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절기의 여덟째인 소만(小滿)은 5월 21일 무렵 찾아옵니다. 소만은 ‘만물이 점차 자라서 가득 찬다(滿)’는 뜻이 있습니다. 이때부터 여름 기운이 들기 시작하는데 가을보리를 거두고 이른 모내기를 하며 밭농사의 김매기 등을 하게 됩니다. 이때 즐겨 먹는 냉잇국은 시절음식으로 이름이 높습니다. 또 죽순(竹筍)을 따다 고추장이나 양념에 살짝 찍어 먹는가 하면, 꽃 상추과에 속하는 여러해살이풀인 씀바귀의 뿌리나 줄기, 잎을 이 시기에 먹기도 합니다.
60여 년 전 소만 풍경을 《동아일보》 1947년 5월 22일 기사를 통해 들여다보겠습니다.
“여름은 차츰 녹음이 우거지고 철 맞춰 내린 비로 보리와 밀 등 밭곡식은 기름지게 자라나고 못자리도 날마다 푸르러지고 있으나 남의 쌀을 꿔다 먹고사는 우리 고향에 풍년이나 들어주어야 할 것 아닌가? 농촌에서는 명년 식량을 장만하고자 논갈이에 사람과 소가 더 한층 분주하고 더위도 이제부터 한고비로 치달을 것이다.”
해방 후 어려운 농촌 풍경이 수채화처럼 그려집니다. 소 모는 농부와 어린 아들 앞세워 논둑으로 새참 이고 나가는 아낙, 뒤를 따르는 삽살이 한 마리가 우리의 정서를 자극합니다. 도회지 생활에 잊힌 듯하지만 누구나 ‘고향 풍경’은 손대면 톡 하고 터질 듯한 그런 그립고 아름다운 정경이 아닐는지요. 천지가 푸르러지는 이 무렵 유일하게 대나무는 푸른빛을 잃고 누렇게 변합니다. 이는 새롭게 탄생하는 죽순에 자기의 영양분을 공급해주기 때문이지요. 마치 부모가 어린 자식들을 키우느라 자신을 돌보지 않는 것과 같습니다. 봄의 누런 대나무를 가리켜 죽추(竹秋), 곧 ‘대나무 가을’이라고 합니다만 늙으신 부모님이 소만에 논배미에서 애쓰시는 고마움을 이날 돌아보는 것도 뜻 깊지 않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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