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서에 창을 든 모기와 톱을 든 귀뚜라미가 오다가다 길에서 만났다. 모기의 입이 귀밑까지 찢어진 것을 보고 깜짝 놀란 귀뚜라미가 그 사연을 묻는다. ‘미친놈, 미친년 날 잡는답시고 제가 제 허벅지 제 볼때기 치는 걸 보고 너무 우스워서 입이 이렇게 찢어졌다네.’ 라고 대답한다. 그런 다음 모기는 귀뚜라미에게 자네는 뭐에 쓰려고 톱을 가져가느냐고 물었다. 그러자 귀뚜라미는 ‘긴긴 가을밤 독수공방에서 임 기다리는 처자 낭군의 애(창자) 끊으려 가져가네’라고 말한다.”
남도지방에서 처서(處暑)와 관련해서 전해지는 이야기입니다. 귀뚜라미 우는 소리를 단장(斷腸), 곧 애끊는 톱소리로 듣는다는 참 재미있는 표현이지요. 절기상 모기가 없어지고, 이때쯤 처량하게 우는 귀뚜라미 소리를 듣는 시기의 정서를 잘 드러냅니다. 이제 자연의 순리는 여름을 밀어냅니다. 처서(處暑)는 24절기의 열넷째로 여름이 지나 더위도 가시고, 선선한 가을을 맞이하게 된다고 하여 이처럼 부르지만 낱말을 그대로 풀이하면 ‘더위를 처분한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처서 때는 여름 동안 습기에 눅눅해진 옷이나 책을 아직 남아 있는 따가운 햇볕에 말리는 포쇄(曝曬)를 합니다. 또 ‘모기도 입이 비뚤어진다’라는 속담처럼 해충들의 성화도 줄어듭니다.
처서에 비가 오면 ‘십 리에 천 석 감한다’고 하여 곡식이 흉작을 면하지 못한다는 믿음이 전해지고 있으며, 또 ‘처서에 비가 오면 독의 곡식도 준다’는 속담도 있습니다. 이제 가을의 높은 하늘이 다가옵니다.
'지난 게시판 > 하루하루가 잔치로세(김영조)' 카테고리의 다른 글
8월 25일 - <고려사> 139권이 완성되었습니다 (0) | 2018.08.25 |
---|---|
8월 24일 - 매창과 허균의 순수한 우정을 기립니다 (0) | 2018.08.24 |
8월 22일 - 펌프에 마중물 넣고 물을 퍼내 등목 할까요 (0) | 2018.08.22 |
8월 21일 - 진흥왕은 순수비를 세워 영토확장을 알렸습니다 (0) | 2018.08.21 |
8월 20일 - 조선의 국모가 일본 흉도의 손에 시해당했습니다 (0) | 2018.08.2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