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숭이랑 곰이 재주를 떤다
조선인들 좋아라 손뼉 치는 밤
손에 든 과자 하나 던져주면
신명은 하늘을 찌르고
피어 문드러진
사쿠라 꽃잎 사이로
저것들 똥냄새 묻어나와
어느새
새하얀 궁궐을 뒤덮는 밤
1909년 순종마음 달래려
구중궁궐 헐어내고
동물 우리 만들었다네
고약한 왜놈
손에 들린 사진기
요타무라 보러 나온
조선인 모습
칼라엽서 만들어
내지에 보내질 때
식자 놈들 말했겠지
그리고
웃었겠지
1984년까지 줄곧
요자쿠라 : 밤벚꽃놀이
내지 : 일제강점기에 일본을 내지, 조선을 반도라 함
전순자 시인의 ‘1909년 창경궁을 헐다’입니다. 그랬습니다. 우리는 일제가 창경궁을 허물고 지은 창경원에서 밤 벚꽃놀이나 즐기는 철없는 겨레였습니다. 1909년 4월 21일 일제는 순종의 마음을 달래려고 창경궁 안에 동물원을 만들고 사쿠라를 심었다고 하는데 그때 순종의 나이는 35살이었습니다. 궁궐을 부수고 동물우리를 들이는 뻔뻔함을 사과하기는커녕 황제를 위한 동물원이었다니 궁궐을 아끼는 사람들로서는 참으로 안타까운 일입니다. 이런 내막도 모르고 사람들은 벚꽃과 원숭이 재롱을 보러 삼삼오오 몰려들었으니 참으로 부끄러운 일입니다.
원래 창경궁은 종로구 와룡동에 있는 조선시대 궁궐로 도성 내 동쪽에 있으므로 창덕궁과 함께 동궐(東闕)이라고도 불렸습니다. 성종 14년(1483) 옛 수강궁(壽康宮) 터에 창건하기 시작하여 이듬해 완공했는데 처음에는 세조의 비(妃) 정희왕후(貞熹王后) 윤 씨(尹氏)를 모셨습니다. 이 때 세워진 건물은 명정전(明政殿), 문정전(文政殿)과 같은 숱한 건물이 있었고 일부 화재와 중건이 있었지만 고종 때까지는 본래의 모습을 유지했습니다. 당시 펴낸 <궁궐지>를 보면 모두 2,379칸에 이를 정도로 규모가 거대한 궁궐이었습니다.
그러나 순종 3년(1909) 일본인들이 궁궐의 여러 전각을 헐고 일본식 건물과 동물원, 식물원을 만들어 궁은 크게 변형, 개조되기 시작하여 궁궐로서의 원형을 잃게 됩니다. 광복 후에도 여전히 창경원 밤 벚꽃놀이를 즐기다가 1984년에 가서야 궁의 복원사업에 착수, 동물원과 식물원을 철거하고 이름도 창경원에서 본래대로 창경궁으로 고쳤습니다. 허물어진 일부 건물을 복원하고 명정전 남쪽에 있던 편전인 문정전과 명정전과 정문 사이 좌우 행각도 복원되었지요. 늦었지만 참으로 다행한 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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