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의 이름은 대개 재료에 따라 붙여진다. 김치죽, 호박죽, 팥죽, 깨죽, 닭죽, 달걀죽, 재강죽, 진잎죽, 잣죽 같은 것들이 그런 경우다. 재강은 술을 거르고 남은 찌끼를 가리키는 말이다. 진잎죽은 진잎을 넣어서 끓은 죽, 진잎밥은 진잎을 넣어서 지은 밥이다. 같은 쌀을 재료로 하는 것이자만, 죽은 '끓이는' 것이고 밥은 '짓는' 것임을 알 수 있다. 실상은 보잘것없으면서 겉으로는 아주 훌륭한 것처럼 꾸미는 경우를 나타내는 "진잎죽 먹고 잣죽 트림한다"는 속담이 있는 걸 보면 죽의 세계에도 가장 말단에 자리 잡고 있는 것은 피죽인 것 같다. 피죽은 벼 사이에 섞여 있는 일종의 잡초인 피의 열매로 쑨 죽인데, "피죽도 못 얻어먹은 것 같다"는 식으로 '그것조차'라는 뜻의 토씨 '도'를 언제나 달고 다니는 것이다.
특이한 죽으로는 비웃죽과 초기죽이 있다. 비웃죽은 비웃의 살만 끓여 체에 걸러서 맵쌀만 넣고 쑨 죽인데, 비웃이란 청어를 식료품으로 부르는 말이다. 초기죽은 '초기(初期)의 죽'이 아니라 표고버섯을 불려서 참기름에 볶은 뒤 쌀을 넣어 쑨 죽이다. '초기'는 버섯을 가리키는 제주 사투리이기도 하고, 허기(虛飢)를 뜻하는 북한말이기도 하다.
말죽거리의 말죽은 말이 먹는 죽, 쇠죽은 소가 먹는 죽인데, 소가 여러 날 동안 고된 일을 했을 때나 허약해졌을 때 특식(特食)으로 먹이는 드레죽이라는 죽도 있었다. 드레죽은 싸라기, 수수, 보리쌀 같은 것들로 쑨 쇠죽이다. 싸라기는 부스러진 쌀알을 뜻한다. 금싸라기도 마찬가지로 금 부스러기라는 뜻이지만, '아주 드물고 귀중한 것(대개는 땅이지만)'을 가리킬 때 쓰이는 말이다.
물렁팥죽이나 소금죽은 실제로 먹는 죽이 아니라 비유적으로 쓰는 말들이다. 물렁팥죽은 마음이 무르고 약한 사람, 소금죽은 몹시 짠 것을 빗대어 이른 것이다.
진잎 (명) 날것이나 절인 푸성귀 잎.
쓰임의 예 - 배추 진잎을 뜯어내고 다듬는다. (박경리의 소설 <토지>에서)
- 진잎죽도 끓여 주고 상추도 한 입 싸서 입에 넣어주겠다고 했을 때, 당신은 여전히 흐느끼며 울지 않았었습니까. (이미노의 소설 <작은 새 바람을 타고>에서)
이 말만은 꼭 갈무리하자
비웃 - 청어를 식료품으로 이르는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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