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시판/왕실문화 인문강좌(국립고궁박물관)

조선 국왕의 상징물 - 국왕의 이름을 기록한 상징물(2), 어책

튼씩이 2022. 5. 7. 20:50

2) 어책

 

어책(御冊)에는 왕세자 시절에 받는 죽책(竹冊)과 국왕 시절에 받는 옥책(玉冊)이 있다. 죽책은 국왕이 왕세자․왕세자빈을 책봉할 때와 존호 및 시호를 수여할 때 사용하였다. 왕세자를 책봉할 때에는 교명, 죽책과 함께 은인을 주었다. 죽책은 죽간 5~6조각을 책자 형태로 엮어 해서체 글자를 새기고 글자에 니금(泥金)을 입히며, 변철로 고정하여 둥근 고리와 돌쩌귀로 연결한다. 죽책의 앞뒷면은 비단으로 장식하였다. 죽책의 문장은 사륙변려문을 쓰며, 착한 일을 권하고 나쁜 일은 하지 말라고 경계하는 내용이다.

 

효명세자는 1812년(순조 12) 7월 6일에 창덕궁 인정전에서 왕세자 책봉식을 거행하였다. 세자의 나이는 4세였다. 다음은 순조가 효명세자에게 내린 죽책문의 내용이다.

 

저사(儲嗣, 후계자)를 세우는 것은 종묘(宗廟)의 중함을 잇는 것이고, 위호(位號)를 바르게 정하는 것은 백성들의 마음을 매어 놓는 것이다. 이는 고금의 공통된 법도이자 우리 조종의 옛 제도이므로, 책례를 거행하여 항상 있는 법을 시행한다. 아, 원자의 자질은 영명(英明)하고, 타고난 성품은 어질고 효성스럽다. 말을 하면서 문자를 알았고, 솔선하는 행위는 스승을 번거롭게 하지 않았 다. 깊은 사려와 준수한 자태가 의젓하여, 가르치지 않아도 깨달았고, 보고 들으며 움직일 때 이미 대인의 모습을 갖추었다. (중략)

 

이에 너를 명하여 왕세자로 삼으니, 너는 위엄 있는 행동을 힘써 수련하고, 경계하는 명령을 공손히 지켜야 한다. 학문이 아니면 이치를 밝힐 수 없고, 좋은 덕을 가지려면 몸을 성실히 하는 것 보다 좋은 것이 없다. 항상 간사한 자를 멀리하여 미연에 방지하고, 빨리 좋아하는 놀이를 떨쳐 버려 무엇이 해롭겠느냐고 말하지 말라. 위미정일(危微精一)의 가르침에 조심하고, 예악서수(禮樂書數)의 공부를 부지런히 하여라. 효도는 모든 행실의 근본이다. 일마다 문왕 세자를 따르고 배워 상성(上聖)의 영역에 이르러 반드시 나도 순 임금 같은 사람이 될 수 있다고 하여라.

 

 

효명세자는 1827년(순조 27)에 순조를 대신하여 대리청정을 하다가 1830년(순조 30) 5월 6일에 사망하였다. 효명세자는 아들 헌종이 왕위에 오르면서 국왕(익종)으로 추숭되고, 대한제국이 건설된 후 문조 익황제로 추숭되었다. 효명세자가 받은 어책은 총 17점이며, 그중에서 16점은 사망한 후에 받았다. 효명세자는 가장 많은 어책을 받은 국왕이 되었고, 문조가 받은 존호는 총 104 글자였다.

 

옥책은 국왕에게 새로운 이름을 올릴 때 옥간(玉簡)에 그 내용을 새겨 첩으로 엮어 만든 것이다. 옥책은 남양옥 5~7개의 옥간을 1폭으로 하며, 짝수 폭으로 엮어 만들었다. 옥책의 문장은 사륙변려문이며, 옥책문은 문장력을 갖춘 사람으로 선정하였다.

 

대한제국이 건설된 이후 황후와 황태자, 황태자비를 책봉할 때에는 옥책 대신에 금책(金冊)을 내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