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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월 21일 - 진흥왕은 순수비를 세워 영토확장을 알렸습니다

튼씩이 2018. 8. 21. 08:55

진흥왕순수비(眞興王巡狩碑)는 신라 진흥왕(540~576)이 새로이 넓힌 지역을 두루 살피며 돌아다닌 것을 기념하여 세운 비입니다. 이 진흥왕순수비는 현재 창녕 신라 진흥왕척경비(국보 33), 북한산 신라진흥왕순수비(국보 3), 마운령 진흥왕순수비(북한 국보 111), 황초령 진흥왕순수비(북한 국보 110)가 발견되었습니다. 진흥왕순수비는 신라가 대외적으로 영역을 확장하던 진흥왕 때의 영토 개척사업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되지요.


 

진흥왕 때는 신라가 종전의 미약했던 국가체제를 벗어나 영토를 크게 넓히고, 삼국통일의 기틀을 마련한 때입니다. 진흥왕은 재위 37년 동안 낙동강 서쪽의 가야세력을 완전히 병합했고, 한강 하류유역으로 진출하여 서해안 지역에 교두보를 확보했으며, 동북으로는 함경남도 이원지방에까지 이르렀는데 이 순수비는 그를 증명하는 것입니다.

 

특히 568년(신라 진흥왕 29) 8월 21일은 진흥왕이 함경남도 함흥군 황초령에 높이 151.5cm, 두께 약 20cm, 너비는 42.7cm인 황초령비와 함경남도 이원군 마운령에 높이 149.6cm, 너비는 44.2cm, 두께 약 30.3cm인 순수비를 세운 날입니다. 이 두 비는 내용이 거의 같다고 합니다. 특히 이 비는 진흥왕 때 신라 동북쪽 국경이 <삼국사기>에 기록된 비열홀주(比列忽州, 지금의 안변)를 훨씬 넘어 함흥지역까지 이르렀음을 증명하고 있다는 점에서 주목됩니다. 조선의 대학자 추사 김정희는 7월 무더위 속을 뚫고 북한산에 올라 그곳에 있던 진흥왕순수비를 탁본했습니다. 그 뒤 그는 침식을 잊은 채 비문을 판독한 다음 그 비가 진흥왕순수비임을 밝힙니다. 대학자의 면모가 드러나는 업적입니다. 진흥왕순수비도 우리의 국보지만 한여름 땀을 훔치며 그를 탁본해 순수비임을 밝힌 추사도 우리의 국보가 아니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