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게시판/우리말은 재미있다(장승욱)

016 - 소줏고리

튼씩이 2019. 3. 23. 20:05

소주 광고를 들여다보면 '세계 최초'나 '국내 최초'를 내세운 것들이 많다. 선양의 '맑은 린'은 세계 최초로 산소가 녹아 있는 소주 특허를 받았다고 자랑한다. 대둔산 숲 속의 청정 공기에서 순수한 산소를 뽑아내 세 번에 걸쳐 원주에 촘촘하게 주입해 맛은 부드럽고 숙취는 적다고 한다. 그건 그렇다 치고, 나는 순수한 산소를 빼앗긴 대둔산 숲 속 공기는 어떻게 됐는지 그 안부가 더 궁금하다. 처음처럼도 자연 미네랄이  풍부한 알칼리 환원수를 세계 최초로 썼다고 한다. 무학의 화이트는 국내 최초로 자일리톨을, 대선의 C1 역시 국내 최초로 숙취 해소에 탁월한 효고가 있는 아스파라긴을 첨가했다고 자랑한다. 게다가 C1은 국내 최초로 음향진동숙성공법을 도입했다고 한다. 말은 어렵지만 간단하다. 소주를 만들 때 음악을 들려준다는 것이다. 그렇게 하면 알코올 분자와 물 분자가 결합하는 힘이 강해져 술이 더욱 부드럽고 뒤끝이 깨끗하다는 것이다. 음악을 듣는 귀가 있다면 보는 눈도 있을 텐데, 지금까지 내 뱃속에 들어간 소주들이 본 풍경들이 어떠했을지 심히 걱정이 된다.


'최초'를 빼면, 소주 광고들이 내세우는 것은 무엇을 첨가했는지, 무엇으로 걸렀는지, 그리고 어떤 물을 썼는지 같은 것들이다. 첨가물로 아스파라긴은 거의 기본이 돼 있는 듯하고, 화이트의 자일리톨, 잎새주의 메이플 시럽이 조금 특별하다. 메이플 시럽은 단풍나무 수액을 농축한 것이다. 보배의 하이트는 맥반석으로 한 번, 참숯으로 또 한 번 거르며, 보해의 잎새주는 참숯으로 다섯 번의 '초정밀' 여과를 거친다고 한다. '시원한 청풍'은 백토로, 참이슬은 대나무 숯으로 거른다. 소주 원료의 80%를 차지하는 물은 하나같이 천연암반수나 화산암반수(한라산)를 쓰는데, 지은이가 확인한 바로 가장 깊은 곳에서 퍼올릴 물로 만든 것은 무학의 '좋은데이'다. 지리산 자락 지하 314m가 '좋은데이'에 쓰인 물의 고향이라고 한다.


소줏고리 (명) 소주를 내리는 데 쓰는 재래식 증류기. 구리나 오지 따위로 위아래 두 짝을 겹쳐 만든다.

                   소주를 담는 오지그릇. 항아리와 비슷하나 주둥이가 병처럼 오그라졌다.


쓰임의 예 - '홍주(紅酒)'는 소줏고리에서 내린 술을 '지초(芝草)'라는 식물의 뿌리로 걸러 투명한 붉은 빛과 독특한 향을 내는 전남 진도의 전통 민속주. (<홍주 맛본 소·돼지가 육질도 으뜸!>이라는 제목의 조선일보 기사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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