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날 서울에는 동쪽의 흥인지문, 서쪽의 돈의문, 남쪽의 숭례문, 북쪽의 숙정문 등 사대문이 있었다. 그런데 지금 서대문 로터리에는 붕어빵에 붕어가 없는 것처럼 서대문이 없다. 남대문도 동대문도 아직 끄떡없이 서 있는데, 서대문은 언제 세워졌다가 어디로 흔적도 없이 사라졌을까. 그것이 알고 싶어 서대문으로 가보면 신문로라는 길이 있다. 광화문 네거리에서 서대문 로터리에 이르는 길이 신문로인데, 바로 이 신문로가 서대문의 처음과 끝을 알 수 있는 실마리가 된다.
신문로에 왜 신문로라는 이름이 붙었을 것 같으냐고 물으면 그 언저리에 신문사가 많이 있어서 그런 것 아니냐고 대답할 사람도 있을 것 같다. 실제로 신문로 주면에 동아일보, 조선일보, 한국일보, 문화일보, 경향신문 등등 신문사들이 많이 자리잡고 있기는 하다. 그러나 신문로의 신문은 신문(新聞)이 아니라 신문(新門), 즉 ‘새로운 문’을 뜻한다. 지금으로부터 585년 전인 조선 세종 때 지금의 경향신문 건물 앞쪽에 새로 서대문을 만들어 돈의문(敦義門)이라고 이름 붙였는데, 백성들은 돈의문이라는 이름 대신 ‘새로낸 문’이라고 해서 ‘새 문’이라고 불렀고, 길도 ‘새 문이 있는 길’이라고 해서 신문로(新門路)라고 부르게 되었다고 한다. ‘새문안교회’라고 이름도 ‘새 문의 안쪽에 있는 교회’라는 뜻이다. 그 ‘새 문’은 500년 가까이 ‘헌 문’이 아니라 ‘새 문’으로 잘 버텨 왔지만 근세 개화기에 이르러 문 안으로 전차 철로가 깔리는 바람에 전차가 지날 때마다 주춧돌이 흔들리고 기왓장이 떨어지는 수난을 당하다가 마침내 1915년 일제에 의해 헐리는 비운을 맞고 말았다. 이때 일제는 서소문에서 나오는 목재를 경매에 부쳤는데, 염덕기라는 사람이 땔감으로 쓰기 위해 단돈 205원 50전에 낙찰을 받아 서대문을 헐어 갔다고 전해진다. 석재는 서대문이 헐린 자리에 길을 닦는 데 쓰였다고 한다.
언저리 (명) ① 둘레의 가 부분.
② 어떤 나이나 시간의 전후.
③ 어떤 수준이나 정도의 위 아래.
쓰임의 예 – 자신은 영광으로 기 대장을 찾아가겠노라고 한 말이 귓바퀴 언저리에서 맴돌았다. (문순태의 소설 『타오르는 강』에서)
- 장터 주막 언저리는 제법 붐비고 있었으나 적막하고 캄캄한 거리였다. (서기원의 소설 『조선백자 마리아 상』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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