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게시판/우리말은 재미있다(장승욱)

139 – 가라말

튼씩이 2019. 9. 5. 08:10

가라말과 반대로 온몸이 흰 말은 부루말이라고 한다. 영화 <벤허>에서 가장 오래 기억에 남는 것은 아무래도 벤허와 메살라의 전차 경주 장면일 텐데, 벤허의 전차를 끌던 말 네 마리가 부루말, 메살라의 말들은 가라말이었다. 전차 경주가 흑백(黑白)의 대결이 되게 한 것은 극적인 대비 효과를 높이기 위한 계산이었겠지만, 그 대결이 부루말의 승리로 끝난 것은 인종차별, 백인우월주의의 뿌리 깊음을 보여주는 것이 아닐 수 없다, 고 쓴다면 말이 웃을 소리가 아닐 수 없다, 고 나는 쓰지 않을 수 없다.


가라말, 부루말 말고도 털빛이 붉은 절따말, 누른 황고랑, 밤빛의 구렁말, 검푸른 돗총이 같은 것들이 있는데, 갈기만 검은 부루말은 가리온, 마찬가지로 갈기만 검은 절따말은 부절따말이나 월따말이라고 한다. 황고랑 가운데 붉은 빛이 도는 것은 결따마, 등에만 검은 털이 난 것은 고라말, 흰 털이 섞인 것은 황부루, 주둥이가 검은 것은 공고라라고 한다. 쌍창워라는 엉덩이만 흰 가라말, 총이말은 갈기와 꼬리가 파르스름한 부루말을 가리킨다. 털빛이 완전히 검지 않고 거무스름한 놈은 담가라말, 검은 털과 흰 털이 섞여 난 놈은 먹총이, 흑백의 바둑무늬로 되어 있는 놈은 바둑말이라고 한다. 흰 털과 붉은 털이 섞여 있는 놈은 적부루마, 털빛이 얼룩얼룩한 놈은 워라말, 잿빛의 워라말은 그은총이라고 한다. 이마와 뺨이 흰 말은 간자말인데, 찬간자는 간자말 중에서도 몸빛이 푸른 것을 가리킨다.


돈점박이는 몸에 돈짝만 한 점이 있는 말을 뜻하는데, 표범의 별명으로 쓰이기도 한다. 네 굽이 흰 말은 사족발이, 뒷발의 왼쪽이 흰 말은 외쪽박이라고 한다. 뒷발의 오른쪽, 아니면 앞발의 왼쪽이나 오른쪽이 흰 말을 가리키는 말은 눈을 씻고 보아도 없다. 전에 대니얼 데이 루이스가 주연을 맡았던 <나의 왼발>이라는 영화가 있었는데, 외쪽박이라는 아주 특별한 말을 위해 <나의 왼 뒷발>이라는 이름으로 영화를 만들어 볼 사람 누구 없을까.



가라말 (명) 털빛이 온통 검은말.


쓰임의 예 – 허우대가 걸출한 가라말 위에 높이 앉은 이재수는 붉은 비단옷 때문에 흡사 해 덩어리같이 눈이 부셨다. (현기영의 소설 『변방에 우짖는 새』에서)



이 말만은 꼭 갈무리하자


부루말 – 온몸이 흰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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