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게시판/우리말은 재미있다(장승욱)

179 - 가리사니

튼씩이 2019. 10. 20. 14:00

‘가리가리’는 ‘여러 가닥으로 갈라지거나 찢어진 모양’을 가리킨다. 준말은 ‘갈가리’다. 1974년에 MBC 라디오에서 방송돼 큰 인기를 끌었던 <법창야화>라는 프로그램이 있었는데, 거기 소개된 첫 번째 사건이 ‘강진 갈갈이 사건’이었다. 그 이후로 사람들이 강진 얘기만 나오면 그 사건을 들먹이는 바람에 어린 마음에 내 고향이 바로 그곳이라는 얘기를 하기가 저어되곤 했다. 강진에는 정약용이 수많은 역저를 생산했던 다산초당(茶山草堂), <모란이 피기까지는>을 남긴 김영랑의 생가 같은 수많은 자랑거리가 있는데 하필이면 ‘갈갈이 사건’이 강진에 대해 좋지 않은 선입견을 심어주었던 것이다. ‘강진 갈갈이 사건’의 ‘갈갈이’는 ‘갈가리’로 써야 하지만, 개그맨 박준형의 별명 ‘갈갈이’는 무, 호박, 파인애플, 수박, 당근, 감자, 고구마(내가 목격한 것만 늘어놓은 것임) 따위를 갈고 또 가는 사람이라는 뜻이니 그대로 쓰는 것이 맞을 것 같다.


심심풀이로 ‘가리’가 들어간 말들을 하나 더 살펴보자. 앞에 소개한 가리사니의 준말은 가리산이다. 그런데 가리산에 지리산이 붙은 ‘가리산지리산’은 ‘이야기나 일이 질서가 없어 갈피를 잡지 못하는 모양’을 가리키는 어찌씨다. 처음에 이 말을 만들어 쓴 사람은 가리산과 각운이 맞는 산 이름을 찾다가 머릿속에 퍼뜩 떠오른 지리산을 가리산 뒤에 붙였을 것이다. 가리산은 소양강의 발원지(發源地)로 강원도에 있는 산이고, 지리산이야 설명할 필요도 없는 명산이다. 그러니까 가리산지리산은 가리산으로 가는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지리산으로 가는 것도 아닌 종잡을 수 없는 상태를 나타낸 말이다. 어차피 헤매는 것, 순서야 관계없을 테니 거꾸로 지리산가리산으로 써도 같은 뜻이 된다. 갈팡질팡도 가리산지리산과 비슷한 뜻을 가진 말이다.



가리사니 (명) ① 사물을 판단할 만한 지각(知覺).


                    ② 사물을 분간하여 판단할 수 있는 실마리.


쓰임의 예 ★ 저는 그 분야의 지식이 없어서 사실이 뭔지 진실이 뭔지도 모르는 어리보기로 가리사니도 없는 날탕이지만, 저도 과학을 하는 사람으로서 이래저래 가슴이 아프고 스스럽네요. (『성제훈의 우리말 편지』를 지은 성제훈의 인터뷰 기사에서)



이 말만은 꼭 갈무리하자


리산지리산 - 이야기나 일이 질서가 없어 갈피를 잡지 못하는 모양. =지리산가리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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