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게시판/우리말은 재미있다(장승욱)

087 – 도르리

튼씩이 2019. 7. 6. 12:35

손님을 불러 대접하는 일을 손겪이, 크게 손님을 치르는 일은 일결이라고 하는데, 집들이는 대표적인 손겪이라고 할 수 있다. 전에 남부 지방에서는 새 집을 지어 이사한 날 저녁에 마을 사람들과 일가붙이들을 불러다 큰 잔치를 베풀어 집들이를 했는데, 농악대가 합세하여 흥을 돋웠다고 한다. 마루나 마당에서 한바탕 농악을 치고 나서 상쇠가 덕담을 늘어놓기를 마루 구석도 네 구석, 방 구석도 네 구석, 정지 구석도 네 구석, 삼사십이 열두 구석 좌우 잡신 맞아다 맞아들이세했다고 한다. 다른 곳은 다 놔두고 구석에 먼저 관심을 나타내는 그 마음이 아름답게 느껴진다. 비록 귀신의 거처로서의 구석이라고 해도 말이다. 정지는 부엌이다.

 

요즘 집들이를 가 보면 조금 과장해서 밥 먹고 술 마시고 고스톱 치는 것이 집들이의 처음이고 끝이며 전부다. 덕담을 주고받을 분위기가 아니다. 그 집의 구석구석에 대한 관심은 고사하고 나중에는 내가 어떤 집에 갔다 왔는지, 그 집이 어떤 느낌을 갖고 있었는지가 하나도 떠오르지 않는다. 그럼 어떻게 해야 집들이 같은 집들이가 되느냐고 묻는다면 할 말이 없지만, 이건 아닌데 하는 생각이 자꾸 드는 것이다. 집들이는 주인 쪽에서 말하는 것이고, 찾아가는 사람의 입장에서는 집 구경 겸 인사로 가는 것이니까 집알이라고 하는 것이 옳을 것이다.

 

집들이같이 새 집에 들거나 이사했을 때 내는 턱을 들턱이라고 한다. 좋은 일이 있을 때 남에게 음식을 대접하는 것을 턱이라고 하는데, 한턱낼 만한 일은 한턱거리, 한턱낸다고 큰소리만 치고 실제로는 보잘것없거나 먹잘것없이 내는 턱은 헛턱이다. 도르리는 한 사람이 내어 여럿이 함께 먹는 것이고, 여럿이 추렴하여 나누어 먹는 일은 도리기라고 한다. 여럿이 둘러앉아 먹을 수 있는 크고 둥근 밥상이 두리반인데, 두리반에 차린 음식상은 두리기상, 두리기상에 여러 사람이 둘러앉아 먹는 일은 두리기라고 한다.

 

 

도르리 () 여러 사람이 음식을 차례로 돌려 가며 내어 함께 먹음. 또는 그런 일.

 

                 ② 똑같이 나누어 주거나 골고루 돌라 줌. 또는 그런 일.

 

쓰임의 예 한 집에 가서 보니 동네 사람 네댓이 모여 앉아서 쇠머리 도르레를 하는데 정작 술이 없데그려. (홍명희의 소설 임꺽정에서)

 

 

이 말만은 꼭 갈무리하자

 

손겪이 손님을 불러 대접하는 일.




'지난 게시판 > 우리말은 재미있다(장승욱)' 카테고리의 다른 글

089 – 드난  (0) 2019.07.08
088 – 뒷바라지  (0) 2019.07.07
086 – 안날  (0) 2019.07.05
085 – 한뉘  (0) 2019.07.04
084 – 꽃나이  (0) 2019.07.0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