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글 붓글씨체로 반포체와 궁체가 있습니다. ‘반포체(頒布體)’는 훈민정음 반포와 더불어 《동국정운(東國正韻, 1448)》이나 《월인석보(月印釋譜, 1459)》 같은 책에 처음으로 쓰인 글씨체를 부르는 말입니다. 이 글씨 꼴은 우리의 삶에서는 크게 쓰이지 않지만, 무덤 비문 같은 곳에 쓰이지요. 또한 ‘궁체(宮體)’는 반포체가 가진 단점인 ‘딱딱한 모양’ 대신 부드러운 모양으로 반흘림, 흘림, 정자의 3종류가 있습니다. 궁체라는 이름은 말처럼 궁중에서 쓰이고 발전한 서체입니다.
오늘(11월 3일) KBS 진품명품 프로그램에는 신정왕후의 답장을 지밀내인이며, 서사상궁인 이씨가 수준 높은 궁체로 대신 쓴 <궁체편지>가 출품되었습니다. 그런가 하면 국립한글박물관에는 효정왕후가 윤용구의 부인에게 보낸 편지가 있습니다. 이 편지는 서사상궁 서기 이씨가 쓴 것으로 나와 있는데 덕온공주의 손녀 윤백영은 서기 이씨가 대필한 편지의 여백에 적은 기록에서 서기 이씨를 가리켜 “국문이 시작된 후 제일 가는 명필”이라 하였습니다.
▲ 신정왕후 조씨가 윤용구에게 보낸 한글편지, 국립한글박물관, 종이를 붙여 적어놓은 설명에는 서사상궁 이씨를 설명하고 있다.
이 편지에 종이를 붙여 적어 넣은 설명에는 서기 이씨의 생애에 관한 이야기가 나옵니다. “신정황후의 지밀내인 이씨가 글씨의 필력이 강하고 글자 모양이 절묘하였다. 이씨가 궁에서 나와 시집을 갔으나 살지 못하고 친정에 있으니, 국문(한글)이 생긴 후 제일 가는 명필이라 아까워서 다시 궁으로 들였다. 시집갔던 사람을 다시 내인이라 할 수 없어 이름을 ‘서기’라 하고 황후의 봉서(왕비가 친정에 사적으로 보내던 편지)를 쓰게 하며 내인과 같이 월급을 주고 처우하였다.”라는 이야기가 있어 당시 서기 이씨의 글씨가 대신 할 수 있는 사람이 없을 만큼 매우 빼어났음을 짐작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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