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연례 등의 의식음악
제례를 제외한 조회와 잔치 등 의식에서 연주된 음악에는 보허자과 낙양춘과 같은 당악, 정읍 계통의 수제천과 동동, 여민락 계통의 여민락만, 여민락령, 해령이 있다. 영산회상, 자진한잎 계통은 민간에서 활발히 연주된 곡으로서 궁중 연례에서도 향유되었다.
1) 당악: 낙양춘과 보허자
당악은 당나라 음악이라는 뜻이지만, 중국에서 전래된 아악이 아닌 속악을 말한다. 현재 연주되는 당악으로는 송나라에서 고려에 전해진 사악(詞樂)의 하나인 낙양춘과 보허자가 있다. 사(詞)는 송나라에서 유행하던 문학 장르이다. 선율이 먼저 있고 이에 맞추어 노랫말(사: 詞)을 창작하는데, 그 음악을 사악(詞樂)이라고 한다. 사는 미전사와 미후사로 구성된다. 미전사와 미후사의 머리 부분 선율은 서로 다르고 둘째 구부터는 동일한 선율을 반복한다. 반복하는 선율을 환입이라고 하고, 다른 선율로 바뀌는 부분을 환두라고 한다. 악기편성은 편종, 편경, 방향, 당피리, 대금, 당적, 해금, 아쟁, 장구, 좌고 등으로 이루어진다. 박을 쳐서 음악의 시작과 끝을 지시한다.
낙양춘은 송나라 구양수(歐陽修, 1007-1072)가 지은 것으로, 낙양의 봄이라는 뜻이다, 멀리 떠나간 님을 그리는 여인의 마음을 그린 것이다. 궁중에서 의식음악으로 연주되었다. 조선 후기에 기악화 되었으며, 장단은 불규칙하다. 1960년 이혜구의 연구 결과를 바탕으로 김기수가 성악을 복원하여 남녀합창을 더해 연행하기 시작했다. 아명으로는 기수영창지곡(其壽永昌之曲)이라고 한다.
보허자의 보허(步虛)는 허공을 걷는다는 뜻으로 도교적인 신선사상을 담은 악곡의 이름이다. 송나라 대곡(大曲) 오양선(五羊仙)에서 벽연농효사(碧烟籠曉詞)를 붙여 노래했다. 보허자는 조선 궁중에서 임금께 잔을 올리거나 왕세자의 거둥 등 의식에서 연주될 뿐 아니라 춤에 수반되었다. 특히 장생보연지무(長生寶宴之舞)를 출 때, 보허자의 1, 2장 가락에 맞추어 천문해일선홍(天門海日先紅)으로 시작하는 노랫말을 부른다. 이처럼 궁중 정재에서는 반주음악의 선율에 맞추어 노래를 함께 부르기도 했는데 이를 수악절창사(隨樂節唱詞)라고 한다. 천문해일선홍(天門海日先紅)으로 시작하는 장생보연지무의 창사는 순조 29년(1829) 효명세자가 지은 것이다. 보허자는 낙양춘과 달리 규칙적인 쌍(덩), 편(기덕), 고(쿵), 요(더러러러)의 일정한 장단으로 되어 있고, 1장단 20박이다. 보허자는 아명으로 장춘불로지곡(長春不老之曲)이라고 하며, 민간에서도 연주되면서 다양한 변주곡을 낳았다.
2) 정읍 계통
수제천과 동동은 유사한 음악으로 각각 빗가락정읍(남려 주음), 세가락정읍(임종 주음)이라고 한다. 수제천은 백제가요 정읍사(井邑詞)를 노래하는 성악곡이었다. 향악을 대표하는 악곡으로 궁중음악의 백미로 꼽힌다. 수제천은 빗가락정읍의 아명(雅名)에 해당하며, 하늘처럼 영원한 생명을 기원하는 뜻을 담고 있다. 고려시대에는 궁중 정재 무고(舞鼓)의 반주음악으로 사용되었다. 조선후기에는 아박 정재의 반주에 사용되었고, 현재는 처용무 반주곡의 하나로도 쓰인다. 연주악기는 대금, 소금, 향피리, 해금, 아쟁, 장구, 좌고, 박 등으로 편성된다. 박을 쳐서 시작하고 끝맺는다.
전체 4장으로 구성되는데, 7장단으로 이루어진 1장이 2, 3장에서 반복되며 음역을 높여 연주되고, 4장은 2장단만으로 압축적으로 끝맺는다. 짧게 연주할 때는 1, 4장만을 연주한다. 주 선율을 연주하는 피리가 장단 끝에서 잠시 쉬는 동안에 대금, 해금, 아쟁, 소금 등의 악기만이 연주하는 것을 음을 이어간다는 뜻에서 연음(連音) 형식이라고 한다. 연음형식은 해령, 관악영산회상 상령산과 같은 관악곡에서도 쓰인다. 이것은 악기군 사이에 음향의 대비감이 있어 듣는 이의 귀를 기울이게 한다. 각 장단의 장구점은 쌍, 편, 고, 요로 규칙적이다. 장단 처음 “쌍”을 “덩” 합장단으로 치지 않고, 먼저 채편을 치고 나중에 궁편을 치는 “기덕 쿵”으로 시작하는데 이를 “갈라친다”고 한다. 느린 곡의 특징으로 여민락, 영산회상 상영산 장단에도 쓰이는 방식이다. 장구점 사이의 길이가 일정하지 않고, 그 사이에 몇 번 숨을 쉬는데 이렇게 만들어지는 숨구가 리듬의 기준이 된다. 느린 템포에 화려한 장식음이 수제천의 특징이다. 처용무 반주를 할 때는 향피리2, 대금1, 해금1, 장구1, 북1의 삼현육각 편성으로 연주한다.
동동은 고려속요 동동사를 노래하는 성악곡으로 동동무에 연주되었다. 동동이라는 제목은 노랫말에 “아으 동동다리”라는 후렴구를 가지고 있는 것과 관련이 있다. 현재는 수제천처럼 관악합주곡으로 연주된다. 연음형식도 수제천과 같다.
3) 여민락 계통
여민락은 세종이 직접 창제한 신악 중 하나이다. 백성과 즐거움을 함께 한다는 뜻의 여민락은 봉래의(鳳來儀)의 구성곡으로 각종 연향과 의식에서 연주되었다. 여민락은 순한문으로 된 용비어천가의 1,2,3,4장과 마지막 125장을 가사로 노래하던 음악인데 기악곡화 되었다. 조선시대 국가 의식과 연향 등에서 임금의 거둥 때 행악으로 연주되었다. 궁중 전통의 여민락 계통의 곡에는 여민락만, 여민락령과 해령이 있다.
여민락만은 줄여서 만(慢)이라고도 부르며 경록무강지곡(景籙無彊之曲)이라는 아명이 있다. 여민락령은 줄여서 영(令)이라고도 부르며 태평춘지곡(太平春之曲)이라고 한다. 변주곡인 해령과 구분하기 위하여 본령이라고도 부른다. 해령(解令)은 “풀어서 연주한”, 즉 변주한 영(令)이라는 뜻이다. 서일화지곡(瑞日和之曲)이라고 한다. 이 곡들은 당피리 중심의 음악으로 대개 편종, 편경, 당적, 대금, 당피리, 해금, 아쟁, 좌고, 장구, 박 등으로 구성한다.
여민락만과 여민락령은 기본적으로 1음 1박이며 일정한 장단이 없으며, 해령은 장단의 패턴은 있으나 장구점을 넣고 빼거나 길고 짧게 신축적으로 연주한다. 해령에서는 수제천에서와 같이 연음이 있다. 당피리를 중심으로 한 모든 악기가 연주하다가 당피리, 편종, 편경 등이 쉬고, 대금, 당적, 해금 등의 악기가 연음을 연주하여 다양한 음색과 아름다운 흐름을 연출하는 것이다.
이밖에 조선후기에 민간의 풍류방에서 전승된 여민락이 있는데, 여민락은 거문고, 가야금, 향피리, 대금 등의 향악기로 연주하며 소금, 아쟁, 좌고를 추가하여 관현합주로 연주하는 경우에 승평만세지곡(昇平萬歲之曲)이라고 불린다.
4) 영산회상 계통
영산회상은 조선 성종 때 편찬된 악학궤범(1493)에 의하면, “영산회상불보살”이라는 불교적인 가사를 노래하는 음악이었다. 영산회상은 궁중의식에서 대규모의 관현악과 성악으로 연주 되었지만, 후에 가사가 탈락되어 민간에서 기악곡으로 발전하여, 선비문화의 상징인 풍류음악을 대표하는 악곡이 되었다. 느리게 시작해서 점차 흥청거리며 빠른 곡으로 진행하며, 상령산, 중령산, 세령산, 가락더리, 삼현도드리, 하현도드리, 염불도드리, 타령, 군악으로 구성된다.
영산회상에는 현악영산회상, 이를 4도 내린 평조회상, 관악영산회상이 있는데, 이 중에서 가장 웅장한 곡은 관악영산회상이다. 바른 정치가 만방에 퍼진다는 뜻으로 표정만방지곡(表正萬方之曲)이라는 아명으로도 불린다. 장단점에 매이지 않고 박을 자유롭게 넘나들며 연주하는 피리, 대금 등의 관악 독주곡으로 자주 연주된다. 영산회상은 피리, 대금, 해금, 장구, 북을 중심으로 하는 삼현육각 편성이라는 뜻에서 삼현영산회상이라고도 한다. 현악영산회상에 비해 하현도드리 한 곡이 없고, 나머지는 동일하다. 관악영산회상의 삼현도드리 이하의 곡이 궁중 무용(정재)을 비롯한 무용의 반주곡으로 애용되는데, 이를 향당교주 혹은 함녕지곡이라고 한다.
5) 자진한잎 계통
자진한잎은 현재의 가곡을 가리키는 삭대엽(數大葉)의 순우리말이다. 가곡은 거문고, 가야금, 세피리, 대금, 해금, 장구 등 관현합주에 맞추어 시조시를 노래하는 성악곡이다. 가곡은 풍류방 음악이나 조선 후기 선비문화예술 공간인 풍류방을 넘어 궁중 연향에서 연주되거나 궁중무용 반주와 창사의 선율로 사용하기도 했다.
자진한잎은 가곡 중에서 두거, 농, 낙, 편을 기악곡으로 연주한다. 가곡이 궁중에서 불리었으므로 자진한잎 즉, 가곡을 연주하는 기악곡도 궁중에서 연주되었을 것으로 생각된다. 자진한잎은 일반적으로 향피리, 대금, 소금, 해금, 아쟁, 장구, 좌고 등 관악합주 편성으로 연주하는데, 이를 경풍년(慶豊年)이라는 아명으로 부른다. 큰 규모의 합주일 경우 박을 쳐서 시작하고 끝낸다. 악곡의 구성과 편성에 따라 다른 이름으로 부르기도 한다.
3. 군례악: 대취타
궁중과 관련된 군례악에는 ‘불고 두드린다’는 뜻의 취타 계열의 대취타가 대표적이다. 대취타는 왕실의 공식 행차에서 연행하던 행진음악이다. 아명으로 무령지곡(武寧之曲)이라고 한다. 궁중 선전관청과 군영에 취타대가 있어서 어가 행렬에서, 그리고 진연 등 궁중 연향에서 선유락 등 정재를 출 때 대취타를 연주했다.
악기 편성은 태평소가 유일한 선율 악기로 장쾌한 소리를 내고, 나발, 나각 등의 관악기는 음높이가 정해지지 않은 한 음을 길게 소리 내며, 용고, 자바라, 징 등 타악기들이 함께 연주한다. 이 악기들은 군대 훈련과 전투에서 사용된 통신 신호용 도구이기도 하다. 집사가 지휘봉인 등채를 머리 위로 올리고 징(金)을 한번 치라는 뜻으로 “명금일하대취타(鳴金一下大吹打) 하랍신다”고 호령하면 “예이”하면서 음악을 시작한다. 음악을 마칠 때는 시끄러운 소리를 그치라는 뜻으로 “허라금(훤화금, 喧譁禁)”이라고 구령하여 그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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