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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궁중문화의 터전 궁궐 - 서울과 궁궐

튼씩이 2022. 5. 25. 12:55

조선 궁중문화의 터전 궁궐

 

홍 순 민

명지대학교 기록정보과학전문대학원 교수

 

 

1. 서울과 궁궐

 

침묘(寢廟)는 조종(祖宗)을 받들어 효성과 공경을 높이려는 곳이요, 궁궐은 존엄을 과시하고 정령(政令)을 내려는 곳이며, 성곽(城郭)은 안팎을 엄하게 구별하고 나라를 공고히 하려는 곳입니다. 이 세 가지는 모두 나라를 소유한 이라면 마땅히 먼저 갖추어야 할 바입니다.”

 

태조 3, 1394113일 한양으로 천도하기로 결정한 뒤에 당시 관서들 가운데 가장 고위 관서인 도평의사사에서 올린 보고서의 내용이다.

 

임금은 왕조국가의 주권자이자 통치자였다. 임금이 거주하는 도시를 왕도(王都)라고 한다. 한국사에서는 왕도가 곧 수도(首都)였다. 왕도이자 수도인 도시에는 여타 도시에는 없는 시설물이 셋 있었다. 종묘와 궁궐과 도성이 그것이다. 그 가운데 궁궐은 존엄(尊嚴)을 과시하여 정령(政令)을 내기 위한 곳이다. 지존(至尊)인 임금의 존엄이요, 임금이 내리는 법적 권위와 효력을 갖는 왕명(王命)이다. 궁궐은 왕실 가족의 생활 터전이라는 의미보다 정치와 행정의 최고 단계의 집행이 이루어지는 공간, 최고의 관부라는 의미가 더 큰 시설이다.

 

궁궐은 임금이 사는 곳, 국가의 최고 권력자이자 주권자인 국왕의 기거 활동 공간 이었다. 왕조 체제에서 모든 정치, 행정 행위의 최종 결정은 원칙적으로 임금에게 귀결되었다. 법제적으로는 관료들이 임금의 결정에 따라 위임된 업무를 분장하는 형식이었다. 임금은 사적인 생활은 물론 공적인 활동도 궁궐에서 수행하였다. 국왕이 궁궐을 벗어나는 일은 전시하의 비상적인 행차라든가, 능행(陵幸), 종묘나 왕실 사당을 참배하는 경우 등을 제외하고는 매우 드물었다. 따라서 임금을 만나 정치적인 논의를 하고, 집행 결과를 검토하고 보고하는 관원들은 모두 궁궐로 들어왔다. 궁궐은 이러한 관원들의 활동 공간이기도 하였다. 국정의 최고 최종 과정이 수행되는 최고 관부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