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게시판/우리말은 재미있다(장승욱)

108 – 쨀밭

튼씩이 2019. 7. 31. 08:03

‘던질 척(擲)’ ‘윷 사(柶)’ 자를 쓰는 척사는 윷놀이를 뜻하는 한자말이다. 사희(柶戱)도 같은 뜻이다. ‘윷 사(柶)’ 자를 뜯어보면 나무(木)가 넷(四)이니 윷짝 네 개를 가리킴을 짐작할 수가 있다. 도개걸윷모 다섯이 있지만, 도놀이나 개놀이, 걸놀이, 모놀이라고 하지 않고 윷놀이라고 한 것은 윷이 넷을 뜻하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윷놀이의 유래에 대해서는 고조선의 오가(五加)나 부여의 사출도(四出道)에서 비롯됐다고 보는 것이 정설인 듯하다. 오가는 전국을 동, 서, 남, 북, 중의 다섯 부로 나눈 고조선의 행정편제이고, 사출도는 마가(馬加), 우가(牛加), 저가(豬加), 구가(狗加)로 나뉜 부여(夫餘)의 행정구역이다. 한복판의 방을 중심으로 네 개의 구역, 그러니까 앞밭, 뒷밭, 쨀밭, 날밭으로 나뉘어 있는 윷판을 보면 이런 기원설(起源說)의 타당성을 금세 이해하게 된다.


윷판 자체가 밭 전(田) 자 비슷한 모양으로 되어 있기도 하지만, 앞밭, 뒷밭, 쨀밭, 날밭 같은 말들이 보여주듯 윷놀이는 밭과 아주 밀접한 관계에 있다. 앞밭은 봄, 뒷밭은 여름, 쨀밭은 가을, 날밭은 겨울을 뜻한다고 한다. 그런데 앞밭 뒷밭은 말할 필요도 없고, 날밭은 나간다고 해서 날밭이라고 한다지만, 쨀밭은 무슨 뜻일까. 사전에서 ‘째다’라는 낱말을 찾아보면 ‘윷놀이에서 말을 쨀밭에 놓다’로 풀이돼 있다. 이래서야 쨀밭의 뜻을 아는 데는 도움이 안 된다. 쨀밭은 뒷밭과 날밭 사이에 있다. 날밭에 들어가면 출구(참먹이)가 멀지 않아 어느 정도 안전이 확보되지만, 쨀밭은 추격군이 쫓아오고 있어서 아직은 안심할 수 없는 단계다. 그렇다면 걸음아 날 살려라 하고 꽁지 빠지게 내빼는 것이 최선의 선택일 것이다. 이런 해석을 뒷받침하듯 사전에는 ‘째다’가 ‘내빼다’의 사투리라는 풀이가 실려 있다. 쨀밭은 ‘죽을 둥 살 둥 달아나야 하는 밭’이라는 뜻임을 짐작할 수 있다.



쨀밭 (명) 윷놀이에서, 윷판의 앞밭으로부터 꺾이지 않고 열다섯째 되는 밭. 또는 윷판의 앞밭으로부터 꺾이어 여섯째 밭.


쓰임의 예 – 그러나 그들의 웃음은 쨀밭에까지 가 있는 석동무니짜리가 뒤따르던 상대편 말한테 허망하게 잡혔기 때문에 터져 나온 것이었다. (김문수의 소설 『만취당기』에서)



이 말만은 꼭 갈무리하자


째다 – 윷놀이에서 말을 쨀밭에 놓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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