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궁중장식화
궁중장식화라는 용어는 궁궐 안팎을 ‘장식’했던 그림으로 이해될 수 있지만, 단순히 궁궐을 아름답게 꾸미는 기능에만 머물지 않고 각종 의례 등에 사용되기도 하면서 왕실의 권위를 나타내고 왕실의 안녕을 기원하는 바람을 담은 상징적인 그림이기도 했다. 권위를 상징하는 일월오봉도, 모란도 등과 길상적인 의미를 담은 십장생도, 해학반도도, 곽분양행락도, 요지연도, 한궁도, 책가도 등이 궁중장식화의 주요 화제(畫題)이다.
일월오봉도 日月五峯圖
일월오봉도는 해와 달, 다섯 개의 산봉우리를 그린 것으로 왕의 권위를 상징하는 그림이다. 궁궐의 정전에 설치되는 것은 물론이고 왕이 자리하는 곳이라면 궁궐 내외를 가리지 않고 어디든 어좌(御座) 뒤에 일월오봉도가 놓였다. 일월오봉도 도상은 조선에만 존재하는 것으로 조선 초기 이래 지속적으로 왕을 상징하는 의미로 사용되었다.
일월오봉도 도상의 연원에 대해서는 몇 가지 해석들이 제기되고 있다. 일월과 오봉이 하늘과 땅을 뜻하고 그 앞에 왕(사람)이 앉으면서 천지인(天地人)을 의미하는 것으로 해석하기도 하고 해와 달, 다섯 봉우리를 음양오행(陰陽五行) 사상으로 설명하기도 한다. 또한 시경(詩經)의 <천보구여(天保九如)>에 등장하는 자연물을 표현한 것으로 보는 견해도 있다.
일월오봉도는 궁궐 정전의 어좌 뒤에 고정적으로 설치되기도 하지만, 현재 남아있는 다수의 일월오봉도는 이동이 가능한 병풍 형식이다. 폭의 수나 크기도 다종다양해서 왕이 자리하는 여러 공간에 맞게 제작, 사용되었음 알 수 있다. 생존해 있는 왕이 아닌 어진을 모시는 공간에도 일월오봉도가 사용되었다. 어진을 모시는 진전의 감실에는 ‘ㄷ’자 형태의 3폭 일월오봉도 병풍이 쓰였는데 가운데 폭이 넓고 바깥쪽 폭이 짧은 형태이다. 삽병이라는 이름의 1폭짜리 일월오봉도는 그림 주위를 액자처럼 나무틀로 두르고 받침대에 끼워서 사용하는 형식이다. 상단에 두 개의 도르레가 설치되어 있는 것으로 보아 제작 중인 어진을 봉심하거나 할 때 어진을 거는 용도였던 것으로 생각된다.
이외에 창호 형태의 일월오봉도도 전해지고 있다. 미세기형 문짝 네 개가 한 조를 이루어 일월오봉도를 구성하는 것으로 중앙에는 손잡이용 가죽끈을 부착했던 흔적이 있다. 이와 비슷한 형식으로 일월이 없는 오봉도 창호도 3조가 전해지고 있다. 일월오봉도 창호 1조, 오봉도 창호 3조가 하나의 세트를 이루어 왕의 침실과 같은 공간의 사방을 장식했을 것으로 보인다.
십장생도 十長生圖
십장생도는 장수하는 자연물을 산수화처럼 조화롭게 그린 것으로 장수를 기원하는 뜻[祝壽]을 담은 그림이다. ‘십’장생이라는 이름과 달리 꼭 10개의 도상만을 한정해서 그린 것은 아니며 실제로는 해, 달, 구름, 산, 물, 돌, 학, 사슴, 거북, 소나무, 대나무, 영지, 복숭아 등의 도상들이 선택적으로 그려졌다. 이 도상들은 산, 물, 돌처럼 영원히 존재하는 자연과 장수하는(또는 장수를 가져다준다고 여겨지는) 동식물로 구성되었다. 해와 달, 복숭아를 강조해서 그린 일월반도도(日月蟠桃圖)나 학과 복숭아를 대상으로 삼은 해학반도(海鶴蟠桃圖)도 역시 장생도류의 그림으로 볼 수 있다.
1901년 대왕대비(헌종의 계비 효정왕후)의 망팔(望八, 여든을 바라본다는 뜻으로 71세를 뜻함)을 기념하는 잔치가 경운궁에서 열렸다. 이 행사를 그린 <신축진찬도(辛丑進饌圖)> 병풍을 보면 경운궁 중화전 진하례(陳賀禮), 내진찬(內進饌), 야진찬(夜進饌) 등의 행사가 묘사되었는데 주인공이 되는 인물은 그리지 않았지만, 왕이 주인공이 되는 행사에서는 일월오봉도 병풍이 배치되고 대왕대비가 주인공인 행사에는 십장생도 병풍이 사용된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신축진찬도>에서 확인되는 것처럼 십장생도는 8폭, 10폭 등의 병풍으로도 남아있지만, 창호 형태의 유물이 다수 전해지고 있는 것이 특징이다. 앞서 살펴본 일월오봉도 창호와 마찬가지로 미세기형 문짝 네 개가 한 조를 이루면서 이러한 창호 4조가 모여 공간의 사방을 장식하게 되어 있는 구성이다. 일부 창호에는 한자로 동서남북의 방위가 표시되어 있기도 하다. 4조의 창호 그림이 사방에 설치되었을 때 그림이 하나로 이어지면서 장대한 십장생도를 완성하게 된다. 일월오봉도 병풍과 창호가 왕의 공간에 설치되었던 것처럼 십장생도는 왕실에서 중요한 인물들의 공간에 사용되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참고하실 수 있는 자료들>
국립고궁박물관, 궁중서화Ⅰ, 2012. (궁중행사도, 궁중장식화 등 수록)
국립고궁박물관, 궁중서화Ⅱ, 2019. (어진, 초상화 등 수록)
국립문화재연구소, 조선왕조 행사기록화, 2011. (왕세자입학도 등 수록)
국립고궁박물관 홈페이지 - 소장품 검색, 발간 도서 원문 등
국립문화재연구소 문화유산연구지식포털 – 발간 도서 원문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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