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동(立冬)은 김장과 함께 해야 할 중요한 일로 보리파종이 있습니다. 1921년 11월 8일 <동아일보>에는 입동 준비로 서둘러야 할 중요한 일을 말하는데 그 첫째가 보리파종입니다. 보리는 입동 전에 씨를 뿌려야 수확이 많으며 "입동 전 보리씨에 흙먼지만 날려주소"라는 속담이 전해오는 것은 보리씨 뿌리는 때를 강조한 것으로 보입니다. 다가올 겨울 채비로 일손이 모자랄 때는 흙먼지만 날리는 수준일지라도 씨 뿌리기는 입동 전에 반드시 마치라는 것이지요.
보리는 씨를 봄에 뿌리는 것도 있고, 가을에 뿌리는 것도 있는데, 우리나라는 가을에 씨를 뿌려 겨우내 땅속에서 충분한 성숙기를 갖게 합니다. 그렇게 겨울 추위를 견딘 보리는 양기운이 넘쳐나는 여름철 음기운을 보충해주는 좋은 음식입니다. 뜻이 같은 속담으로 "입동 전에 보리는 묻어라", "입동 전 송곳보리다", "입동 전 가새보리 춘분 되어야 알아본다"라는 말이 있는데 여기서 송곳보리는 보리가 입동 전에 송곳길이로 자라야 한다는 뜻이고, 가새보리는 보리잎 두 개가 돋아난 때의 모양이 가위모양 같다고 하여 붙은 이름이며, 가새는 가위의 사투리입니다.
입동에는 치계미(雉鷄米)라고 하는 아름다운 풍속도 있었습니다. 여러 지역의 향약(鄕約)에 전하는 바에 따르면, 계절별로 마을에서 양로잔치를 벌였는데, 특히 입동, 동지, 섣달그믐날에 노인들을 모시고 음식을 준비하여 대접하는 것을 치계미라 했지요. 본래 치계미란 사또의 밥상에 올릴 반찬값으로 받는 뇌물을 뜻했는데, 마치 마을의 노인들을 사또처럼 대접하려는 데서 유래한 풍속인 듯합니다. 마을에서 아무리 살림이 없는 사람이라도 한 해에 한 차례 이상은 치계미를 위해 돈이나 곡식을 냈지요. 그러나 그마저도 형편이 안 되는 사람들은 도랑탕 잔치로 대신했습니다. 입동 무렵 미꾸라지들이 겨울잠을 자기 위해 도랑에 숨는데 이때 도랑을 파면 누렇게 살이 찐 미꾸라지를 잡을 수 있었습니다. 이 미꾸라지로 추어탕을 끓여 노인들을 대접하는 것을 도랑탕 잔치라고 합니다.
<동국세시기>에 따르면 10월부터 정월까지의 풍속으로 내의원(內醫院)에서는 임금에게 우유를 만들어 바치고, 기로소(耆老所)에서도 나이 많은 신하에게 우유를 마시게 했습니다. 이러한 겨울철 궁중의 양로(養老)풍속이 민간에서도 전해진 것인데 이 시대에도 되살려야 할 아름다운 세시풍속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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