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궁중의 그림들
신 재 근
국립고궁박물관 학예연구사
1. 궁중회화의 종류
궁중회화는 왕과 국가에 의해서 그려지고 소용된 그림들을 의미한다. 이러한 그림들을 지칭하는 용어로는 궁중회화 이외에 왕실회화라는 표현이 혼용되고 있다. 전제군주국가에서는 맥락에 따라 왕 또는 왕실을 곧 국가의 의미로 확장하여 설명하기도 하지만, 기본적으로 왕실이라는 용어는 왕과 그 집안을 지칭하는 것이기 때문에 ‘왕실회화’는 그 의미 범위가 제한적일 수 있다. 궁중은 사전적으로 ‘궁궐의 안’이라는 의미이지만, 궁중회화가 단순히 건축적인 공간으로서 궁궐에 사용된 그림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궁궐은 왕의 거처인 동시에 국가의 통치 행위가 이루어지는 공간이기도 했기 때문에 궁중회화는 왕과 국가에 의해서 그려지고 소용된 그림들을 포괄하는 보다 넓은 의미의 용어이다.
궁중회화의 종류는 크게 일곱 가지로 나누어 살펴볼 수 있다. 이러한 분류 체계는 궁중회화의 전모와 성격을 체계적으로 이해하는데 있어서 가장 기본적인 접근법이라 하겠다. 다만, 이러한 분류와 용어들이 각각의 그림들이 제작되고 활용되었던 입체적인 성격을 모두 드러낼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또한 기초강좌 성격의 강연에서 궁중회화의 모든 분야를 다루기에는 내용도 다소 어렵고 시간적인 제한도 있으므로 이번 강연에서는 비교적 친숙한 주제인 궁중행사도와 궁중장식화에 대해서 국립고궁박물관 대표 소장품을 중심으로 그 구체적인 성격을 살펴보고자 한다.
표 1. 궁중회화의 종류
2. 궁중행사도
궁중행사도는 궁중에서 축하할 만한 행사 장면을 그린 그림이다. 각종 연향(宴享), 기로소(耆老所), 능행(陵幸), 진하(陳賀) 등이 그 주요 대상이다. 오늘날과 같은 사진이나 영상 매체가 없었던 전통 사회에서 그림은 행사 장면을 시각적으로 재현할 수 있는 유일한 수단이었다. 조선시대의 궁중 행사에 대한 많은 정보들이 그림으로 기록되어 현재까지 전해지고 있기 때문에 이를 ‘기록화’라는 관점으로 이해할 수도 있다. 그러나 당시의 궁중 행사들이 그림으로 다수 남겨진 배경에는 참여한 관원들이 행사를 ‘기념’하기 위한 목적이 자리하고 있으며 이는 조선시대 관료들의 동류의식에 기인한 것이다.
왕세자입학도 王世子入學圖
1817년 3월 11일, 효명세자(孝明世子, 1809~1830)가 9세의 나이로 성균관에서 ‘입학의(入學儀)’를 치렀다. 당시의 입학과정은 의주(儀註)와 이를 도해한 그림 등이 화첩으로 엮어져 전해지고 있는데 이것이 바로 《왕세자입학도》첩이다.
《왕세자입학도》는 입학의 절차를 상세하게 설명한 의주, 의주를 도해한 그림 여섯 장면, 이날 행사에 참여한 세자시강원(世子侍講院) 관원 13명의 축하시, 남공철(南公轍)의 발문(跋文) 등으로 구성되어 있다. 화첩의 말미에 수록된 남공철의 발문 내용을 보면 “입학례가 이미 이루어지자 춘방의 여러 학사들이 서로 더불어 이 일을 그림으로 그리고 첩을 만들어 공철에게 발문을 짓도록 부탁하였다”라고 화첩의 제작 경위를 밝히고 있다.
표 2. 왕세자입학도의 화제(畫題)
《왕세자입학도》는 국립고궁박물관 소장본 이외에도 국립중앙도서관, 고려대학교 박물관, 경남대학교 박물관, 연세대학교 도서관, 서울대학교 규장각한국학연구원 등에 소장되어 있다. 이들 여섯 종의 이본 중 서울대학교 규장각한국학연구원 소장본을 제외한 나머지 다섯 본은 의주, 여섯 장면의 그림, 세자시강원 관원들의 축하시, 남공철의 발문이라는 동일한 구성을 취하고 있다. 규장각본의 경우, ‘참의공사연도’라는 제목으로 다른 그림들과 합쳐진 화첩이라는 점, 입학의를 도해한 장면 하나만 수록되어 있다는 점에서 나머지 이본들과 차이가 있다.
현재 여섯 본의 《왕세자입학도》가 전해지고 있다는 것은 당시에 동일한 내용으로 여러 부가 제작되었음을 의미한다. 왕세자의 입학 의례를 관장했던 세자시강원 관료들의 숫자에 왕실 열람본이 더해진 숫자만큼 제작되었을 것으로 추정할 수 있다.
왕세자탄강진하도 王世子誕降陳賀圖
1874년(고종 11)년 원자(순종)의 탄생을 축하하는 행사(진하) 장면을 그린 10폭 병풍이다. 창덕궁 인정전에서 진행된 행사 장면은 2폭부터 9폭까지 여덟 폭에 걸쳐서 그려져 있다. 1폭과 10폭에는 관리들의 관직, 품계, 이름을 적어 넣었는데 원자가 태어날 때 임시로 설치된 관청(산실청 또는 호산청)의 관원들이다. 이를 통해 <왕세자탄강 진하도>가 원자의 탄생을 가장 가까이에서 보좌했던 관원들이 이를 기념하기 위해 제작한 것임을 알 수 있다.
모임 또는 행사를 기념하게 위해 제작한 그림을 통칭하여 계회도라고 한다. 계회도는 전통 그림의 형식에 따라서 축(軸, 족자)에 그려지면 계축, 첩(帖)에 그려지면 계첩, 병풍에 그려지며 계병이라고 한다. 후대로 갈수록 계축 → 계첩 → 계병의 순서로 형식이 변화되는 경향을 보인다. 조선 후기로 갈수록 계병이 많이 남아있다.
왕세자두후평복진하도 王世子痘侯平復陳賀圖
1879년(고종 16) 왕세자(순종)가 천연두에서 회복된 것을 축하하는 행사 장면을 그린 8폭 병풍이다. 1폭에는 수문장 겸 초관(哨官, 종9품의 무관)이었던 이상덕(李相德)이 쓴 발문이 있고 8폭에는 관원들의 목록이 적혀있다. 관원들은 오위장(五衛將)과 초관의 관직을 가진 이들이어서 이 행사에 관여했던 무관들에 의해서 이 병풍이 제작되었음을 알 수 있다.
행사 장면은 2~4폭, 5~7폭에 각각 하나씩 두 개의 행사를 그렸다. 그러나 이 그림은 실제 행사 장면이 아니라 이전에 그려졌던 ‘왕세자책례도’의 도상을 그대로 옮겨온 것이다. 2~4폭은 책봉례(冊封禮) 장면, 5~7폭은 수책의(受冊儀) 장면에 해당되는데 이는 1784년 그려진 <문효세자책례계병(文孝世子冊禮契屛>(서울대학교박물관 소장)의 도상과 동일하다. 행사 장면의 사실적 재현보다는 관원들의 행사 참여를 기념하기 위한 목적에 더 비중을 두고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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