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이 있는 이야기/얼레빗으로 빗는 하루

김수업의 우리말은 서럽다 56, 우리 토박이말의 속뜻 - ‘할말’과 ‘못할말’

튼씩이 2024. 11. 2. 14:09

‘할말’과 ‘못할말’은 국어사전에 오르지 못했다. 그러나 국어사전에 올라야 마땅한 낱말이다. 왜냐하면 우리 겨레가 오래도록 입말로 널리 썼을 뿐만 아니라, 말살이의 종요로운 가늠으로 여기며 살아왔기 때문이다.

 

‘할말’과 ‘못할말’이 가려지는 잣대는 무엇일까? 그것은 바로 ‘사람을 어우르는 사랑’이다. 그것에 맞으면 ‘할말’이고, 어긋나면 ‘못할말’이다. ‘사람을 어우르는 사랑’이란 무엇인가? 사람이 동아리를 이루어 살아가는 곳에서는 언제 어디서나 얽히고설켜서 겨루고 다투고 싸우기 마련이다.

 

그런 겨룸과 다툼과 싸움에는 사랑과 미움이 또한 얽히고설키게 마련이다. 그러면서 서로 사랑하며 마음이 맞으면 모여서 어우러지고, 서로 미워하며 마음이 어긋나면 갈라서고 흩어진다. 이럴 때 사람의 한마디 말이 멀쩡하던 사이를 갈라놓기도 하고, 갈라진 사이를 다시 어우르기도 한다. 사람 사이를 갈라놓는 말이 ‘못할말’이고, 사람 사이를 어우르는 말이 ‘할말’이다.

 

▲ 사람은 ‘할말’과 ‘못할말’을 제대로 가려써야 한다.(그림 이무성 작가)

 

삶의 동아리에서 사람들이 어우러져 하나를 이루는 것보다 더 값진 노릇은 없다. 그 때문에 말살이에서 ‘할말’과 ‘못할말’을 가리는 일보다 더 무겁고 어려운 것은 없다. 비록 거짓말이거나 그른말일지라도 사람을 어우러지게 하려는 사랑을 북돋우고자 하면 ‘할말’이 된다. 마찬가지로, 비록 참말이거나 옳은말일지라도 사람 사이를 어우러지게 하려는 사랑을 짓밟고 깨뜨리고자 하면 ‘못할말’이 된다.

 

그래서 ‘할말’과 ‘못할말’을 제대로 가려 마땅히 쓰는 사람은 동아리에서 훌륭한 사람으로 우러름을 받고, ‘할말’과 ‘못할말’을 가리지 못하고 함부로 쓰는 사람은 동아리에서 말썽쟁이 헤살꾼(훼방꾼)으로 업신여김을 받는다. ‘할말’과 ‘못할말’을 제대로 가늠하는 노릇은 높고 넓은 슬기*와 설미*를 갖춘 사람이라야 제대로 해낼 수가 있다.

 

* 슬기 : 사물의 이치를 빨리 깨달으며 사물을 처리하는 방도를 옳게 잘 생각해 내는 재간이나 능력

 

* 설미 : 이런저런 사정을 두루 살펴서 올바르고 그릇된 바를 제대로 가늠하여 올바름을 북돋우는 마음의 힘

 

 

 

[우리문화신문=김수업 전 우리말대학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