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궁궐의 짜임과 쓰임새
궁궐은 궁성(宮城)이라고 하는 높은 담으로 둘러싸여 있고, 그 궁성에는 요소요소에 문이 나 있다. 그 문들 가운데 대개 남쪽으로 나 있는 문이 으뜸가는 문, 대문이다. 대문을 들어서면 외부에서 들어온 신하들이 임금에게 충성의 의식을 치르는 공간인 외전(外殿)이 배치되어 있다. 외전은 다시 행각으로 둘러싸인 구역이 두 세 겹 겹쳐 있는데 가장 안쪽 구역이 외전의 중심을 이루는 주 행사장이다. 행각으로 둘러싸인 공간의 중앙에서 뒤편에 기단을 쌓고 그 위에 웅장하고 화려한 건물을 지었다. 이 건물은 임금이 주인이 되는 공식 행사에 주로 쓰였다. 그렇게 용도가 정해져 있다는 점에서 법전(法殿)이라고 부른다. 또 이 구역 가운데 가장 격이 높은 중심 건물이라는 뜻으로 정전(正殿)이라고 한다.
정전의 기단은 앞으로 넓게 내 쌓았다. 이를 월대(越臺, 月臺)라 한다. 월대는 정전과 그 앞의 넓은 마당을 연결하는 공간이요, 행사를 진행하는 일을 담당하는 사람들의 활동 공간이다. 월대 앞 마당을 조정(朝廷)이라고 하는데, 행사 시에 신료들이 도열하는 자리다. 외전에서 여는 공식 행사를 통틀어 조회(朝會)라 하는데 그 가운데 정기적으로 신하들이 임금을 뵙고 충성의 예를 표하는 대표적 행사가 조참(朝參)이었다. 외전에서 더 들어가 궁궐 중앙부에는 임금과 왕비가 기거하며 활동하는 공간이 있다. 이를 내전(內殿)이라 한다. 내전은 다시 임금의 공간인 대전(大殿)과 왕비의 공간인 중궁전(中宮殿)으로 나뉜다. 대전은 임금이 평상 시 공식적으로 임어하는 곳이라는 점에서 시어소(時御所)이다. 신하들이 임금을 만나뵈러 가려면 시어소를 찾아야 한다. 또 임금이 공식 활동이 아닌 편안한 유식 상태로 머무는 곳이라는 뜻으로는 연거지소(燕居之所)라 한다. 또 밤에 왕비든 후궁이든 또는 홀로든 잠을 자는 공간이라는 점에서는 침전(寢殿)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대전은 임금의 공간, 궁궐에서도 가장 핵심적인 공간이라고 할 수 있다.
중궁전은 중궁, 중전, 곤전 등으로 불리기도 하였다. 대전의 뒤편, 궁궐에서 가장 깊숙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중궁전은 왕비의 시어소이자 연거지소이자 침전이었다. 왕비는 임금의 부인이요 국모로서 궁궐에 사는 여인들의 조직체인 내명부(內命婦)와 궁궐에 드나드는 여인들인 외명부(外命婦)를 치리하고 상대하는 공인(公人)이었다. 중궁전은 내진연(內進宴), 내진찬(內進饌) 등 왕비가 주인이 되는 각종 의례가 행해지는 곳이었으며 왕비와 그를 시중드는 사람들의 생활기거공간이었으며 왕비와 임금의 침전이기도 하였다.
외전과 내전의 경계 지점에는 임금과 신하들이 공식 회의를 하는 건물인 편전(便殿)이 배치되었다. 편전은 공식적으로는 경복궁의 사정전(思政殿), 창덕궁의 선정전(宣政殿), 창경궁의 문정전(文政殿)처럼 특정 건물이 정해져 있지만, 임금이 신하들을 만나는 건물은 대개 편전으로 인식하였다. 정해진 편전은 내부가 넓은 마루방으로 조성되어 있어 여러 명이 모이는 모임을 가질 수 있었다. 임금과 주요 관서의 고위 관원들이 매일 만나는 회의를 상참(常參)이라 한다. 임금은 상참 외에도 경연(經筵), 윤대(輪 對)나 차대(次對) 등 여러 형식으로 관원들을 돌아가며 만났다. 임금이 그때그때 대전 내외 인근의 건물을 지정하여 신하들을 만나기도 하였기에 그런 건물들은 모두 편전의 기능을 갖는 것으로 보기도 하였다.
내전 및 외전을 기준으로 그 동쪽에는 세자(世子)의 공간이 있는데 이를 동궁(東宮), 또는 춘궁(春宮)이라고 한다. 세자가 이곳에서 왕위 승계자로서 임금이 되기 위한 준비를 하였다. 이를 위하여 동궁 부근에는 세자에게 학문을 가르치는 세자시강원 (世子侍講院, 일명 춘방春坊), 세자를 호위하는 세자익위사(世子翊衛司, 일명 계방桂坊) 등이 함께 배치되었다. 세자가 장성한 경우에는 세자빈(世子嬪)의 공간도 부근에 마련되었다.
내전과 외전의 주변에는 궁궐에 들어와 임금을 자주 만나면서 활동하는 관원들의 공간이 있는데 이를 궐내각사(闕內各司)라고 한다. 대개 외전의 서편에 배치하지만, 각 궁궐의 형편에 따라 적절한 장소에 배치하였다. 임진왜란 이후 광해군대 창덕궁과 창경궁을 다시 지을 때 두 궁궐 각각 궐내각사를 갖추었다. 그러다가 1689년(숙종 15)년 무렵부터는 주요 궐내각사 청사는 두 궁궐을 통합하여 창덕궁에만 배치되는 쪽으로 바뀌었다. 두 궁궐을 긴밀히 연결하여 크게 하나의 공간으로 쓰게 된 것이다. 이는 숙종 연간 여러 차례 환국을 거치면서 임금의 정치적 역할이 증대되는 것과 관련되어 나타난 변화다.
그렇게 창덕궁으로 통합된 궐내각사를 보면, 궐내각사에는 대신들이 임금을 만나기 전이나 만나고 나와서 모이는 건물인 빈청(賓廳), 사헌부와 사간원의 언관들이 머무는 대청(臺廳), 이조와 병조의 관원들이 인사 업무를 처리하는 정청(政廳), 임금과 함께 경연(經筵)을 하는 등 학문적인 자문을 하는 홍문관(弘文館, 일명 옥당玉堂), 임금의 비서실로서 관서들로부터 공문서를 받아 임금에게 들이고 임금이 결재하여 내리는 문서를 해당 관서에 전하는 일을 비롯하여 임금의 일정을 관리하는 등의 일을 하는 승정원(承政院, 일명 정원政院, 은대銀臺), 왕실 문서 및 일반 서적을 관리하고 학문 연구, 감찰 기능 등을 가지고 있던 규장각(奎章閣, 일명 내각內閣), 외교문서를 작성하는 예문관(藝文館), 역사를 기록하는 춘추관(春秋館), 임금과 왕실의 약을 조제하는 내의원(內醫院, 일명 약방藥房, 내국內局), 그리고 임금과 왕실의 식자재 및 식기를 조달하는 사옹원(司饔院, 일명 주원廚院)을 비롯하여 왕실과 궁궐의 각종 살림을 맡아보는 여러 실무 관청들, 내병조(內兵曹)를 비롯하여 왕과 궁궐을 호위하는 각종 군사 관계 관서 등 많은 관서들이 있었다.
창경궁에는 세자를 보필하는 세자시강원(世子侍講院)과 세자익위사(世子翊衛司), 궁궐의 탈것을 관리하는 내사복시(內司僕寺), 오위도총부(五衛都摠府)를 비롯한 궁궐 수비 관련 군사조직, 규장각의 주자소(鑄字所)를 비롯한 출판 관련 조직이 있는 정도였다. 궐내각사는 경희궁에도 대체로 갖추어져 있어서 임금이 경희궁에 임어하는 기간에는 해당 관원들이 경희궁으로 나아가 정무적, 행정적 기능을 수행하였다.
궐내각사에 대비하여 궁궐 밖에 배치되어 있는 관서들을 통틀어 궐외각사(闕外各司)라 한다. 궐외각사는 경복궁 광화문 앞 일대에 배치되어 있었다. 광화문 앞 길 연도 좌우에는 국가의 중추적인 고위 관서들이 늘어서 있었다. 광화문 동편에 의정부, 이조, 한성부, 호조, 기로소가 있었고, 서편에 예조, 중추부, 사헌부, 병조, 형조가 있었다. 그 뒤편으로는 품계가 낮은 실무 관서들이 배치되었다. 임금이 동궐이나 서궐에 임어하는 기간에는 그 문 근처에 조방(朝房) 혹은 직방(直房)이라고 하는 공간을 마련하여 고위 관원들이 그곳에서 대기하다가 때맞추어 궁궐에 들어가 임금을 만나볼 수 있게 하였다.
전체적으로 보아서 궁궐의 뒤편, 곧 내전 뒤편으로는 궁궐에서 사는 왕실 가족들의 생활기거공간이 마련되어 있었다. 그와 함께 궁궐에서 기거하면서 임금과 왕실 가족들의 시중을 드는 사람들의 생활공간과 궁궐에 출입하면서 실무 허드렛 일을 하는 일터도 생활공간 사이사이에 배치되어 있었다. 궁궐은 당대 가장 고급의 생활문화인 궁중문화의 현장이요, 그 문화를 뒷받침하는 생산의 현장이기도 하였다.
궁궐의 뒤편 궁성 안쪽이나 또는 궁성 바깥쪽에는 원유(苑囿)가 조성되었다. 원유란 자연적인 숲에 인공 시설들을 설치하여 여러 목적으로 활용하는 공간을 가리킨다. 이 공간을 후원(後苑), 금원(禁苑), 내원(內苑), 북원(北苑) 등으로 불렀다. 후원에는 궁궐 중심 구역을 벗어나 호젓하게 생활하기 위한 별장같은 건물, 또는 세자나 왕자들의 학습을 위한 건물, 경관을 감상하며 소수의 사람들이 시회(詩會) 등 휴식을 취하기 위한 정자(亭子) 등을 지었다. 특별하지만 임금 관련 특별한 물품을 보관하는 데서 시작하여 도서관, 연구소, 정책 개발실, 임금의 어진을 봉안하는 사당적 기능을 갖게 된 규장각(奎章閣)도 있었다. 그와 함께 필요한 곳에 연못이나 계류(溪流)를 팠고, 낮고 평탄한 곳에는 넓은 공터를 마련하여 연회(宴會), 과거(科擧), 열무(閱武), 시사(試射) 등 여러 사람이 모이는 행사를 열기도 하였다. 후원은 단순한 휴식 공간이 아니라 국정에 필요한 활동을 하는 다목적 공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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