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게시판/하루하루가 잔치로세(김영조)

8월 26일 - 임진왜란 때 나라를 구한 사명대사가 열반하였습니다

튼씩이 2018. 8. 26. 08:36

서울 성북구 정릉동 정릉천 주변 삼각산(三角山) 동쪽 기슭에는 고려 충숙왕 12년(1325) 자정(慈淨)율사가 청건하여 청봉(靑峰) 아래에 자리 잡았다는 뜻으로 청암사(靑巖寺)라 이름 붙인 절이 있었습니다. 청암사는 명종 5년(1549) 문정왕후가 국가에 경사가 끊이지 않도록 기원하는 뜻에서 경국사(慶國寺)라고 이름을 바꾸었지요.


 

경국사는 선조 25년(1592) 임진왜란 때 서산대사(西山大師)와 사명대사(四溟大師)가 구국승병을 이끌고 와 머물면서 총지휘를 한 유서 깊은 절이기도 합니다. 창건 이래 한국불교 계율의 맥을 이어온 대표적 절인 경국사 극락보전에는 보물 748호인 목각탱화, 신중탱화, 팔성탱화가 있지요. 풍남(楓南)이 쓴 약 600자의 <천태성전 상량문>도 색다릅니다. 이곳의 ‘경국사 목 관음보살좌상’을 비롯해 수국사 ‘아미타후불화’를 포함해 모두 12점은 서울시에서 시문화재로 지정했습니다. 특히 ‘경국사 목 관음보살좌상’은 1703년 전남 영암 월출산 도갑사에서 당대 최고의 조각승인 색난(色難)스님과 그 제자들이 조성한 것으로, 원형이 대부분 완전하게 남아 있는 18세기를 대표할만한 작품입니다.

 

1610년 8월 26일은 임진왜란 때 나라를 구한 승려인 사명대사가 열반한 날입니다. 대사는 금강산에서 수도하다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건봉사에서 승병을 규합, 1593년 1월 평양성 탈환작전에 참가해 큰 전공을 세웠고, 그해 3월 서울 인근의 노원평과 우환동, 수락산 전투에서 왜군을 크게 무찔렀습니다. 특히 대사는 팔공산성과 금오산성, 용기산성, 남한산성, 부산성 등을 쌓았을 뿐만 아니라, 1604년 강화교섭을 위해 일본에 사신으로 파견, 전란 당시 잡혀간 동포 3,500여 명을 데리고 귀국했지요. 대사는 1610년 8월 26일 해인사에서 입적했습니다. 나라가 어지러운 때일수록 사명대사 같은 분이 그리워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