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이 있는 이야기/책을 읽자

책만 보는 바보 - 안소영

튼씩이 2018. 7. 4. 10:00



부제가 이덕무와 그의 벗들 이야기로, 조선의 선비 이덕무가 스물한 살이던 1761년에 쓴 看書痴傳(책만 보는 바보 이야기)이라는 짧은 자서전을 읽고 이덕무라는 인물에 흥미를 느낀 저자가 관련 자료를 찾아보고 자신의 상상력을 곁들여 쓴 책이다.


서자로 태어나 벼슬길에 오를 수 없는 신분이지만 책을 통해 세상과 소통하고, 마음에 맞는 친구과 대화를 나누면서 후일을 기약하지만 어찌할 수 없는 현실에 부딪혀 외로워하고 절망하면서도 끝내 손에서 책을 놓지 않았던 이덕무와 그의 벗에 관한 이야기이다. 후일 정조가 왕이 된 후에 그와 벗들은 규장각 검서관이라는 비정규직이지만 그래도 관직에 나아갈 수 있었고, 정조의 배려로 정기적으로 녹봉을 받을 수 있는 업무를 맡기도 하고, 지방 수령으로 부임하기도 했다. 하지만 정조보다 일찍 죽은 이덕무 외에 다른 벗들은 정조가 죽고 난 후 신유사옥 등 반대파의 박해로 고난을 겪게 된다.


이덕무는 신분의 한계를 벗어나 조정에 나가기 전까지 대부분 같은 처지의 사람들과 교류하면서 지냈다. 벗이라고는 하지만 나이가 1~2살에서 많게는 10살 이상 차이가 났고, 처남도 있었다. 유득공, 박제가, 박지원, 백동수, 이서구, 홍대용 등 조선 후기 실학자라 불리운 이들과 교류를 하며 꿈을 키워왔던 것이다.


사람들은 이런 나를 보고 '간서치(看書痴)'라고 놀렸다. 어딘가 모자라는, 책만 보는 바로라는 말이다. 나는 그 소리가 싫지 않았다.  - 22쪽 -


책읽기의 이로움을 나는 이렇게 써 두었다.

첫째, 굶주린 때에 책을 읽으면, 소리가 훨씬 낭랑해져서 글귀가 잘 다가오고 배고픔도 느끼지 못한다.

둘째, 날씨가 추울때 책을 읽으면, 그 소리의 기운이 스며들어 떨리는 몸이 진정되고 추위를 잊을 수 있다.

셋째, 근심 걱정으로 마음이 괴로울 때 책을 읽으면, 눈고 마음이 책에 집중하면서 천만 가지 근심이 모두 사라진다.

넷째, 기침병을 앓을 때 책을 읽으면, 그 소리가 목구멍의 걸림돌을 시원하게 뚫어 괴로운 기침이 갑자기 사라져 버린다.

  - 24쪽 -


벗들은 청장관(靑莊官)이라는 나의 호를 따서, 새로 지은 서재에 '청장서옥(靑莊書屋)'이라는 이름을 붙여 주었다. 처음으로 갖게 된 온전한 나만의 공부방이자, 두런대는 벗들의 목소리가 끊이지 않는 우리의 사랑방이기도 했다.  - 49쪽 -


그의 이름은 이서구라 했다. '서(書)'는 글이나 책을 뜻한다. '구(九)'는 홑자리 수 가운데 가장 클 뿐 아니라, 크고 많다는 것을 뜻할 때 쓰는 수이기도 하다. 그러니 이름 자체가 온 세상의 모든 책을 뜻하는 셈이었다.  - 125쪽 -


'구서(九書)'란 책을 읽는 독서, 책을 보는 간서, 책을 간직하는 장서, 책의 내용을 뽑아 옮겨 쓰는 초서, 책을 바로잡는 교서, 책을 비평하는 평서, 책을 쓰는 저서, 책을 빌리는 차서, 책을 햇볕에 쬐고 바람을 쏘이는 폭서를 말한다. 책과 관련된 모든 것을 그곳에서 하겠다는, 젊은 시절의 호기로운 서재 이름이었다.  - 126쪽 -


공에는 위, 아래가 따로 없어. 어디가 가운데라 할 수 없지. 중국 사람들의 입장에서 본다면 우리는 동쪽 변두리의 작은 나라에 불과하겠으나, 우리의 입장에서 본다면 중국도 북쪽의 큰 땅덩어리에 불과하네. 우리는 서양사람이라 부르지만, 그들의 눈으로 본다면 우리는 동양 사람이겠고. 그러니 자기만이 중심이라 자만할 것도, 변두리라 기죽을 것도 없다네. 다같이 이 지구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이지.  - 158쪽 -


선입견은 결국, 자신만의 생각에 사로잡혀 사람과 사물의 본래 모습을 바라보지 못하는 편견이기도 하다. 그러한 편견에 사로잡힌 세상은 새로운 활기라고는 없는 세상, 변화를 거부하는 낡은 것들로만 가득한 세상일 것이다.  - 176쪽 -


명나라 때만 하더라도, 중국에 다녀오는 사신들의 행렬을 '조천(朝天)'이라 불렀다. 하늘처럼 높은 황제를 알현한다는 뜻이었다. 그러나 청나라로 바뀌고 난 다음부터는 '연행(燕行)'이라 불렀다. 중국의 수도 북경을 연경이라고도 불렀으니, 그거 연경에 다녀오는 행렬이라는 뜻이다. 은근히 청나라를 얕잡아 보는 말이기도 했다.  - 189쪽 -


스물아홉 살 난 조선의 젊은이 박제가의 저서 <북학의(北學議)>는, 변화를 두려워하고 편안함만을 누리고자 하는 사대부들을 날카롭게 꼬집는 말로 끝을 맺었다.  - 208쪽 -


그때까지 아무도 쓰지 않은 발해의 역사를 나의 벗 유득공이 찾아내어 쓰고 있는 것은, 잊혀진 그 기상을 되살려 좀 더 힘 있는 나라, 조선을 만들고 싶은 염원 때문이었다. ~ 유득공의 발해고(渤海考)는 1784년 봄에 완성되었다.  - 224쪽 -

1800년, 정조가 마흔아홉이란 한창 나이로 갑작스럽게 세상을 떠났다. 이덕무의 벗들도 또 한 차례 운명의 소용돌이를 겪어야 했다. 어린 순조 임금을 대신하여 세도 정치가 득세하고, 정조의 개혁을 못마땅하게 여기던 노론 계열이 세력을 얻게 되었다. 반대파인 남인들은 모진 박해를 받았다.  - 262 ~ 263쪽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