도 사회문화적으로 맞지 않으면 제구실을 못하는 법인데, 한국 사회는 지금까지 외국어 학습 분야에서 말의 쓰임을 어휘 몇 개 외우기보다 소홀히 해 온 것이 사실이다. “선생님, ‘안녕하..

한국어 교육, 그리고 우리 - 앞으로 쭉 가세요

“똑바로 가세요. 그리고 사거리에서 오른쪽으로 가세요.” 외국어로 길 찾기를 배울 때면 한 번쯤 입으로 해 본 말이다. 영어를 비롯한 외국어 책에는 길에서 위치를 묻거나 안내하는 표현들이 꼭 있다. 길 찾기를 연습하는 단원은 한국어를 가르치는 책에도 대부분 있다. 그런데 여러 번 생각해 봐도 나는 길에서 책에 나오는 대로 말해 본 적이 거의 없다. 다시 말해, 한국의 길 위에서 안내하는 것이 책에서처럼 딱 떨어지지 않는다. 왜 그럴까? 한국의 일상생활에서는 방향을 주로 ‘앞’과 ‘뒤’, ‘옆’으로 말한다. ‘앞’이란 사람이 향하고 있는 곳이고, 그 반대쪽이 ‘뒤’이다. 그리고 말하는 사람에게 가까운 곁은 모두 ‘옆’이다. 앞은 사람이 바라보고 있는 방향인 만큼 가장 많이 쓰일 말이다. 집 앞에 있는 뜰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