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게시판/우리말은 재미있다(장승욱)

039 - 귓밥

튼씩이 2019. 5. 13. 08:19

잘난 인물의 생김새를 나타낼 때, "이목구비(耳目口鼻)가 반듯하다"고 말한다. 왜 눈, 입, 코 다 놔두고 하필이면 귀(耳)를 앞에 세우는 것일까. 눈, 입, 코에 얼굴의 노른자위 땅(그런 게 있다면)을 내주고 그야말로 두 귀퉁이에 겨우 달라붙어 있는(그래서 귀라는 이름이 붙었는지도) 귀의 '낮은 데로 임하는' 자세를 어여삐 여겼음일까. 하기는 빠져 나오기는 눈, 코, 입, 귀가 같이였을 텐데, 생일을 눈빠진 날, 코빠진 날, 입빠진 날 하지 않고 귀빠진 날이라고 하는 것을 보면, 이들 사이에는 우리가 모르는 어떤 줄서기, 엄정한 서열 같은 것이 있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귀는 겉귀와 속귀로 나뉘는데, 그 갈피를 이루는 것이 귀청이다. 청이란 어떤 물건에서 얇은 막으로 된 부분을 가리키는 말이다. 그래서 대나무의 안 벽에 붙은 얇고 흰 꺼풀을 대청이라고 하는 것이다.


우리가 흔히 귀라고 생각하는 귀, 그러니까 "귀가 크다"고 할 때의 귀는 귓바퀴를 말하는 것으로, 귓바퀴의 가장자리를 귓가나 귓전이라고 한다. 귓바퀴의 바깥쪽이 귓등이므로 그 반대쪽, 그러니까 귓구멍이 있는 쪽은 귓배라고 해야 옳을 것 같은데, 적어도 사전에는 그런 말도, 그에 해당하는 말도 없다. 등만 있고 배가 없는 괴물이 바로 귀인 것이다. 귓구명의 밖으로 열린 쪽을 귓문이라고 하는데, 귓문 옆에 젖꼭지처럼 볼록 나온 살은 귀젖이라고 한다. 사람의 몸에는 목젖과 귀젖 그리고 진짜 젖, 이렇게 세 가지의 젖이 매달려 있는 것이다.


남의 이야기를 주의하지 않고 아무렇게나 흘려듣는 것을 '귀넘어듣는다', '귓전으로 듣는다'고 하는데, 반대로 정신을 바짝차려 주의 깊게 듣는 것은 '귀담아듣는다', '귀여겨듣는다'고 한다. '눈여겨보다'와 통하는 말이다. 한 번 본 것이라도 눈여겨보고 곧 그대로 흉내를 잘 내는 재주를 눈썰미라고 하는데, 마찬가지로 귀여겨들어 한 번 들은 것을 그대로 흉내 내는 재주는 귀썰미라고 한다.



귓밥 (명) 귓바퀴의 아래쪽에 붙어 있는 살.


쓰임의 예 - 높은 콧마루에 숱이 많은 눈썹, 그린 듯한 입술, 귓밥이 두툼한 보기 좋은 귀, 빠질 데 없이 잘 생긴 얼굴이다. (한무숙의 소설 <어둠에 갇힌 불꽃들>에서)


              - 귓밥이 훅 달아오르면서 목덜미가 싸아 저린다. (천승세의 소설 <낙월도>에서)




이 말만은 꼭 갈무리하자


귀썰미 - 귀여겨들어 한 번 들은 것을 그대로 흉내 내는 재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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