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재민씨는 2013년 행정고시에 합격했다. 2014년부터 공무원 일을 시작해 기획재정부(이하 기재부)에서 근무하다 2018년 7월 퇴사한다. 그로부터 4개월여가 지난 12월30일, 그는 자신이 왜 기재부를 그만뒀는지에 관한 장문의 글과 영상을 올렸다. 그가 말한 이유는 정권이 바뀌었음에도 관료사회가 그대로이기 때문이었는데, 그 증거로 신씨는 두 가지 사건을 언급했다. 정부가 민간기업인 KT&G의 사장 교체에 개입했다는 게 그 하나고, 정부가 돈이 충분히 있는데도 불구하고 빚을 갚기는커녕 추가로 빚을 지려고 했던 사건이 또 하나였다. 특히 2017년 말 벌어진 두 번째 사건은 국민경제와 밀접한 관련이 있는데, 빚이 1조원 추가될 때마다 국가가 그에 상응하는 이자 200억원을 매년 부담해야 했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정부는 1조원의 국채를 갚기로 했다가-이를 바이백이라 한다-하루 전 취소하는 소동을 벌였고, 오히려 4조원의 추가 국채를 발행하는, 즉 빚을 지려는 계획을 세웠다는 것이다. 이유가 뭘까? “금년 국채 발행을 줄이게 된다면 GDP 대비 채무비율이 줄어든다는 것. 정권이 교체된 2017년도에 GDP 대비 채무비율이 줄어든다면 향후 정권이 지속되는 내내 부담이 가기에 국채발행을 줄일 수 없다는 이야기였다.” 정말 다행스럽게도 국장이 총대를 메는 바람에 4조원의 국채발행은 없던 일이 됐지만, 그로 인해 국장은 기재부와 청와대로부터 곤욕을 치러야 했다. 신씨는 이런 현실이 이해가 안됐다고 했다. “이런 행태를 문제 삼아서 ‘이게 나라냐’라고 외치면서 정권을 바꾼 것이 아닌가?”
후속기사에 따르면 그의 폭로는 근거가 있다. 2017년 11월15일 정부는 바이백을 취소하는 바람에 채권시장에 일대 혼란을 일으켰는데, 이는 전례가 없는 일이었다. 그리고 기재부는 왜 그런 일을 벌였는지 제대로 된 해명을 하지 못했다. 윗선의 지시가 아니라면 이해하기 힘든 일이다. 물론 기재부는 신씨의 주장이 전혀 사실이 아니라고 말한다. 국채 추가발행에 대해 여러 기관에서 치열한 토론이 있었고, 그에 따라 내려진 결정이란다. 또한 기재부는 신씨가 사표를 낸 뒤 공무원시험을 담당하는 학원업체와 계약을 한 것을 빌미로 “스타강사 되겠다고 나가더니 왜 이러는지 모르겠다”며 신씨의 저의를 의심하지만, 기재부 공무원을 그만두고 학원강사를 할 사람이 과연 몇 명이나 있을지 모르겠다. 보다 정확한 것은 정권 말기가 되면 알 수 있을 테니, 여기서는 내부고발자 신씨가 겪어야 하는 어려움에 대해서만 얘기하고자 한다.
신씨가 처벌을 감수하면서까지 글을 올린 이유는 우리 사회가 좀 더 나은 곳이 되길 바라서라고 했다. 그러자면 자신이 올린 글을 보다 많은 사람이 읽고 분노해줘야 한다. 그런데 그게 쉬운 일이 아니었다. 우선 요즘 사람들은 글을 읽고 제대로 이해하는 능력이 부족했다. 신씨가 올린 글은 A4 용지로 30장 분량, 글이 길어진 것은 인과관계를 제대로 설명하고 국채, 바이백 같은 경제 얘기를 보다 쉽게 설명하기 위해서였다. 나처럼 경제에 문외한인 이도 대번에 내용을 파악할 수 있었던 것도 다 그 덕분이었다. 하지만 그렇지 않은 분들이 꽤 많았다.
- 글이 너무 기네요. 요약 좀 부탁해요.
- 고시 논술에서 고생 엄청 하셨겠네요. 도대체 뭔 말인지.
두 번째로, 글의 일부분을 가지고 신씨를 매도하려는 사람들이 있었다. 신씨의 글에는 이런 대목이 나온다. “박근혜 대통령은 생각보다 회의를 잘 이끌어 가셨고 국가 미래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하는 것처럼 보였다.” 이 대목이 필요한 이유는 그 후 신씨가 최순실게이트를 접하면서 잠시나마 정부를 믿었던 걸 부끄러워했고, 새로 탄생한 정부에 기대를 걸게 됐다는 얘기를 하기 위해서였다. 하지만 이는 다음과 같이 매도당한다.
- 박근혜가 국가 미래를 진지하게 고민? 이런 자의 말을 믿으라고?
- 저런 애국심을 가지고 태극기부대로 갔어야지 그동안 어떻게 견뎠나?
셋째, 글의 의도를 곡해하고 메신저를 공격함으로써 폭로의 신빙성을 떨어뜨리려는 분들이 있었다.
- 2017년 세금이 많이 걷혔다는 건 경기가 호황이었단 건데, 박근혜 때인 2017년이 경제호황이었냐? 너 박빠구나?
- 신재민 주장에 두서가 없네요. ‘학원에서 강의를 하려면 폭로를 해야 한다’ 이게 말이 됩니까? 강사는 내부 폭로자들만 하는 건가요?
- 그냥 자기랑 같이 공부해서 사짜 되거나 대기업 취업한 친구들과 연봉 비교해 보고 빡쳐서 때려치고 스타강사 되려는 사람의 노이즈 마케팅 정도로 이해되구요.
- 신재민인가 하는 애, XXX 학원의 작전 아닌가 하는 의심이?
2, 3번째 부류가 안타까운 이유는, 이들이 정치병에 걸려 고의적으로 글을 왜곡하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왜곡은 그만한 가치가 있어서, 긴 글을 읽기 싫어하는, 대다수를 차지하는 첫 번째 부류에게 전달된다. 다수가 믿는 것이 진실이 되는 이 세상에서, 박근혜에게 반대하며 촛불을 들었던 전직 사무관은 ‘박근혜를 그리워하는 젊은 태극기부대원’으로 둔갑한다. 그리고 신씨는, 그 앞선 내부고발자들이 그랬듯, 생계를 걱정해야 하는 처지가 된다. 우리 사회에서 내부고발이 어려운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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