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가리가 닿는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새들은 페루에 가서 죽다』의 작가 로맹 가리 이야기부터 시작하자. 로맹 가리는 1980년 12월 2일 ‘결전의 날이 왔다’는 짤막한 유서를 남기고 권총으로 자살한 프랑스 작가다. 콩쿠르상은 프랑스의 가장 권위 있는 문학상인데, 가리는 유일하게 이 상을 두 번 받은 작가로 유명하다. 1956년 『하늘의 뿌리』로 콩쿠르상을 받은 가리는 그로부터 근 20년이 지난 1975년 에밀 아자르라는 가명으로 『자기 앞의 생』을 발표해 두 번째 콩쿠르상을 받았다. 재기 발랄한 신예작가 에밀 아자르와 한물넘은 퇴물작가 로맹 가리가 같은 인물이라는 사실은 1981년에 발표된 로맹 가리의 유고 『에밀 아자르의 삶과 죽음』을 통해 비로소 알려졌다. 참고로 1978년에 발표된 김만준의 노래 <모모>는 독일 작가 미하엘 엔데의 『모모』를 떠올리게 하지만, 그보다는 에밀 아자르(또는 로맹 가리)의 『자기 앞의 생』을 바탕으로 한 것이다. 다음의 가사를 보면 확인이 된다. ‘너무 기뻐서 박수를 치듯 날갯짓하며/날아가는 니스의 새들을 꿈꾸는 모모는 환상가/그런데 왜 모모 앞에 있는 생은 행복한가/인간은 사랑 없이 살 수 없단 것을/모모는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말가리는 ‘말’에 일의 갈피와 조리를 뜻하는 ‘가리(가리새라고도 한다)’가 붙어서 된 말이다. 조리(條理)가 한자말이기는 하지만, 가리는 ‘갈피+조리→갈리→가리’의 변화과정을 거쳐 생긴 말일 가능성이 있다. 갈피는 ‘겹치거나 포개진 물건의 하나하나의 사이’ 또는 ‘일이나 사물의 갈래가 구별되는 어름’을 가리키는 말이다. 책을 읽다가 어디까지 읽었나를 표시하기 위해 끼워 두는 네모진 쪽지를 흔히 책갈피라고 한다. 그렇지만 책갈피는 말 그대로 책의 갈피, 즉 책장과 책장의 사이를 일컫는 말이다. 그러면 책갈피에 끼우는 그 물건은 무엇이라고 불어야 하나. 보람이라고 부르는 것이 제일 좋을 것 같다. 잊지 않기 위해서 두드러지게 해 두는 표를 보람이라고 하는 것이다.
말가리 (명) 말의 갈피와 조리. 또는 말의 줄거리.
쓰임의 예 ★ 김가의 아내가 자기 잘못이 없는 것을 발명하려고 말가리는 드니 “당신 말은 나중 들을 테니 잠깐 가만히 있소” 하고 돌석이가 눌렀다. (홍명희의 소설 『임꺽정』에서)
이 말만은 꼭 갈무리하자
보람- 다른 물건과 구별하거나 잊지 않기 위하여 표를 해 둠, 또는 그런 표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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