흑산도 3

도끼를 가지고 상소를 올린 면암 최익현

도끼를 가지고 상소를 올린 면암 최익현 어떤 이가 공을 세우려고 순검을 데리고 가서 순검들에게 면암 최익현 선생의 머리를 자르라고 하였다. 이에 순검들은 깜짝 놀라 ‘우리들이 차라리 죽을지언정 어찌 차마 대감의 머리에 칼을 대겠는가?’라며 꾸짖었다. 순검들이 크게 욕하고 가버리니 그의 흉계가 수포로 돌아갔다. 선생이 이 말을 듣고 탄식하기를 ‘이름이 선비면서 처신이 이와 같으니 참으로 금수만도 못하다’라고 했다. 1895년 일어났던 일입니다. 당시 단발령이 내려진 상태였지만 면암(勉菴) 최익현(崔益鉉)의 머리는 그 누구도 자를 수 없었습니다. 1906년 홍주(洪州) 의병 80명이 갇혀 있었는데 일본 헌병이 칼을 가지고 와서 머리를 자르려고 하다가 최익현이 왔다는 소리를 듣고 깜짝 놀라며 달아났다는 이야기..

(얼레빗 4686호) 오징어는 까마귀를 해치는 도적이다?

”큰 것은 지름이 1자(30.3cm)쯤 된다. 타원형이며, 머리는 작고 둥글다. (가운데 줄임) 주머니가 있어 먹물을 담고 있는데 다른 동물이 습격하면 그 먹물을 뿜어내어 현혹한다. 그 먹물을 가져다 글씨를 쓰면 색이 매우 빛나고 윤기가 난다. 다만 오래 두면 벗겨지고 떨어져서 흔적이 없어지는데 바닷물에 담그면 먹물의 흔적이 다시 새롭게 나타난다고 한다.“ 이는 정약용(丁若鏞)의 형인 손암(巽庵) 정약전(丁若銓)이 흑산도 유배시절 쓴 《자산어보(玆山魚譜)》에 있는 ‘오징어’에 관한 내용입니다. 물론 여기서는 오징어가 아니라 ‘오적어(烏賊魚)’라고 써 놓았습니다. 다산의 제자 이청(李晴)이 붙인 설명에 보면 ˝날마다 물 위에 떠 있다가 날아가던 까마귀가 이것을 보고 죽은 줄 알아 쪼면 곧 그 까마귀를 감아..

(얼레빗 4594호) 양반과 상놈이 함께 이룬 성취, 《자산어보》

달빛이 휘엉청 밝은 밤, 초가삼간 마루에 앉아 흑산도 밤바다를 하염없이 바라다보며 술잔을 기울이던 정약전 선생, 영화 의 한 장면은 그림 같아 보이지만 실은 58년의 생애 가운데 16년이란 세월을 흑산도에서 유배생활을 이어갔으며 끝내 유배지에서 삶을 마친 불운의 선비입니다. 그러나 유배생활을 하면서 우리나라 첫 수산학 연구서인 《자산어보(玆山魚譜)》 등을 남긴 정약전 선생의 삶을 조명하는 영화 의 등장으로 사람들의 관심이 커지고 있습니다. ▲ 흑산도 유배 때(1814년) 정약전이 쓴 《자산어보(玆山魚譜)》, 국립중앙도서관 정약전 선생은 영조 34(1758)년에 태어나 전형적인 성리학자로 문과에 급제해 병조좌랑 등의 벼슬을 살게 됩니다만 그의 운명을 갈라놓은 계기는 무엇일까요? 그것은 당시 서양 학문과 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