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말과 풍속의 보물창고라고 할 수 있는 최명희의 소설 『혼불』에서 주인공 강모와 효원의 첫날밤 장면 묘사를 보자. 신부 효원은 다리속곳, 속속곳, 단속곳, 고쟁이를 입고 그 위에 또 너른바지와 대슘치마, 무지기를 입고 마지막으로 다홍치마를 입은 것으로 되어 있다. 전부 해서 여덟 가지, 속옷만 일곱 가지를 입은 것이다. 그래서 소설에도 ‘몇몇 겹으로 싸고 감으며 갑옷처럼 입고 앉은 옷의 압박과 무게로 숨을 들이쉬고 내쉬는 것조차도 쉽지 않은 것’으로 나타나 있다. 그런데 그걸 어떻게 다 입었을까. 대슘치마, 무지기, 다홍치마는 치마니까 입기가 쉬웠겠지만, 속속곳, 단속곳, 고쟁이, 너른바지는 다 바지의 한 가지라 일일이 다리를 끼우기도 쉽지가 않았을 텐데, 또 입는 것이야 어찌어찌 꿰어 입었다 하자. 급한 볼일이 생기면 그때는 어떻게 했을까. 치마는 위로 올리고 바지는 아래로 내려야 하니까 그것도 보통 일은 아니었을 것이다. 단지 하나 옷 벗기 내기를 할 때는 단연 유리했을 법하다. 효원은 옷 벗기 내기는커녕 결국 그 많은 겉옷과 속옷을 한 가지도 벗어보지 못한 채 첫날밤을 지새기는 하지만 말이다.
다리속곳은 치마끈에 기저귀를 달아 샅을 가리게 한 것으로, 속속곳을 자주 빨아야 하는 불편을 덜기 위해서 입었다고 하며, 속속곳은 직접 살에 닿는 속옷이라서 특별히 부드러운 감을 써서 만들었다고 한다. 『혼불』에는 다리속곳, 속속곳, 단속곳, 고쟁이, 너른바지 순서로 입었다고 돼 있는데, 고쟁이는 속속곳의 위, 단속곳 밑에 입는 옷이다. 그러므로 다리속곳, 속속곳, 고쟁이, 단속곳, 너른바지 순이 돼야 맞는 것이다.
대슘치마는 모시 열두 폭에 주름을 잡아 만드는데, 겉치마의 아랫부분을 버티게 하려고 입으며, 무지기는 허리 부분을 넉넉하게 부풀어 보이게 하는 역할을 한다. 역시 열두 폭 모시로 층층이 폭을 넓혀 가며 한 허리에 달아 붙여 만드는데, 치마 끝에 갖가지 물을 들여 무치 무지개처럼 보인다고 해서 무지기라는 이름이 붙었다고 한다. 그런데 누구더러 보라는 무지개였는지, 그 위에 또 겉치마를 입어 가려버린다. 아깝다.
고쟁이 (명) 한복에 입는 여자 속옷의 하나. 속속곳 위, 단속곳 밑에 입는 아래 속곳으로, 통이 넓지만 발목 부분으로 내려가면서 좁아지고 밑을 여미도록 되어 있다. 여름에 많이 입으며 무명, 베, 모시 따위를 홑으로 박아 짓는다.
쓰임의 예 - 제각기 물건을 흙벽 앞에 내려놓고 앉자, 맹씨 댁이 무명치마 안으로 손을 넣어 고쟁이 주머니에서 손수건에 말아 싼 것을 꺼냈다. (김원일의 소설 『불의 제전』에서)
이 말만은 꼭 갈무리하자
다리속곳 – 조선 시대에, 치마의 가장 안쪽에 받쳐 입던 작은 속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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