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사는 천안에서 남쪽으로 내려가려면 남천안 IC를 타야 한다. 그때마다 천안야구장이 눈에 들어온다. 애써 안 보려고 해봤자 소용이 없다. 부지는 넓은데 이용하는 사람이 단 한 명도 없다 보니 금방 눈에 띈다. 비라도 내리면 운동장 곳곳에 작은 웅덩이가 생긴다. 처음 천안야구장을 봤을 땐 건물을 지으려고 땅을 다지는 줄 알았는데, 그게 완공된 야구장이라고 해서 기절할 뻔했다. 천안지역에도 야구동우회가 170여개나 되다 보니 운동장이 모자란 편인데도, 천안야구장을 이용하는 팀이 거의 없다시피한 이유다. 이 야구장을 짓는 데 든 비용은, 놀라지 마시라, 무려 780억원이다. 이 정도면 프로야구팀 경기장을 지을 수도 있는 돈. 아니 잔디는커녕 누런 흙에 줄만 그어 놓은 야구장에 무슨 돈이 그렇게 들었을까? 알고 보니 공사비는 얼마 안되고 대부분의 돈이 토지보상비로 쓰였다고 했다. 더 어이없는 일은 공사를 시작하기 전 원래 야산이었던 그 땅이 갑자기 주거지역으로 용도변경이 되면서 땅값이 치솟았으며, 덕분에 별반 돈이 안되는 땅을 갖고 있던 땅주인이 일약 부동산재벌이 됐다는 사실이다. 도대체 무슨 일을 이렇게 하냐 싶겠지만, 그 땅주인이 성무용 전 천안시장의 지인이고, 성 전 시장이 줄기차게 야구장 건립을 밀어붙였다는 사실을 안다면 이 모든 게 다 이해될 것이다.
이게 이미 지나간 일이라 되돌릴 수 없다면, 다른 돈이라도 좀 아낄 필요가 있다. 지난 11월, 한 언론은 문재인 대통령의 팬카페인 ‘문팬’의 카페지기 박모씨가 올해 2월 코레일유통 비상임이사가 됐다고 보도했다. 원래 코레일유통이 비상임이사를 모집하면서 내건 자격조건은 ‘유통분야 전문가’였지만, 박모씨의 경력은 입시학원 상담실장이 고작이었다. 그런가 하면 문 대통령이 대표 변호사를 지낸 법무법인의 사무장이던 송모씨는 한국관광공사의 자회사인 GKL의 상임이사가 됐다. GKL은 관광사업 활성화를 위해 만들어진 회사, 하지만 송씨에겐 관광산업 종사 이력이 전혀 없었다. 두 건 모두 낙하산이란 비판을 피하기 어려울 듯했지만, 문 대통령 지지자들의 반응은 의외였다. “정치에 있어 논공행상은 어느 정도 인정해야죠. 생업 포기하고 후보 당선을 위해 뛰었는데 백수로 살라는 건 너무하잖아요?” “모든 나라에서 정권이 바뀌면 주요 인사가 물갈이되는 건 다 마찬가지입니다.” “사외이사는 원래 전문성이 있어야 할 수 있는 건 아닙니다.” “꼭 경험이 있어야 하나? 도덕성도 중요한 경력이다.” “사람 경영하는데 보은인사가 절대 빠질 수 없죠.” “이명박, 박근혜 때는 낙하산 없었어요? 뭐가 문제인지?”
도덕성을 가장 중시한다는 문 대통령 지지자들마저 이런 얘기를 하는 걸 보면, 낙하산이라는 건 영원히 없어지지 않을 것 같다. 이게 현실이라면, 정권을 빼앗겼을 때 낙하산을 욕하는 위선을 저지르는 대신 우리의 세금을 좀 더 아끼는 쪽으로 나아가는 게 좋을 듯하다. 예를 들어 코레일유통의 비상임이사는 회사로 출근하는 대신 한 달에 한 번꼴로 열리는 이사회 회의에만 참석하는데, 회의시간은 한 회당 평균 50분 정도다. 12번 모두 참석해도 600분이 고작이다. 일년에 10시간 남짓 일하면서 1700만원을 받는 건 지나치다. 전문성이 거의 필요 없다는 사실까지 감안하면 비상임이사에게 그 4분의 1만 줘도 충분하지 않을까? 이렇게 한다면 이후 그 자리에 누가 가든지 낙하산으로 인해 국민이 받는 피해는 최소화할 수 있다. GKL 상임이사도 마찬가지다. 송씨가 받는 연봉은 1억1000만원, 회사에 큰 도움이 못될 것을 감안하면 많아 보인다. 상임이사의 연봉을 절반으로 깎으면 어떨까. 이런 식으로 낙하산이 주로 임명되는 공기업 이사 등 임직원의 연봉을 줄인다면, 의외로 많은 세금을 절약할 수 있다. 한 가지 더. 낙하산을 임명할 때 어차피 필요도 없는 ‘해당분야 경력’ 얘기는 빼자. 그 대신 ‘현 대통령의 당선을 위해 애쓴 분’을 문구에 삽입하자. 낙하산 논란도 저절로 사라질 수 있게 말이다.
'지난 게시판 > 서민(단국대 의대교수)이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손혜원 의원이 한국당 소속이었다면 (0) | 2019.02.05 |
---|---|
내부고발이 어려운 이유 (0) | 2019.01.07 |
남자 역차별론은 허구다 (0) | 2018.11.07 |
남성과 여성, 연대의 차이 (0) | 2018.10.12 |
시대착오적인 낙태 논란 (0) | 2018.09.08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