흑혜 2

수입된 지 100년도 안 된 고무신

수입된 지 100년도 안 된 고무신 일제강점기 잡지 『조선』 1923년 1월호에 수록된 「호모화護謨靴에 관한 조사」라는 글에는 다음과 같은 내용이 나옵니다. 호모화의 유입은 1919년경부터 개시되어 당시는 양화형洋靴型의 것으로 극히 소량에 불과했으나, 1921년 봄 무렵 선화형鮮靴型의 것이 나타나자마자 별안간에 조선인들의 환영을 받아 도시에서 시골로 보급되고 지금은 한촌벽지에 이르기까지 잡화상의 점두店頭에도 볼 수 있는 상황이 되었다. 여기에 나오는 ‘호모화’는 고무신을 이르는 말인데, ‘호모’는 ‘고무’의 일본어식 음차音借 표기입니다. 고무신이 우리나라에 처음 등장한 것을 잡지 『조선』은 이렇게 소개하고 있지요. 처음에는 서양식 구두를 본떠 단화 형태로 나왔지만 나중에 조선식으로 개량해 나온 뒤 도시는..

(얼레빗 4379호) 조선시대 양반은 어떤 신발을 신었을까?

조선시대 사람들은 바지저고리와 치마, 배자와 두루마기 같은 한복을 입었습니다. 그런데 신은 무얼 신었을까요? 물론 백성이야 짚신과 마로 삼은 미투리(麻鞋)를 신었지만, 양반들이 신는 신으로는 목이 긴 ‘화(靴)’와 목이 짧은 ‘이(履)’가 있었습니다. 그런데 화보다 더 많이 신었던 ‘이(履)’에는 태사혜, 당혜, 운혜, 흑피혜 같은 것들이 있습니다. 그 가운데 먼저 태사혜(太史鞋)는 코와 뒤에 태사라 하는 흰 줄무늬를 새긴 남자용 신입니다. 흔히 사대부나 양반계급의 나이 많은 사람이 평상시에 신었는데 현재 국립중앙박물관에는 고종이 신었다는 태사혜 한 켤레가 있지요. 조선 말기에 와서는 임금도 웅피혜(熊皮鞋, 곰가죽 신)나 녹피혜(鹿皮鞋, 사슴가죽 신) 아닌 태사혜를 신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문무백관들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