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게시판/우리말은 재미있다(장승욱)

136 – 굽이

튼씩이 2019. 9. 2. 08:08

굽이는 움직씨로도 그림씨로도 쓰이는 ‘굽다’에서 나온 말이고 ‘굽다’의 작은말은 ‘곱다’다. 그래서 ‘굽이치다’ ‘굽이굽이’에 대응해 ‘곱이치다’ ‘곱이곱이’ 같은 말들이 있다. 그렇다면 굽이에 대응하는 곱이라는 말도 있을 것 같은데 없고, 대신 고비가 있다. “위험한 고비는 넘겼습니다” 할 때의 그 고비 말이다. 고비는 일의 진행 과정에서 중요한 단계나 대목을 말하는데, 가장 긴요한 아슬아슬한 고비는 고비판이나 고빗사위라고 한다. 물론 이 고비가 ‘곱다’에서 나온 말인 것은 확실하다. 굽이나 고비나 굴곡(屈曲)이라는 뜻을 갖는 것은 마찬가지지만, 굽이가 평면적인 좌우 굴곡이라면, 고비는 입체적인 상하 굴곡 또는 추상적인 인생의 굴곡을 가리킨다는 점에서 차이가 있다.


굽이돌이는 말 그대로 굽이도는 곳을 가리키는 말이다. 안동의 하회마을이 바로 굽이돌이다. 하회(河回)도, 하회마을의 별칭인 물도리동도 모두 ‘물이 도는 곳’이라는 뜻이다. 하회마을은 풍산 류씨 집성촌으로 멀리는 『징비록』을 남긴 서애 류성룡, 가까이는 탤런트 류시원이 이 고장 출신이다. 이런 인연으로 류시원은 ‘2007년 경상북도 방문의 해’ 홍보대사로 활동한 적이 있다.


하회마을은 별신굿에 쓰이는 하회탈로도 유명하다. 하회탈 가운데 이매탈은 턱이 없는데, 여기에는 전설이 있다. 옛날 옛적 고렷적에 허 도령이 서낭신의 계시를 받아 탈을 깍고 있었는데, 아무에게도 보여서는 안 된다는 것이 조건이었다. 마지막으로 이매탈의 턱을 깍던 중 그를 사모하던 처녀가 금기를 어기고 문구멍으로 들여다봤고, 그 순간 허 도령은 그 자리에서 피를 토하고 죽어 지금까지 턱이 미완성인 채로 남아 있다는 것이다. 이 이매가 그 이매인지는 명확하지 않으나, 이매(魑魅)는 얼굴은 사람 모양이고 몸은 짐승 모양으로 되어 있는 네 발 가진 도깨비 이름이다. 사람을 잘 홀리며 산이나 내에 잘 나타난다고 한다.



굽이 (명) 휘어서 구부러진 곳.


쓰임의 예 – 순이는 가쁜 숨을 쉬일 새도 없이 두 활개를 치면서 올랐고 구부러진 굽이를 돌 때마다 고개를 들어 머리 위에 보이는 길을 쳐다보곤 했다. (정비석의 소설 『성황당』에서)



이 말만은 꼭 갈무리하자


고빗사위 – 일의 진행 과정에서 가장 긴요한 아슬아슬한 순간. =고비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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