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갈비라는, 사전에도 나오지 않는 정체불명의 낱말이 있다. '고등어 갈비'가 줄어서 된 말이겠지만, 고등어만 뼈가 있는 것도 아니고, 또 고등어만 구워 먹는 것도 아닌데, 왜 삼갈비(삼치), 꽁갈비(꽁치), 명갈비(명태), 임갈비(임연수어), 병갈비(병어) 같은 것은 없는지 길을 막고 물어보고 싶다. 하긴 고갈비에 막걸리 한잔 하려고 가보면, 고갈비라고 써 붙이긴 했지만, 고등어를 구워 파는 집은 별로 없다. 고갈비란 이름이 붙어 안줏거리로 팔리고 있는 생선은 거의가 임연수어다. 임연수(林延壽)라는 사람이 엣날에 이 고기를 잡아서 먹어보니 하도 맛이 좋아 임금에게 진상을 했다고 해서 고기의 이름이 임연수가 되었다고 한다. 그걸 몰랐을 때는 이름이 이면수인 줄 알았다. 고기의 양쪽 면이 다르기 때문에 이름이 그렇게 붙었나 생각했던 것이다.
지금은 없어졌지만, 종로2가 뒷골목에 있는 술집에 임연수어 고갈비에 막걸리를 마시러 다닌 적이 있다. 그 일대를 가리키는 지명이 피맛골이다. 피맛골이란 조선 때, 종로통을 오가던 힘없는 백성들이 고관대작의 행차와 마주치지 않으려고 피해 다니던 뒷골목의 이름이다. '말(馬)을 피(避)하는 골목'이라는 뜻에서 나온 말이다. 알 것 같다. 옛날 임금이나 높은 사람의 행차를 따라가면서 물렀거라 외치며 잡인의 통행을 제한하던 하인을 거덜이라고 했는데, 이들이 상전의 위세를 믿고 얼마나 흰목을 젖히고 못된 짓을 했는지, 거덜에서 '거덜나다' '거들거리다(거덜거리다가 변한 말)' 같은 말이 비롯됐다고 한다. 맨땅에 엎드려 행차가 지나갈 때까지 고개도 들지 못하는 일도 그렇지만, 거덜이나 들때밑들의 행패를 피하기 위해서 사람들은 큰길을 버리고 피맛골로 접어들었던 것이다.
몇 년 전만 해도 교보문고 앞에서 시작되는 피맛골을 자주 들락거렸다. 그 골목 초입에 단골집인 <열차집>이 있었다. 비 오는 날, 녹두빈대떡과 굴전에 막걸리 한잔하기 딱 좋은 집이었다. 지금 그 집은 어디로 갔을까. 자꾸 갈 곳이 사라지면 10년 뒤의 나는 어느 낯선 골목을 헤매고 있을까.
들때밑 (명) 세력 있는 집의 오만하고 고약한 하인을 이르는 말
쓰임의 예 - 대불이는 양 진사가 시키는 일이 번연히 잘못된 것이라는 것을 알고도 웃전이 시키는 대로 지악스럽게 들때밑 노릇을 해 왔으며…. (문순태의 소설 <타오르는 강>에서)
이 말만은 꼭 갈무리하자
거덜 - 옛날 임금이나 높은 사람의 행차를 따라가면서 물렀거라 외치며 잡인의 통행을 통제하던 하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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