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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의 천문과학 - 흠경각 옥루(玉漏)

튼씩이 2022. 6. 7. 07:58

2) ‘흠경각 옥루(玉漏)’의 자동 시보 장치와 태양 운행 시스템


옥루(玉漏)는 수차를 동력으로 하여 자동으로 움직이며 시간과 계절을 알려주는천문시계로, 장영실이 세종대왕을 위해 1438년(세종 20년)에 만들어 경복궁 천추전 서쪽에 흠경각(欽敬閣)을 지어 그 곳에 설치하였다.

 

 

조선시대 세종 20년(1438)에 완성된 흠경각 옥루(欽敬閣 玉漏)는 흠경각(欽敬閣)내부에 설치된 자동물시계이다. 조선전기 자동물시계로는 보루각 자격루(報漏閣自擊漏)와 흠경각 옥루(欽敬閣 玉漏)가 있는데, 세종에 의해 설계되고 장영실(蔣英實)에 의해 개발되었다. 일반적으로 보루각 자격루는 궁궐과 한성의 국가 ‘표준시계’였고, 흠경각 옥루는 농업을 중시하는 정치사상의 근원을 천체운행과 계절의 변화로 담아낸‘천문시계’였다. 다시 말해서 흠경각루는 보루각루와 함께 조선 전기를 대표하는 물시계이며, 당시 중국과 이슬람의 과학기술을 교묘히 조합한 과학사적으로 기념비적인 창제물이었다. 비록 흠경각루는 몇 차례 망실과 복원이 지속적으로 있었지만, 적어도 180여년 동안 조선 왕실을 상징하는 물시계로 자리매김해왔다.


1438년 1월 경복궁 천추전 서쪽에 장영실이 제작한 옥루를 설치한 흠경각이 완성되었다. 세종은 우승지 김돈에게 흠경각 건립의 과정과 그곳에 설치한 옥루를 설명하는 「흠경각기」를 짓도록 하였는데, 이것이 『세종실록』에 실려 전한다. 그간 이것만으로 흠경각에 대한 구조를 연구하고 그 복원을 모색하여 왔으나, 『동문선』, 『신증동국여지승람』, 『어제궁궐지』 등에도 이 기문이 실려 전한다. 이것들을 대조하였더니 『세종실록』에 수록된 「흠경각기」에 잘못된 글자들이 있었다. 이를 바로잡으니, 그간 겉으로 드러나 작동하는 시보장치가 4단으로이루어진 자동물시계가 아니라 5단이었다는 사실을 확인하였다.


장영실이 송·원나라 및 아라비아의 물시계 관련 문헌들을 철저히 연구하여 독
창적으로 만든 이 자동시보 물시계는 하루의 매 시간을 종, 북, 징으로 타격하여 해당하는 시간을 알려 준다. 또 천체의 변화를 보여주는 장치까지 있어 동지, 춘분, 하지, 추분 등도 알려주는 종합적인 자동 물시계 장치이다.


옥루의 자동 장치는 자격루가 부력을 동력으로 하는 반면 같은 물의 힘을 이용하지만 동력이 수차인 점에서 차이가 있는데, 시간과 계절을 알려주는 그 기계 장치 부분을 옥루기륜이라고 하며, 내부 속에 장치되어 겉으로는 보이지 않게 설계되었다.


흠경각 안의 옥루에는 높이 7자쯤 되는 종이로 만든 산 모형이 있는데 이것은
우주를 상징하는 것으로 그 곳에 탄환만한 크기의 태양이 매일 이 산을 한 바퀴씩 돌게 되어 있다. 뿐만 아니라 실지 태양이 계절마다 높이가 달라지듯이 그 높이도 달라지게 하였다.


옥루는 태양 아래의 산 위에서 산 밑 평지까지 옥녀(玉女), 사신(四神), 사신(司
辰), 무사(武士), 12신(神), 옥녀, 관인(官人)의 인형들이 있다. 인형들은 각각의 맡은 역할에 따라 요령을 흔들거나, 방향을 회전하거나, 종․북․징을 치거나, 시패장치로 시간을 알려주게 설계되었다.

 

하루 12시간 중 4개의 옥녀와 사신(四神- 청룡, 백호, 주작, 현무)들에 의해 각각 3시간씩 분담하여 매 시간마다 옥녀는 방울을 흔들고, 사신의 모형들은 90°씩 돌게 하였다. 따라서 4신은 4시간마다 그 자리에서 한바퀴씩 도는 것이다.

 

산의 남쪽 기슭에 세운 사신(司辰)이 해당하는 시간이 되어 종을 치는 무사를 향하여 보면 무사는 사신을 향하여 보고 종을 친다. 이런 방법으로 매경, 매점마다 북, 징을 치는 무사들이 움직인다. 특히 12신인 짐승 모형들은 그에 해당되는 시간에만 움직이는데, 엎드렸다가 일어나도록 고안되었다.


물의 깊이가 달라져서 파수호에서 내려가는 물의 양이 달라지면 시계로서의 역할을 하지 못하므로 물 단지 안의 물 깊이가 일정한 깊이를 넘지 않도록 하기 위한 장치도 고안되었다. 그러한 물의 양 제어는 관인(官人)이 하였는데, 2번째 파수호에 정해진 물의 양이 넘으면 청동으로 만든 파이프인 관을 통하여 관인 앞의 수조로 모이게 된다. 이렇게 해서 수조 안의 물이 절반 이상 차면 그것이 저절로 기울어져서 물이 쏟아지게 만들어졌다.


이러한 옥루 시보 시스템은 보루각 자격루의 시보 시스템보다 복잡한 과정들로 이루어졌다. 옥루는 12시간을 종소리로 알려 주었고, 경점 시간은 북과 징소리로 알려 주었다.


흠경각은 이미 완성된 보루각의 자동물시계와 경복궁 후원 간의대(簡儀臺)의 천문 의기가 멀리 떨어져 있어 시시때때로 편리하게 관측하기 어려워 이를 해결하려는 목적으로 만든 자동으로 작동하는 천문시계인 옥루를 설치했던 건물이었다. 흠경각 옥루는 자동물시계에 태양 운행 장치를 결합하여 대단히 작고 정밀하게 만든 것으로, 시(時)·경(更)·점(點)을 모두 청각과 시각으로 확인할 수 있도록 만든 것이었다. 그와 더불어 기기(欹器)를 설치하고 《빈풍도》를 벌려 놓아서 천도(天道)의 차고 이지러지는 이치를 보고 백성이 농사짓는 어려움을 볼 수 있게 하였는데, 이는 조선의 창안이었다. 이런 흠경각의 설치는 세종이 추구한 7년에 걸친 대규모 천문의기 제작 사업이 완성되었다는 선포였으며, 하늘을 본받고, 시의에 순응하며, 공경하는 뜻을 극진히 하고, 백성을 사랑하고, 농사를 중히 여기는 인후한 덕에서 비롯한 것이라고 천명한 기념물이었다.

 

 

■ 흠경각 옥루 복원


흠경각 옥루의 복원은 국립중앙과학관 윤용현박사를 중심으로 한 연구진이
2016년부터 2019년까지 흠경각루(欽敬閣漏)의 내부 구조를 설계하고 동력전달의 메커니즘 분석․연구, 시보시스템의 작동모델 분석․연구 등을 거쳐 복원되었다.


흠경각 옥루에 대한 고문헌의 묘사는 주로 외형에 집중되어 있어 지금까지 그
내부의 메커니즘에 대한 연구가 쉽지 않았다. 조선왕조실록 등 흠경각 옥루의 문헌기록들을 면밀히 분석한 결과, 흠경각 옥루는 3단 물시계를 가지고 있고, overflow된 물을 활용하여 폭포나 기기(欹器) 등을 연출하였으며, 구슬(ball)을 이용하여 시간을 알려준 것으로 파악되었다.


연구진은 흠경각루의 내부 공간에 해당하는 동력전달 구조와 설계에 대해서 연구했다. 우선 물을 안정적으로 공급해주는 물시계와 수차의 회전속도를 일정하게 유지시켜주기 위한 천형장치가 있는 수차제어시스템, 수차의 동력으로 5층의 기륜을 회전하게 되는 기륜시스템, 기륜의 가장 상단에 위치한 천륜의 작동으로 태양이 운행하는 태양운행 장치의 총 3가지의 영역으로 구분해 설계했다.

 

 

물시계는 3단의 대∙중∙소 파수호로 구성되며, 오버플로우(overflow) 기능을 갖추도록 했다. 대파수호는 천지호의 명을 새긴 것으로 가산 외부에 설치했다. 대파수호에서 물은 크게 두 방향으로 나뉜다. 대파수호의 유관을 통한 물은 중파수호와 소파수호를 거쳐 수차제어시스템에 직접적인 물공급을 하도록 했다. 대파수호의 오버플로우 관을 통한 여분의 물은 폭포, 연못, 기기 등의 연출을 위해 사용하도록 했다.


수차의 수수상은 고정식(fixed-type)으로 설계하고 천형장치가 수차의 회전을 제어하도록 했다. 수수상은 1.25 l 를 담을 수 있고, 하루 동안 수차가 61회전하므로 총 1,220 l 의 물을 필요로 한다. 수차는 61회전하여 수차주축의 6-톱니기어가 모두 366-톱니만큼 운행하도록 했다. 동력기륜은 윗면에 366-톱니기어로 구성하여 수차주축의 6-톱니기어와 맞물린다. 동력기륜이 1회전 할 때 기륜주축에 연결된 천륜, 4신기륜, 시보기륜, 12신기륜이 함께 연동된다. 천륜은 61-톱니기어로 구성하여 연결기어를 통해 73-톱니기어의 천운환으로 동력을 전달시켰다.


태양구동을 위해 가산 정상에 혼천의를 구성했다. 태양장치의 운행은 혼천의의 천운환에 전달된 동력을 사용한다. 태양장치는 삼신의가 하루 1회전하고 약 1도씩 더 움직이도록 하기 위해 천륜과 천운환의 회전비를 366:365로 구성했다. 이때 태양은 황도상에서 약 1도씩 후퇴하도록 설계하여 절기에 맞는 태양위치를 표시하고 이를 통해 태양 고도의 변화를 주도록 했다.


이상과 같은 모든 복잡한 장치들은 수차와 기륜에 의하여 움직이게 되는데, 파
수호 물의 위치에너지를 수차에 의해 회전 운동으로 바꾸는 역할을 한다. 또한 37개의 인형에 의한 자동 시보 장치, 혼천의에 의한 태양 운행 시스템 등 옥루의 제작 원리와 기계 장치들은 매우 정교하여 우리나라 과학 기술 발전에 있어서 매우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12세기 이슬람의 이븐 알라즈자즈 알자자리(Ibn al-Razzaz al-Jazari, 1136~1206)는 다양한 형상의 자동물시계를 제작했다. 이들 자동물시계는 일정한 시간마다 특정 신호를 발생하여 인형을 움직이고 소리를 만들었다. 이때 신호를 발생하는 방식으로 부력(의 차이), 천평칭(天平秤), 구슬, 기기(奇器), 밸브, 사이펀 등을 이용하였다. 동력을 전달하는 장치로 도르레, 캠사프트, 크랭크 슬라이더, 베벨기어 등을 사용하였다. 특히 구슬 방식은 15세기 조선의 보루각 자격루와 흠경각 옥루에서 12시진과 경점시각을 타격할 때 적극적으로 활용되었다. 흠경각 옥루는 보루각 자격루의 구슬 신호 기술을 더 개량시켰음을 알 수 있다. 기본적으로 보루각 자격루의 시보시스템은 종북징을 타격하고 12시 시패를 운행하는 것에 국한 되었지만, 흠경각 옥루에서는 4신옥녀와 4신의 운행이 추가되었고, 평지에서도 12신옥녀와 12신이 볼거리를 더욱 풍성하게 했다.


흠경각 옥루 시보시스템의 신호는 주로 걸턱과 구슬에 의한 것으로 이는 이슬람 기계시계의 기술을 도입한 것이다. 보루각 자격루와 흠경각 옥루에서는 걸턱과 구슬을 다양하게 적용하여 이슬람의 기술적 요소를 확장하여 사용하였다. 조선의 구슬 시보 방식은 17세기 조선의 혼천시계에도 그대로 적용되었다. 송이영이 제작한 혼천시계의 경우 경점시간이 사라졌지만, 12시 시간을 초와 정으로 구분하여 알려주었다. 이슬람 방식의 구슬 시보 신호는 중국의 과학 전통에는 뒤늦게 나오는 기술로 당시 조선에서는 이슬람 방식의 시보 체계를 융합하여 개량하고 독창적으로 발전시킨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