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대에서 작대기 하나를 달고 ‘쫄따구’로 박박 기던 시절, ‘푸닥거리’는 두려움의 대상이었다. 고참 병장이 “짜식들이 한 푸닥거리 하려고 이러나. 군기들이 쏙 빠졌어”라고 한마디 하면 우리 쫄따구들은 당장에 표정 관리를 하게 되고, 몸짓에는 저절로 힘이 들어가고, 군화 바닥이 안 보이게 내무반으로 식기 세척장으로 종종걸음을 치곤 했다. ‘푸닥거리’는 ‘대가리 박다’로 시작해서 ‘줄빳다’로 끝나는, 몽둥이와 비명 소리가 난무하는, 인간이 인간 같지 않게 보이기 시작하는, ‘빽’ 없고 ‘줄’ 없는 부모를 원망하게 되는, 육체의 위대함을 증명하는 한바탕 ‘밤의 축제’였다.
무슨 소리를 하려고 이런 얘기를 늘어놓고 있는가. 바로 군대의 ‘푸닥거리’가 무당이 하는 굿에서 비롯됐다는 말을 하기 위해서다. 푸닥거리는 무당이 간단한 음식을 차려 놓고 잡귀신을 풀어먹이는 굿을 가리킨다. 귀신의 탓이라고 생각되는 병을 무당을 불러 푸닥거리를 함으로써 푸는 것을 ‘풀어먹인다’고 하는 것이다. 그러면 군대의 ‘푸닥거리’를 왜 푸닥거리라고 하게 되었을까. 생각해 보면 공통점이 없지는 않다. 시끄러우면서도 불안하고 음산한 분위기, 그릭 한쪽은 고참의 불만, 다른 쪽은 병이라는 차이는 있지만 무엇인가 문제를 ‘푼다’는 점에서 두 푸닥거리는 일치하고 있는 것이다.
우리가 친숙하게 쓰고 있는 말 가운데는 이렇게 무당의 굿이나 무당이 쓰는 말에서 유래한 것들이 많다. 아주 귀찮게 구는 것을 싫증내지 않고 좋게 잘 받아주는 일을 만수받이라고 하는데, 이 말은 원래 굿을 할 때 하나가 소리를 하면 다른 사람이 따라서 같은 소리를 받아 하는 짓을 뜻한다. 넋두리는 푸념, 공수와 비슷한 뜻을 가진 말이다. 무당이 돈이나 쌀을 얻으려고 집집마다 돌아다니는 일을 계면돌기라고 하고, 계면돌면서 하는 굿은 계면놀이라고 한다. 무당이 굿을 끝내고 구경꾼에게 나눠주는 떡이 계면떡이다. “굿이나 보고 떡이나 먹지” 하는 말이 바로 여기서 나온 말이다. 그런데 요즘은 굿을 볼 수 있는 기회가 거의 없으니까 이 말도 이렇게 바꿔야 할 것 같다. “굿을 해야 떡을 먹지.”
넋두리 (명) ① 불만을 길게 늘어놓으며 하소연하는 말.
② 굿을 할 때에, 무당이나 가족의 한 사람이 죽은 사람의 넋을 대신하여 하는 말.
쓰임의 예 – 함안댁의 넋두리 반, 울음 반에 아낙네들도 더러 눈두덩을 찍어 누르며 돌아선다. (김춘복의 소설 『쌈짓골』에서)
- 새침하게 가무잡잡한 얼굴이 해쓱하게 가라앉아 파리한 낯빛으로 골치가 아프다고 넋두리했다. (이호철의 소설 『소시민』에서)
이 말만은 꼭 갈무리하자
만수받이 – 아주 귀찮게 구는 것을 싫증내지 않고 좋게 잘 받아주는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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