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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국왕의 상징물 - 국왕의 이름을 기록한 상징물(3), 교명과 고명

튼씩이 2022. 5. 8. 11:42

3) 교명과 고명

 

교명(敎命)은 국왕이 왕위를 물려주거나 왕비와 왕세자 등을 책봉할 때 내리는 훈유문서이다. 국왕이 왕비를 책봉할 때는 교명, 옥책, 금보를 주고, 왕세자를 책봉할 때는 교명, 죽책, 은인을 주었다. 교명은 옥축(玉軸)에 비단으로 감싸서 만든 두루마리로, 오색 비단에 먹으로 글씨를 썼다. 교명의 시작 부분에 용 두 마리가 오르내리는 사이에 ‘교명(敎命)’이라는 전서체 글자를 직조하여 넣었다. 교명에는 조선왕보(朝鮮王寶)와 시명지보(施命之寶)를 찍은 것이 있다. 교명의 내용은 그 지위의 존귀함을 강조하고 책임을 다할 것을 훈계하고 깨우쳐 준다.

 

조선 전기에는 국왕이 왕위를 물려줄 때에도 교명을 내렸다. 태조가 정종에게 양위할 때, 정종이 태종에게 양위할 때, 단종이 세조에게 양위할 때 교명을 사용한 것으로 나타난다. 그러나 현재 그 유물은 전해지지 않는다. 왕세자가 관례를 거행 할 때에도 교명을 사용한 것으로 전해진다. 왕세자 관례 때 교명을 제작한 것은 효종 때부터 영조 때까지 나타나지만 현재 유물은 전해지지 않는다.

 

왕세자를 책봉할 때의 교명은 많이 남아있다. 국왕이 왕세자를 책봉한다는 명령서로 당대의 뛰어난 학자가 문장을 지었다. 순조는 1800년(정조 24) 2월 2일에 왕세자로 책봉되면서 교명을 받았다. 책봉문은 대제학 홍양호가 작성하였다.

 

너 원자 강(玜)은 하늘이 점지하신 남다른 바탕으로 흐르는 무지개 같은 상서로움을 받았기에 자랄수록 온화하고 문아(文雅)하였으니, 자손에게는 좋은 교훈을 남길 것이다. (중략) 옛부터 전해지는 의식에 따라 우선 관례를 거행하기로 하니, 해로도 좋은 해요 달로도 좋은 달이라. 모든 것을 갖추어 삼가(三加)의 예를 거행하고, 사람들에게 물어도 동의하고 거북점을 쳐도 동일하기에 세자의 위호를 정한다. 경신년 이 해는 바로 숙종께서 면류관을 쓰시던 해요, 영양(寧王, 돌아가신 선왕)께서 옥책을 받던 해이다.

 

이에 너를 명하여 왕세자로 삼으니, 너는 중책을 생각하고 나의 이 훈계를 체득한다면, 너 한 사람에게는 경사가 있을 것이요, 만년토록 끝없는 복록이 있을 것이다. 더욱 근면하고 경건해야만 선왕의 덕을 크게 현양하고 또 계승할 수 있을 것이다. 아 성학(聖學)을 존중하고 문교(文敎)를 진작시키는 것은 우리 가문의 큰 법도였고, 왕도(王道)를 따르고 기복(箕福, 대대로 이어받은 복)을 거두는 것 역시 열성조의 위대한 교훈이었다. 이에 교시하니 마땅히 알 것이다.

 

고명(誥命)은 중국 황제가 조선의 국왕과 왕세자를 책봉할 때 내리는 문서이다. 조선 국왕이 사망하면 왕대비는 황제에게 고부청시청승습사(告訃請諡請承襲使)를 파견하였다. 선왕의 부고를 알리고 그 시호를 요청하며, 새 국왕의 책봉을 요청하는 사신이라는 뜻이다. 황제가 파견한 사신은 새 국왕을 조선국왕으로 책봉한다는 고명을 가지고 와서 전달하였다. 조선에서 왕세자를 책봉할 때에도 황제에게 알려 책봉을 받았다.

 

현재 장서각에는 3건의 고명이 소장되어 있다. 1722년(경종 2) 영조를 왕세제로 책봉하는 고명, 1725년(영조 1) 영조를 조선국왕으로 임명되는 고명과 진종을 왕세자로 임명하는 고명이 그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