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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국왕의 상징물 - 국왕의 상징물을 보관했던 종묘

튼씩이 2022. 5. 9. 12:56

종묘는 조선의 국왕과 왕비의 신주를 모신 사당이다. 국왕의 신주는 삼년상을 지나면 바로 종묘로 모시지만, 왕비의 신주는 별도의 사당에 모셨다가 국왕이 사망한 후 함께 종묘에 모셨다. 종묘의 정전에 모셨던 국왕과 왕비의 신주는 4대가 지나면 종묘의 영녕전으로 옮겨서 모시게 된다.


현재 종묘의 정전에는 국왕을 지낸 27명 가운데 18명과 추존된 국왕 1명을 합 하여 19명의 국왕과 왕비들의 신주가 모셔져 있다. 나머지 국왕과 왕비의 신주는 영녕전에 모셔져 있다. 국왕에서 쫓겨난 연산군과 광해군의 신주는 종묘에서 찾아 볼 수 없다. 종묘에 모셔진 국왕과 왕비의 신주는 왕실의 정통성을 반영한 것이다.


종묘에는 국왕과 왕비의 신주를 모신 신실이 있다. 각 신실의 북쪽에는 감실을 설치하고, 그 중앙에 신주장을 두며, 신주장 안에 신주를 모셨다. 신주장에 신주를 모시는 순서는 서쪽 끝에 국왕의 신주를 두고 그 동쪽으로 차례로 왕비의 신주를 두었다. 가령 숙종과 세 왕비의 신주를 모실 때에는 서쪽 끝에 숙종, 그 동쪽에 인경왕후, 인현왕후, 인원왕후의 순서로 신주를 놓았다. 국왕의 신주는 흰색 모시 수건으로 덮고, 왕비의 신주는 청색 모시수건으로 덮었다.


신주에 국왕의 이름을 쓰는 것을 제주(題主)라 한다. 제주는 산릉에 국왕의 육신을 매장한 후 임시로 가설한 길유궁에서 거행하였다. 매장을 통해 국왕의 육신은 땅으로 돌아가고, 정처 없이 떠돌던 혼령은 제주를 통해 신주에 깃든다고 생각했다. 이 신주를 모시고 돌아와 혼전에 봉안하니 이것이 우주(虞主)이다. 우주는 국왕의 첫 번째 기일인 연제(練祭, 소상) 때까지 사용하다가 새로운 신주인 연주(練柱)로 바꾸며, 연주는 삼년상을 지낸 후 종묘에 신주를 모시는 부묘(祔廟)를 할 때 종묘의 신주장에 모셨다. 한편 우주는 연제가 끝나면 작은 가마에 싣고 종묘로 가서 연주를 봉안할 정전의 신실 바로 뒤편의 북쪽 계단에 묻었다. 우주는 뽕나무, 연주는 밤나무로 만들었다.


종묘의 신실에 모신 신주(연주)에는 국왕의 이름이 기록되어 있다. 태조의 신주를 보면 ‘유명증시강헌 태조 지인계운 성문신무 대왕(有明贈諡康獻 太祖 至仁啓運 聖文神武 大王)’이라 쓰였다. 이중에서 ‘유명증시강헌(有明贈諡康獻)’은 명 황제가 내린 시호인 강헌을 말한다. 다음의 ‘태조’는 묘호이고, ‘지인계운 성문신무(至仁啓運 聖文神武)’는 시호에 해당한다.


청나라로 교체된 후 신주에 큰 변화가 생겼다. 청나라 황제가 내린 시호를 쓰지 않게 된 것이다. 인조의 신주는 ‘인조 헌문열무 명숙효순 대왕(仁祖 憲文烈武 明肅孝純 大王)’이라 쓰였다. 이중에서 ‘인조’는 묘호이고, ‘헌문열무 명숙효순(憲文烈武 明肅孝純)’은 시호이다. 청 황제도 조선 국왕이 사망하면 시호를 주었다. 그러나 조선 정부는 청을 오랑캐의 나라라 하여 그들이 준 시호를 신주에 쓰지 않았다.


신주의 글자 수가 가장 많은 국왕은 영조이다. 영조의 신주는 52글자로 ‘영종 지행순덕영모의열 장의홍륜광인돈희 체천건극성공신화 대성광운개태기영 요명순철 건건곤녕 익문선무희경현효 대왕(英宗至行純德英謨毅烈章義弘倫光仁敦禧體天建極 聖功神化大成廣運開泰基永堯明舜哲乾健坤寧翼文宣武熙敬顯孝大王)’이다. 이중에서 영종은 묘호이다. 영종을 영조로 고친 것은 고종이다. ‘지행순덕 영모의열’ ‘장의홍 륜 광인돈희’ ‘체천건극 성공신화’ ‘대성광운 개태기영’ ‘요명순철 건건곤녕’은 존호이고, ‘익문선무 희경현효’는 시호이다.

 

종묘의 신주는 대한제국이 건설된 후 다시 정비되었다. 황제국이 되면서 중국 황제가 주는 시호를 받을 필요가 없어졌기 때문이다. 신주를 기록하는 방식에도 변화가 생겨 태조부터 원종까지 묘호 위에 있던 명나라 황제가 내린 시호가 사라졌다. 태조의 신주를 보면 ‘유명증시강헌(有明贈諡康獻)’ 부분이 빠지고 묘호, 존호, 시호만 남았고, ‘대왕(大王)’ 대신에 ‘고황제(高皇帝)’라는 제호(帝號)를 썼다.


국왕과 왕비가 받은 어보, 어책, 교명은 주인공이 살아있을 때는 생활공간에 두었고, 사망한 후에는 혼전(魂殿)에 두었으며, 삼년상을 마치면 종묘의 신실에 모셨다. 종묘의 신실에는 중앙에 신주장이 있고, 좌측(동쪽)의 보장에는 어보를 보관하며, 우측(서쪽)의 책장에는 어책, 교명, 국조보감(國朝寶鑑)을 보관하였다. 국조보감은 실록처럼 국왕이 사망한 후 작성하며, 국왕의 언행에서 모범이 되는 기사를 뽑아 편집하였다. 종묘에 보관된 신주, 어보, 어책, 교명의 관리는 종묘서(宗廟署)에서 담당하였다.


현재 종묘 건물은 세계유산, 종묘제례와 제례악은 인류무형문화유산, 종묘에 보관했던 조선왕실 어보와 어책은 세계기록유산으로 지정되어 있다. 조선 국왕의 이름을 기록한 상징물들을 보관했던 종묘는 오늘날 인류 문화유산으로서의 가치를 세계적으로 인정받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